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 토마토 향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1,918회 작성일 22-06-17 11:49

본문

초봄에 토마토 모종을 네 그루 사다 심었다. 이곳에서도 소위 밭농사 짓는 집 치고 토마토를 안 심는 집은 거의 없다는데, 남들은 쉽게 키운다는 토마토를 난 어쩐 일인지 제대로 길러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여, 올해는 토마토 농사를 전문적으로 짓는 유튜버에게 열심히 배워서, 보란 듯이 길러볼 계획을 세웠다. 제대로 기르자고 작정하니, 물이나 흙부터 거름까지 신경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두 달쯤 지나 갖은 정성을 기우렸는데도 토마토는 잎만 무성하지 열매가 별로 달리지 않았다. 다시 전문 유튜버를 찾아보니, 잔가지가 너무 많아도 영양분을  불필요한 잎들에게 다 뺏기기 때문에, 곁순 따기와 순지르기를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 후 난 조석으로 토마토 잔가지를 제거해주었는데, 그 때마다 토마토 향이 온 가든에 퍼지는 걸 느꼈다. 토마토가 안 맺힌 모종에도 곁에 가기만 하면 사먹는 토마토에서는 도저히 맡을 수 없는 토마토 고유의 상큼하고 시큼한 향기가 주변에서 나는 것이다. 그건 아주 오래전에 맡았던 익숙한 친구의 향기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동네엔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비닐하우스로 토마토농사를 짓는 집이 있었다. 마침 그 집이 같은 반 친구인 옥숙이라는 아이의 집이었다. 

키가 크고 수더분하게 생긴 그 친구는 학교 배구선수였는데, 방과 후면 늘 그 비닐 하우스안에서 토마토 밭을 지켰다. 친구는 혼자서 비닐하우스를 지키는 동안 너무 무료했던지 자주 나보고 놀러오라고 하였다. 아마도 그 친구와 나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만화와 토마토 였던 것 같다. 

왜냐면 당시 우리 집에는 늘 만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온 동네 만화 바꿔보기가 주로 우리 집에서 이루어졌다. 오빠와 나는 만화 읽는 속도가 워낙 빨라, 보는 즉시 여기 저기 빌려주거나 바꾸어 읽고 대여기간 반납도 우리가 도맡아 했다. 

친구는 가끔 내가 만화를 가지고 가면, 환한 얼굴로 토마토를 얼마든지 따먹으라고 하고는, 기다렸다는 듯, 만화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요즘이야 토마토가 지천이지만 당시만 해도 토마토를 실컷 먹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 난 자주 친구네 비닐하우스를 들락거렸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시장에서 쉽게 맡을 수 없는 토마토 고유의 향기가 몹시 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닐하우스라는 밀폐된 공간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유럽속담에 토마토가 익는 계절이 오면 의사가 필요없다는 말이 있다. 

장수노인들이 즐겨먹는 다는 지중해식 식단에도 꼭 안 빠지는 필수품인데, 살라드나 스파게티등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의 주 재료이기도 해서, 이곳에서는 토마토소스나 토마토가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한국마켓에 가면, 콩나물이나 두부를 거의 필수적으로 사는 것처럼 이곳사람들은 토마토를 집는 것이다. 

종류도 다양해서 방울토마토부터 좀 길쭉한 로만 토마토, 햄버거나 샌드위치에 넣어 먹는 사이즈가 좀 큰 토마토, 줄기채 파는 바인 토마토등 다양하다. 

요즘은 그냥 생으로 먹는 것 보다 살짝 익혀서 먹거나 기름에 볶아먹으면 항암물질인 리코펜이 더 활성화 잘 된다 하여, 조리를 해서 먹는 편이다. 

오래전 유방암에 걸렸던 한 친구는 수술후 의사의 권유로 아침마다 토마토를 살짝 익혀 믹서에 간 토마토쥬스를 지속적으로 먹었더니, 회복에 많이 도움이 되었노라고 했다.

 

하지만 토마토의 정체성을 두고는 아직도 말이 많다. 채소인지 과일인지, 생긴 건 과일같은데 맛은 채소 같고,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땅에 뿌리를 내리는 채소와도 좀 달라서, 늘 퀴즈의 단골이슈가 되곤 한다. 

이런 궁금증은 오래전에도 있었던 듯, 기록에 보니 1893년 뉴욕주 대법원에선 토마토가 과일인지 채소인지를 가지고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당시 뉴욕주는 수입채소에 대해 10프로의 관세를 매겼는데, 이 관세를 내기 싫은 상인들이 토마토는 채소가 아니라 과일이라고 우긴 것이다. 이에 뉴욕주 대법원은 채소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유는 토마토가 과일처럼 후식이 아니라, 메인 요리의 주재료라 여겼기 때문이다. 

 

어쨌든 요즘은 수박, 참외, 토마토, 딸기 같은 열매채소를 과채류로 분류한다. 오랫동안 과일로 알고 있었던 것들이 채소이기도 했다니, 문득 이 과채류의 정체성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켄타우로스’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반인반수의 신으로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체는 말의 형태를 지닌 이 신은 인간의 이성과 동물의 육적인 특성을 함께 지녀, 시대를 불문하고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신이기도 하다. 

멀티 플레이어가 각광을 받고 있는 이즈음, 세태에 어울리는 토마토, 겉과속이 다른 사람을 바나나나 수박에 빗대기도 하는데, 속까지 빨간 토마토로 올여름 무더위를 이겨봐야겠다. 

살사소스를 비롯, 간단한 아침으로 그만인 토마토 달걀볶음, 토마토 프리타타에 모짜렐라치즈를 넣은 토마토 카프레제 까지 토마토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한국에선 장아찌와 김치까지 담아 먹는 다니 과연 전천후 연예인 같기도 하다. 생각만 해도 토마토향기 물씬 나는 여름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어지럼증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만큼 흔한 신경계 증상이다. 주변이 빙빙 도는 것 같은 느낌, 스펀지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 등 여러 형태로 현대인을 괴롭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빈번히 발생하는 편이다. 그…
    건강의학 2022-06-24 
    잘 생기고 머리도 무척 좋은 엔지니어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좋은 대학을 갔고, 대학에서도 2년 동안 열심히 공부만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3학년 때부터 친구들의 술파티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
    건강의학 2022-06-24 
    이곳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앞으로 1년 안에 미국에 경기침체 가능성이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언론들도 이미 경기침체에 진입했거나 그 직전에나 볼 수 있는 수치라고 보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지하는 바대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0.75% 금리인상이 지난주…
    세무회계 2022-06-24 
      내일은 6·25전쟁 72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에 한 노인이 모임에서 혀를 차며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요즘 젊은것들은 6·25가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그저 달력에 빨간 날이면 노는 날이라며 좋아한다고. 전쟁의 참상을 겪은 그분에게는 잊을 수 없는 그날이 그들에겐…
    문화 2022-06-24 
    안녕하세요! 유난히 더운 6월의 마지막 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아무리 더운 지역이여도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고 식료품들도 냉동 기술이 발달하여 장거리 이동에도 쉽게 상하지 않습니다.  주제는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내용인데요 과연 우주 비행사들…
    건강의학 2022-06-24 
    장사는 무엇이고 사업은 무엇일까? 나름대로의 차이를 정의한다면 다음과 같다. 장사는 그것이 행하여지는 지리적 장소를 중심으로 하여 근거리 원내의 사람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사업은 그것이 행하여지는 지리적 장소가 주는 한계를 뛰어 넘어 원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
    부동산 2022-06-24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태리, 바티칸 등으로 이어지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성지인 서유럽 여행은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여행지 들이다. 각 국가마다 너무나도 유명한 여행지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여행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하루도 지루할 수 없는 코스이기도하…
    문화 2022-06-17 
    이번 주 휴람 의료정보에서는 노화의 주요 원인인 노인성 안질환 중 노안과 백내장에 대해 휴람 의료네트워크 좋은사람들 성모안과 박 성진원장의 도움을 받아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노안과 백내장은 노화가 주요 원인이 노인성 안질환이다.노안과 백내장은 40대가 지나면서 주…
    건강의학 2022-06-17 
    자동차보험 가입은 법적인 의무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사고를 당하여 상대에게 클레임하려고 보면 상대편이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경우를 보게 된다. 이럴 때 내 과실은 아니지만, 자신의 보험회사에 청구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을 무보험자 피해 보상 …
    보험 2022-06-17 
    한 매체가 미국에 사는 한인들을 상대로 ‘왜 미국에 왔는냐’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잘 살고 싶어서’와 ‘자녀 교육을 위해서’가 대답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 대부분이 생각하는 ‘잘 사는 삶’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일 것이…
    세무회계 2022-06-17 
    초봄에 토마토 모종을 네 그루 사다 심었다. 이곳에서도 소위 밭농사 짓는 집 치고 토마토를 안 심는 집은 거의 없다는데, 남들은 쉽게 키운다는 토마토를 난 어쩐 일인지 제대로 길러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여, 올해는 토마토 농사를 전문적으로 짓는 유튜버에게 열심히 …
    문화 2022-06-17 
    무더운 날씨에 청량한 생수 한잔처럼 달콤한 음료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생수 중에서 프리미엄급 생수, 에비앙과 페리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병에 물을 담아 판매하기 시작한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르게 꽤 오래전이었습니다. 때는 18세기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온천…
    건강의학 2022-06-17 
    2021년 북텍사스에서 거래된 주택의50%정도가 투자자들의 구입이였다는 통계가 나왔다. NAR(전미 부동산 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북텍사스가 투자자들의 주요 관심 도시였는데, 테란트 카운티에서 거래된 주택의 52%, 댈러스 카운티에서는 주택의 43%가 기관 투자자들의 …
    부동산 2022-06-17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영향력은 거론할 필요없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깊게 퍼져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이를 마케팅 도구로 이용 하는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비즈니스나 정치 캠페인 등이 이런 관점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부문이지…
    세무회계 2022-06-10 
    아침부터 설렜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다. 어려서부터 영화라면 잠도 밀쳐 놓고 턱 받히고 앉아 넋을 빼더니 지금도 여전한 것 같아 좋다. 20년 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나를 신나게 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극장이 있다는 것이…
    문화 2022-06-10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