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스퍼스의 도시 샌안토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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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약 40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주위 사람들이 너무 이르게 은퇴하는 것 같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년이란 개념이 없는 직장에서 은퇴는 개인의 취향에 맞추어 한다지만 80이나 90까지도 은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70전에 은퇴한다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겠다 싶었다.
나로선 몸이 팔팔할 때 은퇴하여 먼 나라 여행도 다니면서 글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간을 좀 당겼는데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은퇴하면서 코비드가 나오는 바람에 생각했던 여행은 포기해야 했고 집에 갇혀 정원을 가꾸며 강아지 두 마리와 생활하는 것이 은퇴 후 삶이 되어버렸다.
미국에서 교직의 시작은 박사학위 후 조교수로 시작한 버지니아 의과대학에서였다. 테뉴어(종신 교수직)를 받고 정교수로 승진하고 나서는 당연히 그곳에서 평생 근무하다 은퇴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누라가 샌 안토니오에 있는 텍사스 대학으로 뽑혀 텍사스로 옮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텍사스 대학에서 월급도 많이 주니까 샌안토니오에서 리치먼드까지 매주 출퇴근하면 된다며 주말에는 리치먼드 집에 와서 지내고 주중에는 샌안토니오에서 지내기로 하고 텍사스 대학에 오퍼를 승낙했다.
마누라의 말이 “아무래도 매주 오는 것은 힘들 것 같으니 한번은 당신이 한번은 내가 비행기를 타자”라고 바뀌더니 “새로 시작하는 일이 힘들 것 같으니 내가 정교수로 승진할 때까지 매주 당신이 샌안토니오로 와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다 같은 대학에서 통계학과 교수를 뽑는다고 응모하라고 한다. 내 연구 분야인 생물 정보학을 전공하는 사람을 뽑는 정교수 자리였다.
매주 비행기 탈 생각에 머리가 찌근거렸는데 마감일에 지원서를 내어 뽑혔다. 동네에 사는 남자들은 마누라가 먼 곳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부부 싸움하면 갈 곳이 생겼다고 신나다가 나마저 간다는 소식에 무척 서운해했다.
20년가량 한 직장에서 지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것은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집을 구하느라 잠깐 들린 샌안토니오는 아름다웠고 맛있는 식당도 많았다. 여러 인종이 잘 어울려 사는 곳 같았고, 학교에선 한국 교수들도 있어 적응이 쉬울 것 같았다.
특히 스포츠를 좋아하던 우리 부부에게는 샌안토니오의 농구팀 스퍼스가 있어 시즌마다 열심히 구경도 가고 응원하며 지낼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매이저 프로 스포츠팀이 없어서 우리가 다녔던 워싱턴대학이나 시에틀의 축구팀을 응원했을 때와 달리 이제는 우리 팀 “스퍼스”가 생겨 열심히 응원하다 보니 정말 샌안토니오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느껴졌다.
20년 동안 살면서 샌안토니오가 고향이라고 느끼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스퍼스 농구팀이다.
당시 스퍼스팀은 “빅 쓰리“라는 팀 덩칸, 마누 지노빌리, 토니 파커가 선수단을 이끌었고 불세출의 감독 그레그 파파비치가 사령탑으로 있으면서 1999, 2003, 2005, 2007 그리고 2014년 NBA 챔피언이 된 팀이다,
스퍼스팀의 탈의실에는 사회개혁자 재이콥 리스의 다음과 같은 인용구가 액자에 넣어져 전시돼 있다.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을 때 나는 채석장에 가서 석수장이가 바위를 두두리는 것을 본다. 백 번을 두두려도 바위는 금 한 조각 나지 않는다. 그런데 백 한 번째 두드리자 바위가 쩍 두 조각으로 갈라진다. 나는 안다. 그 마지막 두드림이 그 바위를 쪼겐 것이 아니라 그전의 모든 두드림이 합해져 바위를 갈라지게 했음을.“
스퍼스의 경기를 보면 지고 있어도 꾸준히 해머를 휘두르며 바위를 두두리는 석수장이 같다. 마치 101번째 망치질이 승리를 가져오리라 믿으며 두두리는 것이 스퍼스의 철학이다.
내가 본 가장 기억나는 경기는 2013년의 NBA 챔피언쉽 경기와 2014년 챔피언쉽 경기다. 두 번 다 마이애미팀 히트 팀과의 경기였는데 2013년 경기는 다 이기다 3초를 남겨놓고 동점 골을 넣게 만들어 결국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다른 팀 같으면 그 때의 큰 실망 때문에 힘든 다음 해를 보내며 시들하게 될 것 같은데 스퍼스는 망치질을 멈추지 않고 계속 두두려 ‘아름다운 농구’를 한다는 말을 들으며 2014년 챔피언으로 등극하게 된다.
스퍼스 경기에 몰두했을 때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내 키가 몇이냐고 물었는데 ”식스 에이트(6피트 8 인치)“이라는 대답을 듣고 ”허어?“하며 놀란다. ”아 내가 나이가 들어서 키가 좀 줄어들었나보다”라고 했더니 간호사가 다시 “어??” 하고 놀란다.
그 당시 보리스 디아우라는 프랑스 출신의 선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키 대신 그의 키를 말한 것이었다. 거기다 나이들어 키가 1 피트나 줄었다고 했으니 놀랄만했다. 실수했구나 생각하고 “아! 식스가 아니라 파이브야, 5-8”이라고 교정을 해 오해를 풀었지만 농구에 몰두하다 보면 일 년 사이에 30센티미터가 커질 수도 또 줄어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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