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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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의과대학에서 일할 때였다. 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급한 연락을 받았는데 한국 환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왔는데 한국어 통역을 맡을 사람이 없어서 그러니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가보니 응급실 구급 침대 위에 얼굴과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환자가 누워있었다. 

괜찮으세요? 하고 묻는 나에게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잠시 뒤 사고 경위를 묻기 위해 온 경찰이 환자에게 물었다. 

하우 아 유 두잉 (How are you doing?) 그러자 이 환자가 하는 말 아임 파인 땡큐, 엔드 유? 아마 본인 생각으로는 통역 없이도 영어를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학생 때 열심히 외웠던 영어 문장을 ‘엔드 유?’에 악센트까지 주면서 말하는 것 같았다. 

피 흘리던 환자의 모습과 괜찮다는 환자를 보고 어리둥절한 경찰의 모습을 떠올리며 집에 가서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혹시 나도 교과서에서 공부했던 영어 때문에 이곳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어를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면서 같은 대학의 한국 동료들이나 교환교수로 온 사람들과 우리가 영어 때문에 격은 우스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영상의학과에 방문 교수로 온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미국에 와보니 한국에서 영어 공부한 것이 말짱 헛것이었다. 

말은 그럭저럭하겠는데 상대방의 영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보통은 웃으면서 고개나 끄떡이며 알아듣는 체했는데 너무 빨리 이야기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과 교수회의 때 모인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고백했다. “I have hearing problem.” (나 히어링이 잘 안되요) 그랬더니 모두 이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는데 그다음부터는 그 교수에게 크게 고함을 지르며 이야기하더란다. 

“말을 천천히 해달라고 히어링이 잘 안된다고 했는데, 왜 소리를 버럭버럭 지릅니까?”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했으니까 그런 거지요.”라고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참 한국에선 ‘히어링’이라고 배웠지요? 여기선 ‘히어링’은 귀가 잘 안 들린다는 말입니다. 앞으로는 그냥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세요.” 

한 달이 뒤 학과 과장이랑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같이 걸어오는데 과장이 자기 사무실 앞에서 좀 뒤에 보자 그러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란다. 

뭐 더 말할 것이 있나 보다 하고 문 앞에서 오래 기다려도 안 나왔단다. 금방 보자고 그러더니 말이다. 삼십 분 정도 기다리니 그제야 나오면서 문 앞에 서 있는 이 교수를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아니 당신이 “See you soon”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soon”이라고 해서 금방 나올 줄 알고 기다렸노라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다음부터 과장이 “So long”이라고 인사를 하더란다. “long”에 악센트를 넣으며 말이다. 

텍사스 대학에서 학기를 끝내면서 한국 학생들과 교수들이 모여 종강 파티하는 자리에서였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영어 때문에 당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한 학생이 ‘세븐일레븐’이란 잡화상에서 일하다가 경험했던 일을 말하였다. 

미국에선 술을 팔 때는 반드시 신분증을 보고 나이가 21세가 넘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팔 수 있는데 중학생 정도의 아이가 맥주 여섯 깡통을 들고 와 계산대에 놓더라는 것이다. 

“신분증 볼 수 있습니까?”라고 했더니 이 아이의 눈이 돌아가면서 “아니 루트비어(root beer)를 사는데 왜 신분증을 보여야 하는데?”라고 우기더라는 것이다. 

자기는 그때 루트비어가 콜라 같은 소다수인 줄 모르고 “ 술을 사려면 반드시 신분증을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 비어(beer)라고 쓰인 것 안 보이세요?”라고 우겼다는 것이다. 결국 손님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돌아갔는데 나중에야 루트비어가 술이 아닌 것을 알고 무척 당황했었다고 말해 웃었다. 

그러자 이 대학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방문 교수가 자기도 영어 때문에 당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미국에 도착하면 초청하는 학과의 과장이 비행장에 와서 자기를 데리고 숙소를 찾아주기로 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아무도 마중 나온 사람이 없었다. 

짐을 찾고 나서 마중 오기로 한 교수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어떤 부인이 전화를 받더라는 것이다. 교수 부인이구나 생각하고 “남편을 바꿔주십시오”라고 말하려고 “Change your husband”이라고 말했더니 받는 쪽에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 있더라는 것이다. 

얼른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자기가 너무 예절도 지키지 않고 말한 것 같아 다시 전화를 걸어 “Change your husband, please”라고 했다는 것이다. 

“남편을 바꿔주세요”하는 말을 “남편을 갈아치워” 아니면 “제발 남편을 갈아치우세요.”라고 말했으니 받는 사람이 얼마나 놀랐을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여기선 그럴 때 뭐라고 하지요?”라고 우리에게 물어왔다. 전화로 딴사람을 바꿔 달라는 말을 영어로 무어라 말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앞에 있던 여자 교수 한 분이 “Thank you very much라고 하지요”라고 대답해서 한바탕 웃었다. “남편 갈아치워”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느냐는 물음으로 듣고 이렇게 대답하라는 말이었다.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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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
영화 칼럼니스트 박재관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세계 클리오 광고제/칸느 광고영화제 수상
-오리콤 광고대행사 부서장 및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임
-알라바마 주립대학/캔사스 주립대학 교환교수
-경주대학교 방송언론광고학과 교수 및 부총장 역임

푸드 칼럼니스트 달맘 (송민경)

한•중•양식 조리기능사 / 식품영양학 학사
영양사 면허 / 영양교육 석사 /
초•중•고 영양교사 자격

수필 칼럼니스트

소설가 김수자

미주 작가 박혜자

시인,수필가 김미희

사모 시인/ 달라스 문학회원 김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