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비오는 날의 캔쿤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498회 작성일 23-11-17 13:47

본문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흐 흐흥 흐 흐흥~ 흐 흐응 흐 흐응~~. 멕시코 음악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역시 나는 딴따라 기질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넓은 호텔 바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조상 어디쯤엔가 멕시코 종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자, 양다리는 이미 음악을 타고 있었고 내 두 팔은 언제부턴가 이미 거기에 있었다는 듯 음악에 맞춰 허공을 젓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나의 조상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걸까요. 한 번도 밟아보지 않았던 스텝을 밟으며 보란 듯이 두 팔이 날개라도 되는 양 음악을 타고 있었습니다. 

몸치라고 늘 생각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리에 없던 힘이 들어가고 내게 없던 엉덩이가 나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흥에 겨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춤을 추고 있는 멕시코 사람들 틈에 조그마한 동양 여자들이 어깨를 흔들고 끼어드니 반가웠던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둥글게 자리를 넓히면서 우리를 기꺼이 받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음악은 나라가 공인한 마약이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역시 그랬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류가 음악 앞에서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였습니다. 음악 앞에서는 피부색도 언어도 상관없습니다.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해석이, 설명이 필요치 않은 것이 바로 음악입니다. 오로지 느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지요.

“나 잡아 봐~~라!” 닭살 돋는 드라마 속 장면을 나도 한번 재연해 보리라 생각하고 무작정 아무 생각 없이 따라온 여행이었습니다. 

물이 무섭고 여전히 수영은 할 줄 모르지만, 더 늦기 전에 비키니도 한번 입어보리라 마음먹고 부랴부랴 준비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어디서 며칠을 묵는 줄도 모르고 친구의 전화 한 통에 크레딧 카드를 건네주고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4개월 전쯤의 일이었습니다. 친구들끼리 뭉쳐서 여행 한 번 하자는  친구의 제안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덥석 동의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 이젠 우리도 그럴 때가 되었어.” 싶었습니다. 이민 생활에 거의 30년 지기이면 소꿉친구나 다름없습니다. 흉허물 이럴 것도 없이 볼 거 다 본 사이가 되고 보니 이렇게 함께 늙어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도착시간도  늦었지만, 호텔 체크인하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통에 호텔의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아 할 수 없어 룸서비스로 저녁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함께 왔으니, 저녁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모두의 염원에 각자 방으로 이동하기 전에 한 방에 모여 앉았습니다. 좀 일찍 도착한 1팀과 모두 같이 모이니 열세 명이 되었습니다. 

처음 꾸렸던 멤버 몇 명이 빠지고 생각도 안 했던 다른 친구들이 조인하면서 오히려 여행에 탄력이 붙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습니다. 3박 4일 동안 함께 추억을 만들고 공유하게 될 사이라서 그런지 낯선 것보다 반가움이 앞섰습니다. 첫눈에 정을 주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말로만 듣던 캔쿤의 아침은 화려하게 열리고 나는 파랗게 펼쳐진 바다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번스의 말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3일 내내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대로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마치 태풍이라도 몰려올 기세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사정없이 내리는 비에 해변을 거닐다 쫓겨 들어오며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호캉스로 그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와 함께 올 인쿨루시브의 정수를 느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마가리다와 모이또를 마시면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어울리지 않게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낮술로 하루를 보내기엔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고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역시 우리는 모두 비를 맞아도 좋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1불씩 내고 버스에 오른 우리는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Puerto Maya 정글 투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야 의식을 시작으로 잠깐이지만 마야문명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출렁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간 우리는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이 짝이 되어 5대의 스피드 보트에 올라탔습니다. 키를 잡는 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 가이드를 선두로 줄을 지어 출발한 보트들이 카리브해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생전 처음 스피드 보트에 오른 나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얗게 꼬리를 그리며 달리는 보트를 바라보는데 지나온 나의 발자취가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천천히 숨을 고르던 때도 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 페달에 힘이 들어갔을 때도 있었습니다. 

가끔 반 박자가 빨라 급정거가 필요했을 때도 있었고, 박자를 놓치고 당황하던 때도 많았습니다. 오늘을 사는 일에 정석이 없음을 새롭게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비 맞기를 각오한 덕이었을까요. 하늘이 절대 무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종일 인내심을 가지고 참고 있었던 비는 우리가 무사히 호텔에 도착하자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체험으로 아슬아슬하게 하루를 넘긴 우리는 만찬을 즐기며 남은 하루를 위해 함께 건배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에는 늘 힘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특별한 날이 되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비에 대한 불안을 접을 수 없던 터라 미리 야외 활동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유리로 된 배를 타고 바닷속 여행을 하는 걸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다시 한번 우리들의 운을 하늘에 맡겨 보기로 했습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바닷속 여행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난 것으로 보아 오늘도 하늘은 여전히 우리 편이었음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수학여행 온 사람들처럼 들뜨고 행복했던 여행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공유했다는 건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우리를 멋진 여행자로 만들어 준 친구의 건배사가 빛나는 여행이었습니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청바지!”

 

김미희

시인 /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하늘의 먼 정원이 시들어가듯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무심코 멈춰선 곳에 찾아온 11월,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떨어지는 형형색색의 낙엽의 향연을 같이 호흡하며 무심코 걸었던 길가에 드디어 가을이 찾아왔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데 …
    문화 2023-11-17 
    보험제도가 없는 나라는 없지만 미국처럼 보험제도가 잘 발달된 나라도 흔치 않다. 그러므오 미국에 살면서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이 많지만, 그 중에 특히 보험은 세금, 융자 등과 더불어 일상생활과 사업에 가장 필수적인 것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험에 대해 간접 혹은 단…
    보험 2023-11-17 
    지난번 칼럼에서 미국의 증여 및 상속세 면제금액이 현재의 일 인당 12.92 Million 달러에서 2026년 1월 1일부터는 6 Million 달러로 하향 조정된다는 기사를 읽고 많은 분들이 문의를 해주셨는데 주된 질문의 내용은 실제 2년 후에는 상속세 면제금액이 하…
    세무회계 2023-11-17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흐 흐흥 흐 흐흥~ 흐 흐응 흐 흐응~~. 멕시코 음악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역시 나는 딴따라 기질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넓은 호텔 바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조상 어디쯤엔가 멕시코 종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문화 2023-11-17 
    가을의 아름다운 선율이 세상을 변신시키는 11월 넷째 주, 가을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느낌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느낌’ 이라고 어떤 분이 표현했던 것처럼 가을에 듣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2악장을 들어보자. 쇼팽의 음악처럼 수줍음과 쑥스러움이 이 곡에 표…
    문화 2023-11-10 
    이곳 달라스/포트워스 기반으로 알링턴에 돔 야구장을 홈으로 삼고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가 창단 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맛보았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10월과 11월의 교차점에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월드시리즈(7전 4승제) 5차전에서 애…
    세무회계 2023-11-10 
    오랜만에 지인이 출연하는 방송을 듣기 위해 ‘라디오 코리아’ 앱을 열었다. 처음엔 열심히 찾아 들었는데, 매번 방송 시간에 맞춰 듣는 것도 일이다 보니 점점 일상 뒤로 묻혔다. 그가 전화하지 않았다면 방송 날짜를 옮긴 것도 몰랐을 것이다. 일을 줄이려고 애써 보았지만,…
    문화 2023-11-10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요새 한국의 SNS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그야말로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탕후루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탕후루는 산사나무 열매(山査子)나 작은 과일 등을 꼬치에 꿴 뒤 설탕과 물엿을 입혀 만드는 중국 과자입니다. 중국의 대표…
    문화 2023-11-10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모든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자시점 판단이 중요하다. 투자자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투자 시점과 어떤 자산에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한 자산의 매도는 언제 할 것이며, 또 다른 자산은 언제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투자자…
    부동산 2023-11-10 
    버지니아의 수도 리치먼드의 사람들은 리치먼드가 날씨도 좋고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자랑한다. 멀지 않은 곳에 산이 있고 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고 바다가 두 시간 거리에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느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습기가…
    문화 2023-11-03 
    ACA Health Insurance(오바마 케어) 법안은 2010년 3월에 통과되었고 Affordable Care Act (ACA)라고 불린다. 이 법안은 2014년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되었으며, 전 국민의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의료보험 개혁이다. 그러나  …
    보험 2023-11-03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 그 하나요 또 다른 하나는 세금이라고 한다.일을 하고 돈을 벌면 누구나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사람이 죽으면 세금을 이미 낸 재산에 대해 또 다…
    세무회계 2023-11-03 
    ◈ 아기들에게도 척추교정이 필요 할 수 있다?영유아들에게도 카이로프렉틱 치료가 필요하고 그 필요에 따라 교정치료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놀라시는 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카이로프렉틱 치료는 어른들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아이들에게는 척추의 …
    건강의학 2023-11-03 
    퀘백에서 두 칸짜리 기차를 타고 한 시간쯤 걸리는 베셍폴( Baie Saint Paul) 이라는 마을로 갔다. 예전에 증기기관차가 내는 뿌우웅 소리를 내며 달리는데, 기차 안 풍경은 한국과 좀 다르지만, 어린시절에 탔던 완행열차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학만 되면 오빠와…
    문화 2023-11-03 
    안녕하세요! 아침에는 약간 쌀쌀하지만 오후에는 시원하면서 상쾌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가을의 중심인11월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가을하면 빠질 수 없는 과일 ‘단감’입니다. 가을 시즌에는 농장의 많은 과일과 채소들이 무르익는 계절이며 수확도 가장 많은 계절입니다.  요즘…
    문화 2023-11-03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