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순이삼촌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407회 작성일 23-12-01 13:41

본문

오랜만에 고향 제주를 찾았다. 

조천면의 동쪽 끝에 자리 잡은 해변 마을 북촌리에 가서 북촌 초등학교와 너븐숭이 소공원을 돌아보고 제주시에 있는 제주 4·3평화공원을 방문했다. 

현기영 작가의 최근 장편 소설 <제주도우다>를 읽고 그의 초기 작품 <순이삼촌>의 배경이 된 곳과 <제주도우다>에 나오는 4·3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순이삼촌>의 배경이 된 북촌리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민간인학살이 자행된 현장이다.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 희생을 초래한 북촌리 학살 사건은 북촌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들과 밭에서 북촌리의 마을에 있었던 불가항력의 남녀노소 400명 이상이 한날한시에 학살된 일이다. 

명절처럼 제사를 한날한시에 지내는 북촌리에는 너븐숭이 애기무덤 등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많은 흔적이 있고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그 자리에 지어졌다. 기념관에 있는 제주 4·3 연구소가 발표한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49년 1월 17일 함덕 주둔 2연대 3대대 군인들에 의해 북촌 초등학교 운동장에 집결한 북촌리민들은 50 ~ 100여 명 단위로 끌려 나갔다. 먼저 학교 동쪽 당팟 쪽에서 총소리가 났다. 그리고 서쪽 너븐숭이 일대로 주민들을 끌고 온 군인들은 탯질, 개수왓 등지에서 주민들을 집단 총살했다. 그 일대는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부녀자 등 일부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하기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어른들의 시신은 임시 매장했다가 사태가 안정된 후 안장되기도 했으나 당시 어린아이와 무연고자 등은 임시 매장한 상태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너븐숭이 소공원에는 널브러진 시체를 상징하듯 비석들이 길게 포개져 누워있었고 비석에는 <순이 삼촌>에서 따온 문장들이 새겨져 있었다.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오백 위(位) 가까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 당시 일주 도로변에 있는 순이 삼촌네 밭처럼 옴팡진 밭 다섯 개에는 사체들이 허옇게 널려 있었다. 밭담에도, 지붕에도, 듬북눌에도, 먹구슬나무에도 어디에나 앉아 있던 까마귀들. 까마귀들만이 시체를 파먹은 게 아니었다. 마을 개들도 시체를 뜯어 먹고 다리 토막을 입에 물고 다녔다.”

“그때 혼자 살아난 순이삼촌 허는 말을 들으난, 군인들이 일주도로 변 옴팡진 밭에다가 사름들을 밀어붙였는디, 사름마다 밭이 안들어가젠 밭담위에 엎디어젼 이마빡을 쪼사 피를 찰찰 흘리멍 살려달렌 하전 모양입디다.”

“쯧쯧쯧, 운동장에 벳겨져 널려진 임자 없는 고무신을 다 모아 놓으면 아매도 가매니로 하나는 실히 되었을 거여. 죽은 사람이 몇백 명이나 될까?” 

비석의 글을 읽으며 75년 전 제주의 4·3을 생각하게 되고 최근에 발표된 현기영 작가의 장편 소설 <제주도우다>를 생각했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부터 4·3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근현대사를 4·3의 비극으로부터 살아남은 ‘안창세’의 목소리로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4·3 이란 75년 전 1948년 4월 3일 군, 경, 서북청년단의 횡포와 잔혹 행위 그리고 남한의 단독선거에 저항해 일부 도민이 무장 궐기했던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대대적인 ‘빨갱이 잡기’가 전개되고 그해 11월17일에는 계엄령하에 제주도 해안선에서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이 자행됐다. 

남로당 쪽의 무장 게릴라들에 의해 희생된 사람도 있지만 주로 군경에 의해 어린아이들부터 할머니까지 죄 없는 양민이 3만 혹은 5만 명 이상 희생됐다. 

불타거나 파괴된 가호가 15,228호, 피해 가옥이 35,921동에 이르렀고 이재민 수는 당시 전체 인구의 35%가량인 91,732명이라고 나타났으나 실제로는 인구의 절반인 14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미군 비밀문서가 과장 집계한 빨치산(무장 유격대)의 숫자가 250명, 그리고 그 동조자의 숫자가 1,000 ~ 1,500명에 불과하였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이 희생자의 숫자는 빨치산의 색출을 빙자하여 무려 7년 7개월 동안 계속된 철저한 대토벌, 대학살을 반증하는 것이다. 

현기영 작가는 말한다. 

“사람들은 눈 속에 피는 붉은 동백꽃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눈 위에 무더기로 떨어져 뒹구는 붉은 낙화들도 아름다웠을 것이다. 아름답게 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그 악한 시절 이후 내 정서는 왜곡되어 그 꽃이 꽃으로 보이지 않고 눈 위에 뿌려진 선혈처럼 끔찍하게 느껴진다. 아니, 꽃잎 한 장씩 나붓나붓 떨어지지 않고 무거운 통꽃으로 툭툭 떨어지는 그 잔인한 낙화는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목 잘린 채 땅에 뒹굴던 그 시절의 머리통들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제 75년이 지나서야 4·3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고 무고히 희생된 그 많은 사람의 혼백을 위로하고자 4·3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평화공원에는 약 만 오천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연고자가 모두 사망해 이름도 못 올리고 희생된 많은 사람을 상징하는 이름 없는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동백꽃의 아름다운 낙화에서도 목 잘린 채 뒹굴던 머리통을 생각하게 하는 그 잔인함. 얼마나 많은 혼백들이 아직도 제주의 칼바람 속을 헤매고 있을지...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란?미국 인구 중의 약 5천5백만 명이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치료를 위해 매해 800억 달러 이상의 돈을 지출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많다고 합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란 대장의 기능성 장애로 만성적인 복…
    건강의학 2023-12-08 
    11년 전멀쩡히 출근했던 남편이 얼굴에 60여 개의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나타났다. 몰골이 너무 사나워서 뒤로 자빠질 뻔하였다. 뉴욕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러 가겠다는 꿈에 부풀어 검증도 안 된 곳에서 점을 모조리 빼고 온 거였다. 그의 돌발 행동에 적잖게 …
    문화 2023-12-08 
    안녕하세요! 12월이 되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올해도 시간이 유난히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남은 한달 동안에 올해 연초에 계획 하셨던 일들을 잘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주제는 ‘꼬막 비빔밥’이며 이번에 저희 텍사스 캐롤턴 매장에 꼬막비빔밥 행사가 있기…
    문화 2023-12-08 
    스타급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아닌 이상 자본주의 시장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은 단 하나, 돈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이 방법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간의 격차는 끊임없이 벌어진다. 학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방법이…
    부동산 2023-12-08 
    모처럼 찾아온 3박4일의 추수감사절 연휴입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텍사스의 늦가을 하늘의 깊은 빛깔을 음미하며 바리바리 여행도구들을 주워담아 배낭을 챙기는 것조차 아쉬울 만큼 맑은 하루입니다. 서둘러 수요일 오후 늦게 일출에 어우러진 물안개를 만나기 위해 전조등을…
    문화 2023-12-01 
    오랜만에 고향 제주를 찾았다. 조천면의 동쪽 끝에 자리 잡은 해변 마을 북촌리에 가서 북촌 초등학교와 너븐숭이 소공원을 돌아보고 제주시에 있는 제주 4·3평화공원을 방문했다. 현기영 작가의 최근 장편 소설 <제주도우다>를 읽고 그의 초기 작품 <순이삼촌…
    문화 2023-12-01 
    코로나사태와 더불어 지속되는 낮은 이자율은 많은 사람들에게 집을 사거나 재 융자  심지어 좀더 큰 새 집으로 이사하도록 자극제 역활을 해왔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한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인데 막상 집을 산다고 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특별히 처음 집을 사는…
    보험 2023-12-01 
    미국이나 한국이나 해외여행이 일반화 되면서 유럽이나 웬만한 아시아국가 여행은 안 해 본 사람이 별반 없을 정도로 흔한 일이 되었다. 그 사이 코비드를 거치며 본의 아니게 칩거에 들어간 여행객들이 작년부터 다시 공항으로 쏟아져 나와, 지금 세계는 어느 공항을 가든 여행객…
    문화 2023-12-01 
    2023년 올해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에는 세법이 크게 바뀐 것이 없기 때문에 지난해보다 빠르게 IRS는 2023년도 세금보고를 1월 20일경부터 접수할 것으로 예상된다.절세의 제일 원칙은 수입은 가능한 내년으로 늦추고 비용은 해당 연도에 지불하라 것인데 이것…
    문화 2023-12-01 
    안녕하세요!  건강을 위해 빠지지 말아야 할 식품의 종류가 있습니다. 바로 채소류 입니다. 고기와 함께 먹으면 궁합이 좋으며 인체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채소입니다. 오늘은 ‘콜리플라워’ 라는 아주 좋은 채소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콜리플라…
    문화 2023-12-01 
    누군가 당신에게 말한다. ‘자기야 봤어? 어젯밤에 걸린 11월의 거대한 보름달을… 이는 누군가가 맑고 투명한 수채화로 그림을 그려 저 나뭇가지 사이에 걸어 놓은 것 같지 않아? 사랑의 머무는 언덕에 수채화 붓을 들어 거기에 그리움이라는 느낌표를 찍고 싶어. 그리고 우리…
    문화 2023-11-24 
    요사이 차세대들에게 인터넷 게임의 의미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보인다.리그오브레전드 (LoL ·롤) 월드 챔피언십 (월즈·롤드컵)으로 지칭되는 롤드컵이 지난주 우리 고국에서 열렸다고 한다.지난 19일 서울에 위치한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전에서 우리…
    세무회계 2023-11-24 
    얼마 전 유튜브 뉴스로 서울에서 살고 있는 야생 동물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영상의 제목은 「서울이 야생동물의 낙원? 멸종위기종만 41종 확인」이었다. 제목만 보고는 야생 동물이 그곳에서 산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은 고층 아파트와 자동차로 가득한…
    문화 2023-11-24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겨울철 인기 간식인 찐빵과 붕어빵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찐빵은 그 유래를 중국의 만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속설에 따르면 1341년 중국 원나라로 유학을 갔던 일본의 승려가 임정인이라는 중국인과 함께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
    문화 2023-11-24 
    기원전 4세기에 흥했던 로마제국의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발전은 ‘아피아 도로망(Via Appia)’이 출발점이 되었기에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최근, ChatGPT가 폭발적인 관심과 함께 모든 디지털 혁신의 ‘아피아 도로망’으로 인식되…
    부동산 2023-11-24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