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소담 한꼬집’] “그냥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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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을 없애는 덴 볶음밥만 한 게 없어서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주섬주섬 꺼냈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지만 빠르고 맛있고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어서 찬밥을 핑계 삼아 가끔 만들곤 한다.
볶음밥이 간단해 보이지만 색깔 맞춰 채소를 다듬고, 자르고, 볶고, 계란 옷까지 입히려면 나름 손이 많이 간다. 고기나 햄, 새우 등은 국물 생겨서 따로 볶아 기름을 빼고 섞는다. 볶음밥은 밥알이 탱글탱글하게 살아있어야 맛있지 밥이 질면 별로이다.
볶음밥의 매력은 조화(調和)다. 남편은 재료가 야무지게 어우러진 볶음밥을 좋아한다.
어느 나라 식당을 가든 볶음밥이 있으면 시켜 먹는다. 한국 방송에서 웍을 돌리며 빠른 속도로 밥을 볶아내는 장면이 나오면 “맛있겠다”를 외치며 한국 살 때 갔던 중국집을 그리워한다. 집에서 하면 더 좋은 재료를 쓰는데도 그 맛이 안 나는 건 불 때문인 것 같다.
모름지기 볶음밥은 높은 불에서 꼬시르릇 볶아야 맛있다.
재료를 다 썰었을 때 남편이 왔다. 종일 일하고 왔으니 그냥 해주는 거 먹으면 되는데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프라이팬을 돌리며 밥을 볶는 솜씨가 경지에 달했다. 무늬는 쉐프다.
오늘은 계란 옷까지 입혀 오므라이스를 만들어주었다. 아프고 난 후 부실해 보이는지 힘든 일은 도맡아 한다. 식당에서 의자 빼 주고 차 문을 열어주는 남자와 사는 여자는 대체 무슨 복을 타고난 걸까 하며 부러워했는데 요즘 내가 그 복을 누리고 산다. 한 지붕 아래서 지지고 볶으며 살다 보니 조화로워진 모양이다.
밥을 먹으며 2022 SBS 연기대상을 보았다. 틀에 박힌 듯한 수상소감들이 참 식상하다 느낄 무렵 신인상을 받은 이은샘의 수상 소감에 귀가 번쩍 열렸다. 어린 친구가 어쩌면 그렇게 진심을 담아 어른스럽게 말을 잘하던지 눈물이 다 핑 돌았다.
아역으로 출발해 16년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게 해준 힘은 “그냥 해”라는 말이었다. 언젠가 자기가 이 자리에 올라온다면 자기처럼 꿈을 쫓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 같은 말을 해주고 싶어서 16년 동안 생각만 했던 말이 있다며 전언과 같은 말을 했다.
“지금 계속 꿈을 쫓아가시는 분들이 있다면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무서워하지 말고 지금 현재 하고 싶으면 그냥 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마도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정초부터 분주했다. 해가 바뀌면 마음을 다잡으며 세우곤 했던 목표조차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작년에 끝냈어야 할 일이 새해까지 넘어오는 바람에 나는 없고 일만 있는 새해를 보내고 있다. 나 때문이 아니라 해도 결국 내 손이 가야 마무리되는 일이어서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 따지고 계산할 여유도 없이 그냥 가는 중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작년 10월에 오픈한 수필 클래스도 이제 끝이 보인다. 삼 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뒤늦게 글쓰기를 배우러 오신 수강생들이 기대 이상으로 열심히 하셔서 나까지 열심히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길이어서 함께 한 길이었다.
최고령자가 76세시다. 문학을 전공한 분, 수학을 전공한 분, 간호학을 전공한 분, 유아보육을 전공한 분 등 각자 배운 학문이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다. 하지만 글쓰기를 배워 보겠다는 목표로 모인 분들이다 보니 금방 친해졌다. 그분들을 보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쪼록 각자 목표한 바를 다 이루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우는 데는 나이가 필요 없다. 필요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조이스 드파우 할머니는 뒤늦게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멋진 인생을 산 선배로서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셨다.
그분은 결혼하면서 중단했던 학업을 노인이 되어서 다시 시작했고 90세에 노던일리노이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마침내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분도 명언을 남기셨다.
“중간에 멈춰야 했던 일들도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돌아가 견디고 해내라.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2023년 출발선에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면 이은샘을 버티게 했던 주문처럼 “그냥 해”보면 좋지 않을까? 내가 가진 잠재력이 뭔지,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개발하고 살리면 인생도 행복하고 맛있을 것 같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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