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다스림은 보살피는 것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619회 작성일 23-11-24 11:13

본문

얼마 전 유튜브 뉴스로 서울에서 살고 있는 야생 동물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영상의 제목은 「서울이 야생동물의 낙원? 멸종위기종만 41종 확인」이었다. 제목만 보고는 야생 동물이 그곳에서 산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은 고층 아파트와 자동차로 가득한 도로가 촘촘히 들어차 밤늦도록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가까운 중랑구 용마산 바위 턱을 산양이 뛰어다니는 장면을 보게 되었을 때, 입이 떡 벌어졌다. 회색 털에 두 개의 뿔을 나란히 세운 산양은 취재팀을 잠시 바라보다가 가파른 바위 위를 익숙하게 내달려 멋지게 달아났다. 산양은 경복궁 근처 인왕산에서도 발견되었다. 산양만이 아니었다. 강남구 탄천에는 수달이 살고 있었다. 모두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이다. 

 

서울까지 들어왔다면 전국적으로 많은 개체수가 있을 텐데, 자연훼손과 밀렵, 기후 위기에도 살아남아 번식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었다. 야생동물이 서울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의 생태계가 그만큼 건강해졌다는 지표라고 했다. 각종 개발과 도로 공사로 끊어져 버린 산림을 서로 이어주는 다리를 만든 것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았다. 한 유튜버는 경부선 철도와 지방도로 위를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는 추풍령 생태통로 위에  카메라를 두고 60일 동안 동물이 실제로 이용하는지 촬영했는데, 풀을 덮고 나뭇더미와 작은 물웅덩이 등으로 꾸민 다리 위를 고라니, 노루, 멧토끼, 멧돼지 등이 오가며 잘 이용하고 있었다. 천진한 눈으로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너구리는 통통하고 건강해 보였다. 그 통로가 없었다면 먹이를 찾아 위험한 도로를 건너다가 많은 생명이 사고를 당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성장하는 것뿐 아니라 공존하는 것도 고려하는 나라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

달라스 지역에도 많은 야생동물이 함께 살고 있다. 너구리, 스컹크, 아르마딜로, 주머니쥐, 비버 등은 골프장 주변에서 가끔 만날 수 있다. 보브캣은 주택가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며, 다람쥐와 토끼는 거의 반려동물인 양 앞마당에서 뛰어다니고 있다. 코요테, 회색여우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고 매우 드물게 퓨마도 발견된다고 한다. 달라스 지역의 동물 보호를 관장하는 DAS(Dallas Animal Services)는 “달라스시는 야생동물을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않으며, 이로 인한 피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공존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DAS는 공공 안전이 위태로운 상황에 대응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동물들은 우리 생태계의 중요한 존재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야생동물이 사람과 가까이 사는 것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야생동물은 인간을 매우 두려워한다. 인간은 지구 생태계를 변화시킬 만큼 강력한 최대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캐나다 웨스턴대학 연구팀의 실험 결과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한 물웅덩이로 다가오는 동물들에게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와 사람 말소리를 들려주고 이들이 반응하는 모습을 각각 카메라로 담았는데,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기린과 코끼리, 코뿔소, 하이에나 등이 사자의 소리에 움찔 놀라며 천천히 도망가거나 집단으로 방어하는 자세를 취했는데, 사람 말소리에는 그야말로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심지어 표범은 물고 가던 사냥감도 버려두고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촬영된 영상 1만 5천여 건을 분석한 결과, 사자 소리보다 사람 말소리에 사십 퍼센트 더 빨리 움직였고, 도망친 비율이 두 배였다고 한다. 위협하는 소리가 아닌 여성의 부드러운 소리에도 거구의 코끼리 떼가 급히 달아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실로 놀라웠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지구촌 동물들 사이에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널리 소문이 났나 보다. 하긴, 그들의 서식지를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필요에 따라 대량으로 살상하며, 가둬두고 사육하여 잡아먹으니 내가 생각해도 사람이 너무 무섭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기적인 방식은 이제 철퇴를 맞기 시작했다.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연을 훼손하고 화석에너지를 지나치게 사용하다 기후 위기를 맞게 되어 전 세계가 비상 상황이니 말이다. 

이제 겨울 추위는 더 혹독해지고 여름은 더 뜨거워진다고 하니 걱정이다. 부디 서울에 들어온 산양을 비롯한 전 세계의 야생동물들이 잘 살아남기를, 달라스 인근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야생동물도 모두 꼭꼭 숨어, 요동치는 기후 위기에도 무사히 버텨주기를 기원해 본다. 

 

끊어진 산과 들을 이어 만든 생태통로가 무관심으로 방치되었던 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 야생 동물을 보호하고 공존하는 것이 건강한 생태계를 위한 필수 조건임을 생각할 때 고무적인 일이다. 끝없는 탐욕으로 더욱 분절되어 버린 인간 세상에서 인권과 동물권을 함께 논하는 것이 자연 회복뿐만 아니라 인간 회복으로 가는 생태통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창세기 1장 28절 말씀대로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된 우리는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의미를 잘 새겨봐야 할 것 같다. 다스림은 착취나 파괴와는 거리가 멀다. ‘다스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보살피고 잘 이끌어 나가다.’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다양함을 보존하며 이 땅의 생물들과 함께 공존해 나가는 것이 다스림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신 일일 것이다. 

 

백경혜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문화 2025-05-02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테네시주(Tennessee)를 여행하다 보면 이외의 곳에서 생소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달라스에 사는 많은 이들이 뉴욕의 동부 혹은 아틀란타의 남부로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도로 곳곳에 널린 미국의 유수 관광지나 역…
    문화 2025-05-02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공학 시스템을 이해하는 기초적인 접근법은 시스템에 입력을 주었을 때 어떤 출력이 나오는지 보는 것이다. 예컨…
    문화 2025-04-30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저는 이 십년만에 아틀란타 옷수선 가게를 접고 수원에 정착했어요, 무엇보다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말 때문에 긴장 안 해도 되니 살 것 같네요.-부럽네요, 저는 아이들이 어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역이민은 이왕 하려면 빨리 하는 …
    문화 2025-04-30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2025년이 시작이 된지 어느덧 5월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달라스의 봄은 미국의 어느 곳보다 빨리 찾아와 3월이면 벌써 온 대지에 봄기운이 가득하여 수많은 꽃 축제와 더불어 각종 페스티벌이 곳곳에서 시작을 알리곤 합니다. 특히…
    문화 2025-04-30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예전의 텍사스의 날씨와는 사뭇 다르게 변덕스럽고 가을처럼 선선한 날씨를 느끼며 달리다 보니 벌써 5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4월, 5월이면 텍사스에서는 왕성하게 활동하기 가장 적당한 기온을 유지하는데 곳곳에서는 각종 페스티벌이 우…
    문화 2025-04-18 
     백경혜 수필가가게에 물건이 들어와서 며칠간 바빴다.  오랜만에 들여온 거라 양도 많았고 바뀐 계절에 맞춰 디스플레이도 손봐야 해서 할 일이 많았다. 페덱스 아저씨가 커다란 종이 박스 여러 개를 작은 가게에 쌓아놓고 갔다. 목장갑을 끼면서 박스를 쓱 훑어보았다. 십 년…
    문화 2025-04-18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늘 새로움을 더하는 하루 하루가 우리 앞에 계단을 놓고 있습니다. 녹음이 우거지고 비로소 시작되는 텍사스의 무더위는 상쾌한 숲 속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방금 찬물로 씻은 듯 시원한 미소로 여름을 맞이하기를 구하고 있다. 때로는 헉헉…
    문화 2025-04-11 
    김미희 시인 / 수필가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중얼거린다.“일어나기 싫다. 그냥 이대로… 잠들었으면.”늙어가는 이 나이에 학교 가기 싫어 꾀를 부리는 아이처럼 아직도 월요일 아침마다 이러고 있으니, 나도 참 이상한 아줌마다. 평생을 올빼미처럼 밤에 더 깨어 있는 사…
    문화 2025-04-11 
    크리스틴 손, 의료인 양성 직업학교, DMS Care Training Center 원장(www.dmscaretraining.com / 469-605-6035) 약을 다루는 또 하나의 전문가, 약국 테크니션 (Pharmacy Technician) -12주 단기과정으로 시…
    문화 2025-04-11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2025년이 엊그제 시작이 되는가 싶더니 벌써 4월의 시작점에 와있습니다. 아직은 봄이 채 이른지 쌀쌀한 아침 기운에 살짝은 어깨를 움츠리지만 금세 하늘이 거치며 따스한 텍사스의 햇살이 온 대지에 충만한 생명의 빛을 선사합니다.…
    문화 2025-04-11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문화 2025-04-11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간단한 암산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100에서 10을 뺀 다음 5를 또 빼면 얼마일까? 어렵지 않게 정답 …
    문화 2025-03-28 
    오종찬(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 작곡가)한 무리의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태양아래 아름다운 짙푸른 초원이 있고 경치 좋은 산을 병풍 삼아 한가롭게 되새김질하는 소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메마른 샘에 단비가 내…
    문화 2025-03-28 
    오종찬(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 작곡가)드디어 완연한 봄입니다. 주위의 모든 만물이 슬슬 봄의 전령들을 보내고 봄을 예찬하는 노래들이 우리의 입가를 맴돌게 하고 있다. 지난3월초에 달라스 북쪽 오클라호마 주의 치카소(Chikasaw)에 갔을 때만 하더라도 아직 완전한 …
    문화 2025-03-2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