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잘 먹고 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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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코에서 장을 봐 온 김에 부엌에 있는 냉장고 총정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알다시피 홀세일 창고형 마켓인 코스코는 대부분 대용량 패키지 물품을 판다. 특히, 육류나 유제품, 화장지, 물 등 인기품목들은 확연히 시중보다 가격과 질이 좋은편 이어서, 어쩔수 없이 한 달에 한 두번은 가게 된다.
오늘만 해도 난 12개가 들어있는 그릭 요구르트 한 박스, 8병짜리 콤부차 한 세트, 달걀 2다즌, 4모가 들어있는 두부 한 세트, 2파운드 방울토마토 한 팩 , 수박등등을 샀다.
세 개의 냉장고가 있지만, 한 개는 주로 한국음식용이고, 다른 한 개는 음료수나 야채가 들어있어, 난 코스코 장은 주로 가까이 있는 부엌 냉장고에 보관을 한다.
그런데 냉장고 안은 이미 포화상태이다. 먹다 남긴 찌개며, 국, 외식하고 투고박스에 가져온 남은 음식, 그 전주에 요리한 닭도리탕에, 알뜰 주부처럼 몇 젓가락도 안 되는 잔반들을 모아둔 것이 수두룩하다. 잔반은 설거지 할 때 과감히 버리면 되는데, 음식 버리면 벌 받는다는 말을 듣고 자란 세대라서 그런지 쉽게 버리지 못한다.
또래의 주부들과 얘기를 해보면 사정은 비슷하다. 더구나 예전처럼 식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같은 음식을 끼니마다 먹는 것도 아니니, 양을 줄여서 조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또 말처럼 쉽지가 않아 탈이다.
생각해보면 냉장고가 없던 시절, 아니 있어도 하나였던 시절에 우리는 훨씬 잘먹고 잘 살았던 것 같다. 잘먹고 잘산다는 의미가 비싸고 고급진 음식 먹고, 호화로운 집에서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면 말이다.
70년대 초만 해도 냉장고가 흔하지 않아 여름이 되면 사각 얼음을 사서 네모진 아이스박스 안에 두고 김치나 콩물, 수박 같은 것을 넣어두고 먹었다. 그런데 그 얼음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이 삼일이어서 여름내내 심부름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음식은 그날 먹을 것 장봐서 신선하게 만들어 즉석에서 먹고 잔반은 거의 남지 않았다.
뭐든 없어서 못먹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음식쓰레기가 넘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때였다.
굳이 식탐에 대한 절제를 가르치지 않아도, 식생활 자체가 절제를 가르쳤던 같다. 그러다보니, 요즘처럼 성인병을 달고사는 성인들도 드물었고, 비만아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야말로 소박하게 그날 먹을 양만큼 ‘일용할 양식’을 만들어 먹던 시절이었다. 그런 까닭에 난 지금도 수박 한통을 썰어 놓으면 감쪽 같이 사라지던 그 때가 몹시 그립다.
인간은 농경사회에 들어서면서부터 저장하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수렵시대에는 그날 잡은 사냥감을 대부분 즉석에서 소비를 했다. 그러니 안 잡히는 날은 굶어야 해서, 과학자들은 비만의 근원을 배고플 때를 대비한 응급 책이라고도 한다. 잦은 다이어트 실패에 내가 잘 대는 핑계이기도 하다.
아무튼 적당한 대비는 분명 필요한데, 문제는 소비자들을 과소비 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미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잉여 생필품은 물론 음식이 쓰레기가 되어, 이상기후를 촉발하는 지구온난화에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조사한 환경보고서를 보면 부유한 국가들이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양은 연간 2억 2200만톤으로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지역의 지역 식량 생산량과 거의 맞먹는다고 한다.
부유한 국가에서 1인당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양도 연간 95-115kg로 가난한 나라의 1인당 음식물 쓰레기양과 10배 차이가 난다고 하니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소위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진정으로 잘 먹고 잘살고 있는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저소득 국가에서 수출하는 농산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싼 가격에 맘껏 소비하며, 생필품 역시 가난한 나라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차고 넘치게 누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잘 벌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상다리 부러지게 산해진미를 먹어야 잘 먹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었던 청빈낙도, 안빈낙도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지 오래고, 각종 먹거리, 건강정보의 홍수속에서 <다다익선>이 최고인양 부풀어대는 광고에 속으며, <과유불급>은 잊은지 오래다.
그럴수록 국가간, 개인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주변을 보면 형편과 상관없이 끊임없는 기부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을 가끔 만나게 되는데, 난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을 이분들에게 배우고 싶다.
절약한 것을 함께 나누고, 함께 여서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기적이 이 분들에게는 매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족하며 필요한 음식을, 필요한 양만큼 골고루 적당히 구입해서 먹고, 이웃들과 나누며 계획적인 소비습관을 들이는게, 잘먹고 잘사는 법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시대마다 다른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해 우리는 얼마만큼 자유로운지 묻고 싶은 더운 8월의 저녁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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