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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소담 한꼬집’ ] 남자의 변신도 무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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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401회 작성일 23-12-0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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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멀쩡히 출근했던 남편이 얼굴에 60여 개의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나타났다. 몰골이 너무 사나워서 뒤로 자빠질 뻔하였다. 뉴욕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러 가겠다는 꿈에 부풀어 검증도 안 된 곳에서 점을 모조리 빼고 온 거였다. 

그의 돌발 행동에 적잖게 놀랐다. 뭣보다도 나에게 상의 한마디 없이 혼자 알아보고 실행에 옮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남편은 집과 직장, 가족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언제나 칼퇴근해서 집을 가꾸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어서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고 사는 줄 알았다. 

퇴근 시간에 변동이 생겼다면 그건 교통 체증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직원들과 운동이라도 하고 오라고 등을 떠밀었을까. 일 년 내내 회사 로고가 찍힌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다녀서 얼굴에 손대는 일을 할 거라곤 감히 상상치 못했다. 

알고 보니 동창은 남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놀라운 반전이었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만나러 가려니 텍사스에 살면서 생긴 점과 잡티가 몹시 거슬렸던 모양이다. 일을 가려면 기름 낀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얼굴에 물이 닿으면 안 된다고 하니 도 닦는 심정으로 친히 머리를 감겨주었다. 그 말을 들은 지인이 농담을 했다. 딴 년 만나러 간다는데 목을 눌러 버리지, 순순히 감겨줬냐고. 

생각해 보니 그 무렵 안 하던 짓을 한 건 그 뿐이 아니었다. 

낮엔 미국 동창, 밤엔 한국 동창들과 시도 때도 없이 카톡 방에서 문자를 주고받는데, 기계음이 시끄러워서 전화기를 부숴버리고 싶은 정도였다. 문자를 읽고 댓글 다는 재미에 빠져 침대에서도 전화기를 끼고 살았다. 

개울가에서 함께 놀던 깨복쟁이 친구들과의 소통이 밋밋했던 그의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고, 심장을 뛰게 하는 것 같아서 나 몰래 점을 뺀 것도, 카톡질도, 뉴욕 나들이도 눈감아주었다. 여자의 변신만 무죄는 아니니까.

 

11년 후

이번엔 성형 바람이 불었다. 남편에게 처음 바람을 넣은 건 내 동생이었다. 눈 밑 지방 재배치를 하니 십 년은 젊어 보이고 자존감이 높아졌다며 매형도 하라고 권했다. Before & After 사진을 보여주며 수술 전엔 사람들이 늘 피곤하냐고 물었는데, 이젠 그런 질문이 사라져 만족스럽다며 부추겼다. 나이 들면 피부가 늘어지고 처지니 주름이 생기고, 눈 밑 지방이 쌓여 불룩해지거나 푹 꺼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현대인들은 선조들처럼 부모님이 주신 얼굴을 유지하며 살지 않는다. 수명이 길어진 탓인지 하루를 살더라도 예쁘게 살다가 죽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성형이 보편화되었다. 

매형도 눈 밑이 많이 꺼졌으니 지방 재배치를 해보라는 말이 귀 얇은 남편의 마음을 휩쓸고 지나갔다. 

손님을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말할 때 눈을 마주치게 되는데, 내심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성형을 결심한 건 시동생의 영향이 컸다. 동서가 먼저 수술을 했고, 뒤이어 시동생이 하고 돌아왔다. 수술 후 얼마나 예뻐졌는지 아직 보진 못했지만, 상처가 아물고 자리 잡으면 콤플렉스는 사라지고 내 동생처럼 젊어 보이지 않을까 싶다. 

남편은 한국에 출장가도 한 이틀 머무는 게 고작이라 친척도 못 만나고 돌아오는데, 이번엔 작심하고 2주를 비웠다. 

시간을 아끼느라 도착한 다음 날 병원에 갔다. 요즘은 카톡으로 예약하고 숙지해야 할 사항을 미리 알려주니 어려울 건 없었다. 남편은 시동생보다 상태가 안 좋았는지 지방 재배치가 아니라 하안검을 하게 되었다. 영상통화를 하며 보니 꿰맨 자리에 약을 발라 번질번질하고 검은 실이 비쳐서 아이라인을 칠한 것처럼 보였다. 

눈 밑 양 볼에는 넓적한 테이프를 붙여 놓은 데다 머리에 기름이 끼어 착 달라붙은 모습이 혼자 보기 아까웠다. 

사흘 동안 샤워를 하면 안돼서 물휴지로 대충 닦고, 호텔방에 스스로 갇혀 먹고 자는 것만 하면 되니 팔자가 늘어졌구나 싶었다. 그

런데 돌아보니 자기 어깨에 달린 가족과 직원들 건사하느라 맘 편히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그리 된 거 휴가다 생각하고 푹 쉬었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성형하고 숨어 지내기에 딱 좋은 시기였다. 지인 모녀는 그때 성형을 하고 숙소에서 음식을 시켜 먹으며 쉬다 돌아왔다. 

나도 소원이었던 쌍꺼풀 수술을 해볼까 하여 따라갔는데, 먹는 약을 끊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포기했다. 남편이 자기가 성공하면 나도 눈 밑 지방 재배치를 해보라 하니 그때 갈아엎어 볼까 생각 중이다. 

남편이 반창고를 떼었다. 자글자글하던 눈가 주름은 보톡스를 맞아 사라졌고 하안검을 해서 푹 꺼졌던 눈 밑이 채워졌다. 꿰맨 곳이 흉하긴 하나 샤워를 하니 그나마 사람 같아 보였다. 실밥을 풀고 아물면 십 년 전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낯설었다. 

하안검과 주름을 폈을 뿐인데 내가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인상이 바뀌었다. 남편은 바뀐 모습이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그래, 다 용서해 주마. 남자의 변신도 무죄이니까.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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