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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4월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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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1,103회 작성일 23-04-2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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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누리가 초록과 연애 중 입니다. 가는 겨울이 심술을 부리는 듯, 봄이 다 왔다고 안심하는 순간 여기저기 얼었던 것들이 누수가 되고, 뒷마당의 가벼운 것들은 밤 사이 종적을 감추고,새들은 어김없이 돌아왔습니다. 

아쉽게도 어린 새 한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혀 생을 달리 한 것 말고는 봄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입니다. 

앞마당 유도화는 좀체 미동도 하지 않다가 4월이 되어서야 새잎을 보여줍니다. 

화분에 새 흙을 넣고 모종 파는 곳 몇 군데를 들러 올 한해 우리와 함께 지낼 화초들을 고르고, 정원에, 채소밭에 필요한 물건들을 몇 번은 더 사다 나르고, 변덕이 일거나, 잘못 고른 화분 한 두가지를 리턴을 해야 봄이 지나갑니다. 

파벨의 캐넌처럼 계절은 서서히 강약을 조절하며, 때로는 거친바람으로, 때론 흐리고 우울한 빛으로, 혹은 나비부인이 부른 ‘어느 개인날’로 우리의 기억속에 차곡 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부활성야 미사를 보며, 어린시절 엄마와 함께 보냈던 그 밤을 떠올립니다. 방석에 앉아 미사를 보던 그 오래전 성당에는 하루의 수고로움을 뒤로 하고 많은 신자들이 빼곡이 모여 있었는데, 난 늘 중간에 잠이 들어 깨어보면 미사는 끝이 나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앞줄의 꼬마가 빛의 예식때는 초를 두 개씩이나 들고 불을 붙이며 좋아하더니 끝끝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자고 있습니다. 

그 꼬마도 언젠가 자라서, 아들의 손을 잡고 부활성야 미사에 참석할 것입니다. 아무리 세대가 바뀌어도, 저 십자가와 부활은 계속되고, 미사 또한 계속 될 것입니다. 유한한 인간의 슬픔이 느껴지는 밤이기도 합니다. 벚꽃이 우수수 떨어지는 밤, 우리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듯, 부활의 기쁨을 맞이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생은 얼마나 지루하고, 지루할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새로움이 없는 세상은 그야말로 고인물처럼 부패되어 냄새가 진동하고, 새 생명을 창조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제의 나쁜 습관이나 구태의연을 버리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가는 것, 그것이 부활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웃에게서 얻어다 심은 돌나물과 쑥이 올해도 지천입니다. 성치않는 몸으로 유난히 꽃이나 채마밭을 가꾸는 걸 좋아했던 그녀는 봄이 되면, 쑥이나 돌미나리, 돌나물을 잔뜩 뜯어서,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 봄잔치를 하곤 했습니다. 

그녀가 만든 쑥버무리와 미나리초무침, 돌나물 물김치는 특히 맛이 있었습니다. 마당에 뭐가 조금만 돋아나도,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하던 그녀의 마음이, 오늘은 문득 그립습니다. 

봄처럼 나누는 걸 무척 좋아했던 따스한 이웃이었습니다. 미국의 시인 마야 안젤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당신이 한 행동을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잊지 않는다” 아무리 잘 생기고 명품을 휘둘렀어도 느낌이 별로인 사람이 있고, 외양은 수수하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느낌이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느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쉽게 급조할 수 없습니다. 평소의 습관과 버릇, 가치관, 인생관등이 집약된 결과이니 그렇습니다. 좋은 느낌이 나는 사람들은 좋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면 세상은 저절로 살맛이 나고 살기좋은 곳으로 변할 것입니다.

 

모처럼 긴 봄을 만끽 하고 있습니다. 올 해 윤달이 끼어서라는데, 봄 가을이 짧은 텍사스에선 드문일입니다. 

봄 코트를 입을 사이가 없이 여름이 되고는 했는데, 이번 봄은 제법 한국의 봄처럼 매섭기도 하고, 들꽃사이를 출렁이는 바람의 숨결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치 귀에 익숙한 싯구처럼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같기만 합니다. 수 많은 봄이 지나갔지만, 올해의 봄이 아주 특별한 것은 또 처음이자 마지막 봄이기 때문 일 것입니다. 

지난겨울, 만물이 정지되었다 믿었지만, 자연의 시간은 그 어느때 보다도 분주히 흘러갔음을 봅니다. 

여기저기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처럼 힘차게 삐죽 삐죽 얼굴을 내미는 새순들이 그 것을 말해줍니다.

 

죽었다고 여겼던 것들이 살아있음을 알게 되면 얼마나 반가운지요… 죽은 줄 알았던 두 그루 배롱나무와 보라색 쌀알이 핀 것 같은 이스턴 레드버드나무의 부활, 자신이 좋아하는 수액이 놓였던 자리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온 허밍버드는 우리를 지금보다 더 삶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들어줍니다. 

흔하지 않은 노란분꽃씨를 얻어와 심고, 쑥을 캐고, 민들레김치를 담는 일 또한 봄이 가져다준 귀한 일상입니다. 박남수의 ‘4월 비빔밥’을 비벼먹고 싶은 햇살 좋은 오후입니다.

 

 

햇살 한 줌 주세요

새순도 몇 잎 넣어주세요

바람 잔잔한 오후 한 큰 술에

산목련 향은 두 방울만

새들의 합창을 실은 아기 병아리 걸음은 열 걸음이 좋겠어요

수줍은 아랫마을 순이 생각을 듬뿍 넣을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고명으로 얹어주세요             


-박남수의 ‘4월 비빔밥’ 전문-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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