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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 문학에세이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 아름다운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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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2,610회 작성일 21-12-2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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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꽃도 피었으니까 지는 것이다. 늦은 가을걷이를 했다. 떡잎으로 시작되었을 옆집 능소화가 담장을 넘어와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여름을 주고 갔다. 얼마나 반가우면 매일 한 뼘씩 다가와 환하게 인사를 했던 걸까. 거침없이 내딛던 행보가 부러웠다. 어디에서도 배운 적은 없었을 것이니 타고난 근성이라고 말해야 하나. 

 

유석찬 회장과의 첫 만남은 6년 전 이맘때였다. 안민국 감독과 함께 기획하고 배우 최종원 선생님과 출연했던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의 공연 때문이었다. 

최종원 선생님께서 어느 날 전화를 하셨다. “미희야, 연극을 하자. 그리고 미주 순회공연을 하는 거야.” 거기서부터 기획된 연극공연은 순조로울 수가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자금이어서 후견인이 절대 필요한 상황이었다. 취임식도 안 한 상태에 한인회장을 찾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지인을 통해 자리가 만들어졌고 단도직입으로 훅 들어가는 안민국 감독의 기획설명에 말 그대로 토하나 달지 않고 그는 흔쾌히 후원을 약속했다. 

해서 연극은 돛을 달게 되었다. 2월 첫 주말, 어빙 아트센터에서 5회 공연을 필두로 둘째 주말에 휴스턴, 그리고 엘에이 공연은 소극장 대관 불가로 무산되었지만, 마지막인 시애틀 공연까지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인연은 나를 바꿔놓았다. 어떤 식으로 나를 감염시켰는지 봉사하는 즐거움을 알게 했다. 내가 풀타임 일을 하는 걸 아는 그는 꼭 필요한 상황에만 부른다. 

 

그는 어제 전화를 하고 아침에 또 전화했다. 열흘 전에 있었던 그의 ‘유석찬의 공감 스피치’ 출판기념회에 수고해주신 분들과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하기로 했던 것이 갑자기 바뀌어 사무실에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5시 모임이니 일찍 내려오지 말고 조금 더 일하다가 5시에 출발해서 오면 된다고 한다. 

일하다 말고 트래픽 시간에 달려오는 내가 늘 미안해서 급하게 달리지 말고 천천히 오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의 말 중에는 “어떡하지”로 시작이 되는 말이 있다. “어떡하지”로 시작되는 말에는 뒷말이 헐렁하게 따라붙었다. 

그 “어떡하지”에 매혹되고만 나는 “알겠습니다” 내지는 “그러겠습니다”로 야무지게 답을 하게 한다. 

 

남편하고 나란히 앉아 내려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생각해보니 그가 한인회장직을 맡고 있던 지난 6년이 나에게 있어서 황금기였다. 좋은 일들로 가득했다. 그 황금기를 나는 그와 함께 했다. 

최종원 선생님과 연극 순회공연을 했고 시집 두 권을 출간했다. 그 중 한 권은 세종 우수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큰상을 세 개나 받았다. 

그때마다 그는 남이 아닌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작년에 편운문학상 수상소식을 듣고 코비드 19로 인해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자 그는 하루가 멀다고 전화해서 한국으로부터 상패가 당도했는지 물었다. 

나에게나 엄청난 상이지 남이야 뭐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겠나 싶은데도 그는 상패를 받자마자 자리를 마련하고 지인들을 모아 기어이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었다. 

 

오늘만은 꼭 시간 맞춰 참석하리라는 마음과는 다르게 또 늦고 말았다. 어찌 보면 이 자리가 그의 지난 6년의 세월을 마무리하는 자리가 될 것 같다. 

모두 준비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멋지게 꾸며져 있었고 그들도 모두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서로를 바라보며 흥겹다. 출판기념회에 토크쇼 진행을 부탁받고 엄청 기뻤다.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물론 걱정으로 여러 날을 보냈다. 여러 밤을 설치면서 고심하다가 행사 전날 밤에 겨우 찾았다.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둘 떠올리다 실마리를 찾은 것이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신경림 시인의 시 ‘파장’의 첫 문장이다. 물론 그들은 못난 놈들이 아니다. 혼자서도 강이 되고 숲이 되는 사람들이다. 

더더구나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거나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인생들이다. 하지만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이다. 그들은 그들과 함께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고 싶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선동의 힘은 아니었다. 차라리 세심함이었다. 물심양면을 다 던진 힘이었다. 혹은 삶을 전부 건 낭만이 그들을 바꿔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특별한 인플루엔자가 내재되어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를 보고 있으면 받는 것보다 주고 싶은 열정이 생기게 된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누구는 주말이 없는 생을 살았고 누구는 오후를 헌납하며 그가 했던 그 많은 일에 기쁘게 동참했다. 힘은 들었지만 그런 순간이 또 다시 온다면 더한 열정으로 함께 하겠다고 말하면서 수줍은 꽃이 된다. 

향기 가득한 웃음을 풀어놓는다.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물으면 더 크게 웃는다. 아름답게 피운 저 꽃들이 담장을 넘어가 온 동네가 환해지는 꿈을 꾸어 본다.

 

무성했던 정원을 정리하고 나니 많이 허전하다. 능소화가 흐드러졌던 담벼락에는 무수한 발자국들만 벽화처럼 남아있다. 계절이 가고 오듯 생의 순환 또한 그러하니 어쩌겠는가. 

환절기에는 기침도 하고 더러는 심하게 앓기도 한다. 그러다가 눈치 빠른 봄은 서둘러 새 꽃을 피워 물고 다시 온다.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부디 오래 아프지 않고 환절기를 잘 건넜으면 좋겠다. 담벼락이, 그들이, 또 그가 내가.

 

 

 

우리 그냥 그렇게 살자 / 김미희

 

왠지 

부부라든가 부모라 이르며 살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격으로

완벽해야 할 것 같아서

거창하게 

누구의 누구라 하지 말고

우리 그냥 보통 사람으로 바라보며 살자

 

가끔은 쉼표 하나쯤 더 찍어

엇박자도 날리면서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듯 작아 보여

보듬고 다독여 주고 싶은

한번 보고도 가슴에 담기는

그런 사람으로 

 

그 누군가 지친 삶의 거리를 겉돌다가

조금은 구차해 보인다 해도

이런저런 사연 웃고 넘기는 우리를 보고

그 사람들 말이야

사람냄새 나서 좋더라는 참사람으로

그렇게 

 

가슴속에 눈물이 고여야 피어나는

선인장꽃 한 송이씩 가슴에 달고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을 삶 돌아보며

서로 기대는 등 따스하면 되는 것

우리 그렇게 그렇게 살자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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