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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최민식 "인간의 다중성 표현…서양 누아르 흉내 안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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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민식이 디즈니+ 드라마 '카지노'에서 배 나온 옆집 아저씨 같지만, 두둑한 배짱 하나로 필리핀 카지노 업계를 접수하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만난 최민식은 인터뷰 내내 '카지노'에서 연기한 차무식처럼 사람 좋아 보이는 너털웃음을 지으면서도 작품 이야기에는 베테랑 연기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묵직한 대답을 내놨다.
지난 22일 마지막 회가 공개된 '카지노'는 필리핀에서 카지노 왕이 된 남자 차무식의 연대기를 그린다.
차무식은 늦은 밤 돈을 갚으라며 총까지 들고 집에 찾아온 이들 앞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너 나 감당할 수 있겠냐"라고 역으로 몰아세우고, 자신이 모시는 민회장이 우사장에게 봉변당하자 우사장에게 달려가 묵직한 경고를 날리고는 우사장이 내민 양주 1병을 원샷으로 마셔버린다.
최민식은 이런 비범해 보이는 차무식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의외로 '평범함'에 포인트를 뒀다고 했다.
그는 "선과 악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며 "인간 내면에 욕망을 좇다 보니 그런 부류의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늪에 빠지듯 흘러갔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다중성이 표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차무식은 고문, 살인교사 등의 중범죄를 저지르는데도 겉보기에는 신사적이고 의리도 강해 보인다. 심각한 상황도 대수롭지 않게 척척 해결하는 데다 호방한 성격도 호감을 산다. 고함을 치거나 화려한 액션을 내세우지 않지만 잔잔하게 카리스마를 폭발시킨다.
상대방을 협박할 때는 나긋나긋한 말투로 살살 어르고 달래지만, 내뱉는 말들은 순간 사람을 얼어붙게 할 만큼 살벌하다. "내가 너한테 허락받아야 해요?", "그럼 싸가지 있게 부탁을 하셔야지" 등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는 '반존대'와 공손한 막말을 툭툭 내뱉으면서 상대방의 기를 확 죽인다.
최민식은 "차무식은 본인을 비즈니스맨으로 생각하는데 이름 그대로 '무식'한 놈이다"라며 "거래할 때도 아주 논리적이고 합법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게 아니라 무식하게 밀어붙이지만, 자기 나름대로 비즈니스맨이라고 생각하니 감정을 최대한 절제할 것이라는 설정을 입혀봤다"고 말했다.
최민식은 무엇보다 '카지노'는 연출자와 배우들이 시험공부 하듯이 현장에서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애착이 크다고 했다. 필리핀 촬영 현장은 연일 회의의 연속이었다고 전했다.
마지막 회에서 차무식이 시든 빨간 꽃을 꽃병에 꽂는 장면도 최민식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극초반에 나온 '화무십일홍'(열흘 붉은 꽃은 없음)이란 대사처럼 차무식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최민식은 결국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해 죽음을 맞는 차무식의 결말에 대해 "우리 집사람부터 '왜 죽냐'고 엄청나게 항의했다"며 "욕망으로 치닫던 사람의 결말이니 꽃잎이 떨어지듯 차무식이 퇴장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화무십일홍이란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게 바로 사람의 욕망이란 게 느껴진 결말이라 좋다"고 말했다.
차무식이 죽기 직전 바닷가에 가서 생각에 잠겨 눈물을 흘린 장면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최민식은 이 장면에 대해 "그동안의 회한이 밀려온 거다.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기고만장하게 살았던 사람의 어쩔 수 없는 나약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사랑과 이별'(1997) 이후 오랜만에 도전한 드라마 촬영은 어땠을까. 최민식은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촬영 분량이 많은 데다 비용 문제 등으로 제작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는 해외 촬영의 특수성 때문에 아쉬움도 남는다고 했다. 게다가 필리핀 출국 직전 코로나19에 걸려 후유증을 겪으며 더위 속에서 촬영하다 보니 힘에 부쳤다고 했다.
최민식은 "상상도 못 할 분량을 하루에 찍었다. 1차적으로 아쉬운 건 나다. 연기를 보니 '내가 너무 힘겨워했구나'라고 느껴졌다"며 "서사도 너무 많이 부딪쳐서 좀 더 다이어트를 해야 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과욕을 부린 것도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해외에서 '카지노'가 호평받은 데 대해서는 "한가지 자부하는 건 서양의 누아르를 흉내 내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총을 쏴도 순식간에 쏘고, 총격전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원래 사고는 순식간에 나지 않나. 이런 면에서 외국 사람들도 리얼리티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민식은 '카지노'를 계기로 OTT 시대로 들어서면서 바뀐 시청 형태 등을 체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인으로서 극장에 대한 애정도 숨김 없이 드러냈다.
그는 "팬데믹으로 플랫폼 형태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몰아보기 같이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점이 있다"며 "그래도 난 극장이 좋다. 이건(OTT는) 정지시키고 화장실에 갔다 오고, 재미없으면 꺼버린다. 극장은 돈도 아깝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콘텐츠를 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교감하는 극장 냄새가 좋다"며 웃었다.
1989년 드라마 '야망의 세월'로 데뷔한 최민식은 올해로 연기 인생 35년 차다.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배우'지만, 그에게도 여전히 배우로서 욕망이 있다고 했다.
최민식은 "아직도 욕심이 많다. 로맨스, 중년의 멜로를 하고 싶다"며 "젊은 남녀의 상큼한 사랑도 있지만, 어떤 중년들의 사그라지는 사랑. 절제해서 더 짠하고 아픈 그런 어른스러운 것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너무 자극적인 이야기가 많다. 찔러 죽이고 쏴 죽이는 이런 것은 지겹다. 서로를 포용하고 아픔을 보듬어주는 휴먼 스토리가 필요한 때다. 단편소설 같은 영화들이 활성화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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