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밥상 차리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839회 작성일 23-07-06 15:15

본문

분무기로 물을 뿜었다. 종이 행주로 물이 뿌려진 식탁을 꼼꼼히 닦았다. 

가족 수만큼 식판을 배치하고 수저받침을 놓았다. 식기 세척기에서 꺼낸 후 광이 나도록 더 닦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그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뚜껑을 덮어 놓은 생선 전용 프라이팬 속에서 고등어가 지글거리며 익어가고, 가스레인지 위 뚝배기에는 된장찌개가 끓고 있었다. 

찌개 위로 보드라운 두부가 들썩거렸다. 홍고추와 청양고추를 썰어 넣었더니 더 먹음직해 보였다. 

전기밥솥이 친절하게 밥이 다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압력 손잡이를 돌리고 뚜껑을 여니 하얀 김이 쏟아져 올라왔다. 구수한 밥 내음. 식탁을 차릴 준비가 되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생각을 못 했다. 우리의 휴가가 끝나고 각자의 직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그 만만찮은 일이 시작되었다. 

밥상 차리기.

결혼 전엔 어머니가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다. 

장거리 여행을 다녀야 하는 직업이라 집에 오면 흐드러지게 잠을 자는 딸에게 부엌일까지 시키기 싫었는지 어머니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그렇게 밥을 안 해본 채 결혼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치면 서둘러 빵을 굽고 달걀 프라이를 만들었다. 아침엔 간단한 음식만 먹으면 좋겠지만, 남편은 밥을 더 좋아했다. 당연히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다. 

모든 것이 서툴렀다. 직장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보면 진땀이 나곤 했다. 퇴근이 남편보다 늦었지만, 저녁 준비도 내 몫이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거의 매일 저녁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콩나물국은 어떻게 끓여요?”

“글쎄, 적당히 넣으라면 얼마큼 넣는 거예요?”

‘간을 적당히 해서 알맞게 끓여라.’와 같은 지침은 요리 초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나 다름없었다. 알려주시는 내용을 빼곡히 수첩에 적었지만, 갈 길은 멀었다. 

퇴근 후 8시경부터 시작한 저녁 준비는 빨라야 9시 반쯤 끝나고 식사 후 뒷정리까지 마치면 11시가 되었다. 주말마다 음식 재료를 잔뜩 사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도 일이었다. 

재료를 다듬고 씻어 알맞은 크기로 써는 것도, 불 조절을 잘해서 태우지 않고 익히는 것도 새색시에게는 도전이었다. 요리에 감이 없는 데다 손도 느리고 둔해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쩔쩔맸다. 이 일을 매일 끼니때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심지어 평생 해야 한다는 것이 가혹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밥상 차리기에 최선을 다하셨다.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에 외출하시는 법은 없었다. 

밥을 지어 먹이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덕에 나는 매일 아침 따뜻한 새 밥에 새 반찬을 먹고 학교에 갔다. 

화려한 요리는 아니었지만, 음식의 맛이 조화롭게 어울렸고 간도 적당해 가족들은 밥 한 그릇을 비우고 더 먹기 일쑤였다. 식 간에는 소박한 간식들을 내셨다. 옥수수, 부침개, 고구마, 식혜, 다양한 제철 과일 등 먹거리는 항상 충분했다. 

어머니는 애정 표현이 서툰 편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그날 일들을 조잘조잘 얘기해도 보통은 대답 없이 듣기만 하셨다. 생각해 보면 서운할 수도 있는 일인데, 이상하게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입맛을 잃은 아버지께는 미나리를 듬뿍 넣은 게 찌개를, 시험 기간에 핼쑥해진 내게는 조개 미역국을, 피곤한 얼굴로 들어오는 동생에게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내놓으셨다.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조용히 상에 올리는 것으로 관심을 나타내신 셈인데, 그것은 최고의 위안이 되곤 했다.

나도 밥상을 차려 온 지 30년이 되어간다. 큰아들이 독립해 나간 후 10인용 전기밥솥을 5인용으로 바꾼 것 말고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며칠에 한 번은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오늘 저녁은 뭐 해먹이나 고심한다. 신혼 때부터 어머니 레시피를 적어 온 수첩엔 이제 제법 많은 요리 비책이 올라가 있다. 

국물 얼룩이나 조미료 자국이 여기저기 묻어있긴 하지만, 두 아이는 그 수첩을 서로 차지하겠다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제는 음식 솜씨가 조금 늘었고 엄마 음식이 최고라는 찬사도 가끔 듣는다. 

객관적으로 그 정도는 아닌 게 자명하니 자식들에게는 엄마 음식이 최고인가 보다. 아들은 저녁 메뉴가 뭐냐고 자주 묻는 편이다. 그럴 땐 가끔 어머니의 열심을 떠올린다. 가족을 위해 밥상을 준비하는 일은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배고픈 갓난아기에게 따뜻한 젖을 물리는 것만큼 절실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배를 채우고 마음을 채워 세상과 다시금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지원이요, 따뜻한 응원가 같은 것이 아닐까.

구운 고등어 한 마리를 아들이 거의 혼자 먹어버렸지만, 그걸 바라보는 일은 흐뭇했다. 자식들에게는 비밀이지만, 여전히 밥상 차리는 일은 버겁고 재미없다. 어쩌면 우리 어머니도 무한 반복되는 그 일이 지겨우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재미없는 일로 가족이 행복하고, 그 모습 보는 것도 보람이 되니 밥상 차리기는 힘닿는 날까지 계속될 것 같다.  얻는 것이 많아 차마 버릴 수 없는 일이다. 

 

백경혜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어느 누군가가 ‘산다는 것은 기다림과 여행의 연속이다’ 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흩어지는 모래알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자연의 한 부분을 인생을 여행하며 기다림 속에서 얻어지는 작은 일들을 통해 기뻐하는 일들이 우리에겐 너무 행복한 일들일 것입니다. 그러한 …
    문화 2023-07-21 
    디스인플레이션은 현재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통화가 증발하는 것을 막고 재정과 금융 긴축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조정정책이다. 인플레이션에 의한 통화팽창으로 물가가 상승했을 때, 그 시점의 통화량과 물가수준을 유지한 채 안정을 찾기 위한 대…
    세무회계 2023-07-21 
    뒷집 지붕 공사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깼다.  한 시간만 자려고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잠결에 꺼버렸나 보다. 그 소리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보통 때는 쪽잠을 자도 오 분 간격으로 알람을 설정해 놓는데, 오늘은 그조차도 하지 않았다. 오지게 피곤했거나 일어날 수…
    문화 2023-07-21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요리에 들어가면 마법의 맛을 낸다는 MSG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MSG(Monosodium glutamate)는 1907년 일본 도쿄대 키쿠나에 이케다 물리화 학과 교수는 다시마 국물과 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맛에 주목했습니…
    문화 2023-07-21 
    18세기, 일본 에도시대에 신출귀몰한 거래로 일본 경제를 흔들었던 거상 혼마 무네히사 (本間宗久; 1717~1803)는 지금도 상인의 하늘, 거래의 신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는 23세에 혼마 가문의 양자로 들어가 쌀 거래로 엄청난 부를 축적해서 혼마 가문을 에도시대 천…
    부동산 2023-07-21 
    요즘은 기본적으로 100도가 넘는 찜통더위가 달라스 지역을 휘감고 있습니다. 곳곳의 물놀이 장소는 주말마다 대 만원을 이루며 바깥 공기보다 더 시원한 입김을 다시 들어 마시며 깊은 심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 멀리 시원한 곳을 찾아가 멋진 휴가를 보내고 싶지만 경제적…
    문화 2023-07-14 
    우리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표현할때 흔히 인종의 용광로라는 말과 소송의 천국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에 맞게 미국에서는 다양한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강한 미국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반면에 강력한 개인주의와 서로 다른…
    보험 2023-07-14 
    지난주 독립기념일 주말에 오클라호마의 작은 호수를 갔었는데 토요일 주말 밤인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차들이 35번 고속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얼마 안 가 그 많은 자동차들의 종착지를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는 아주 가깝게 있었던 치카소 도박장이 바로 그곳이었다. 십여…
    세무회계 2023-07-14 
    언젠가부터 우리 부부는 독립기념일이 다가오면 연례행사처럼 휴가를 떠나거나, 피난을 간다. 보통의 미국사람들처럼 연휴가 낀 홀리데이를 만끽하러 떠나는 것이면 더 좋겠지만, 우리는 불꽃놀이의 굉음을 피해 피신을 가는 것이다. 이사온 첫해에 난 우리가 사는 동네가 일반동네와…
    문화 2023-07-14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Fish Sauce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Fish Sauce는 멸치나 새우와 같은 작은 생선에 소금을 넣고 발효시킨 후에 맑은 액만을 걸러낸 액젓의 일종입니다. 액젓은 국가와 문화권, 역사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특히 …
    문화 2023-07-14 
    100도가 넘는 무더운 한여름의 열기가 달라스를 뒤덮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조물주의 오묘한 조화이지만 무더위에 지쳐 시들어가는 애써 가꾼 가든의 자식(?)들과 같은 아름다운 화초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을 뿌려봅니다. …
    문화 2023-07-06 
    분무기로 물을 뿜었다. 종이 행주로 물이 뿌려진 식탁을 꼼꼼히 닦았다. 가족 수만큼 식판을 배치하고 수저받침을 놓았다. 식기 세척기에서 꺼낸 후 광이 나도록 더 닦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그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뚜껑을 덮어 놓은 생선 전용 프라이팬 속에서 고등어가 지글…
    문화 2023-07-06 
    바다건너 고국은 온통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최종 보고서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간에 오염수 방류를 두고 그야말로 혼전을 거듭하고 있는 모양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가 정…
    세무회계 2023-07-06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공기와 같이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음식이지만 때때로 그 중요함을 잊어버리는 소금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예전 로마시대에 병사들에게는 종종 급여로 돈대신 소금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문화 2023-07-06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기에 자연의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돈을 가지고 하는 재테크 역시 돈의 속성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돈의 속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하면 어떤 분야든 투자에 대한 통찰력이 생긴다.‘돈 공부’에 대해 기초적이고 근본적이면서…
    부동산 2023-07-06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