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임금님은 ‘귀가 밝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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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바로 서려면 말(言)부터 다스려야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우리말에는 숨이 있고, 세종 임금이 만든 문자에는 혼이 있다. 한글를 만드신 세종대왕은 사람의 정신을 파고드는 소리를 다스리는 일이야말로 통치의 기본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 분은 음악이 어지러우면 정치가 어지러움을 아시는 임금이었다. 그렇게 믿은 세종 임금은 훈민정음 창제 이전부터도 ‘난세지음(亂世之音)’을 지양하고 절제된 음악으로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지듯 나라를 이끌었다고 한다. 

 

근간 각종 언론 매체의 전문가 칼럼이나 기고문 등을 읽거나 방송을 보고 듣자면, 정말이지 참 해괴하지도 않는 글과 말들이 멋대로 춤을 추고 있다. 명색 국회의원이란 정치인들이 정신이 비정상인지, 말장난으로 국정 테이블에 오물을 끼얹고 있다. 

 

그리고 이에 맞장구 치는 소위 ‘언론인’이라는 패널들도 그야말로 ’초록 동색‘이다. 그저 ‘생각’에 그쳐야 할 말들이 공인을 통해 ‘공적인 소리’로 둔갑해 나오고, 국가를 위해 제자리에 있어야 할 기록들이 ‘꾼’들의 말장난에 깨 춤을 추다 공중분해 된다. 

 

언젠가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박성희 교수는 “국민이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인의 말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국회는 글자 그대로 ‘말하는 집(parliament)’이라는 뜻인데, 그런데 정치인이 희망과 감동의 언어로 가슴을 적시거나 촌철살인의 비평으로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 기억이 드물다고 적었다. 격렬한 토론 대신 몸싸움이, 명연설이나 유머 대신 떼로 몰려다니며 성난 표정으로 항의하는 모습만 뉴스 화면에 어른거릴 뿐이다. 고성과 삿대질은 기본이었고 따라서 국회는 ‘말하는 집’이 아니라 ‘몸으로 승부하는 집’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매일 공기처럼 호흡하는 인터넷에도 뉴스를 위장한 홍보, 정보처럼 보이는 광고, 접속하면 사망할 수준의 유해 정보가 괴담과 뒤섞여 떠다닌다. 은밀한 생각과 공식적 발화(發話), 정파적 이해와 국가적 가치, 보존과 파기, 이로움과 해로움처럼 상극하는 영역의 소리가 제자리를 못 찾고 뒤엉켜 시끄럽기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만하면 가히 ‘망국지음(亡國之音)’ 수준이다.

 

박 교수는 “정보는 자유롭고, 뉴스는 공정하며, 광고는 정직해야 한다. 인터넷 포털 업체의 독과점 문제는 경제적 갑을 관계를 넘어 언어의 공평하고 자유로운 흐름을 왜곡한다는 점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말하자면 돈을 꼬리표로 달고 다니는 언어가 지배적 위치로 올라설 때, 경제 정의가 훼손될 뿐 아니라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무너지고 사람들의 정신세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박성희 교수는 “과거 언론 통제 국에서 벗어나 어느새 인터넷 강국으로 우뚝 선 우리나라가 그렇게 힘들게 얻어낸 자유를 모두에게 이롭도록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작금의 국적불명의 우리 말과 글이 정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하자면 ‘벌거벗은 말, 사라지는 말, 독차지하는 말, 독이 되는 말’을 다스려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는 얘기다.

 

민주주의는 구조적으로 시끄러움을 동반한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화음이 아무리 커도 시끄럽지 않은 것은 악기마다 제때 제소리를 조화롭게 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이 그 동안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고 더 빠르고 정확하게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할애되었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넘쳐나는 정보와 메시지를 공정하고 조화롭게 운용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각설하고, 자료에 의하면, 세종대왕은 귀가 밝은 임금이었다고 한다. 세종 15년, 편경을 시연하는 자리에서 세종은 음 하나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알아보니 편경을 제작하기 위해 돌에 그어 둔 먹줄이 덜 갈린 것을 알고 바로 잡았다고 전해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 읽고 듣고 쓰면서도 한글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특히 자라나는 2세들에게는 반드시 올바른 우리 말 우리 글이 입력 되도록 부모는 물론 한글학교 일선의 교사들도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을 맞아 오늘의 지도자는 일찍이 소리를 다스린 세종대왕의 ‘치음(治音)’ 정신을 이어받은 ‘치언치문(治言治文)’에 밝은 인물이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충고가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손용상 논설위원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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