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생긴 일 (40) “하와이에 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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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이 계속 울렸으나 로버트 교수는 받지 않았다. 상필과의 대화 중이라는 뜻인가보다. 자연보호를 얘기하는 동안 그의 눈은 거의 감겨있는 듯 했다. 그가 연구에 몰두할 때 아마도 이런 표정일 것이다. 상필이 불쑥 말했다.

“하와이 독립을 꿈꾸십니까?”

 “독립? 독립까지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독립적으로 살도록은 해야 될 것 같지?”

“독립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와이 원주민들의 삶의 방식으로 사는 것,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노래를 부르며 말야.”

“그럼 옛날로 돌아가자는, 원시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뜻인가요?”

“우리가 어떻게 옛날로 돌아가나? 우리는 이미 최첨단의 시대에 살고 있지. 하와이는 현재 원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사회가 되어 버렸어. 관관객이란 며칠 휴가를 즐기고 돌아가면 그 뿐이지만, 하와이 원주민들은 이곳에 1,500년을 살며 이 땅을 지켜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 하는 곳이야. 관광객들에게 어지렵혀지는 하와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지.”

“아니, 지금 하와이는 미국의 50개 주의 하나잖아요. 독립을 한다는 건 미국과 싸워야 하잖아요.”

“싸워야지. 그 싸움이 총 칼 들고 싸우는 게 아니라 호소하고 타협하여 지지세력을 모으는거지.”

“미국 내에 자치정부를 가진 곳이 있지.”

“나바호’를 말하는 겁니까? 그 곳에 가 봤는데 가이드가 설명을 해줘서 알았습니다. 나바호가 미국에 있는 독립국가라 해서 놀랐습니다.” 

 

미 대륙에서 가장 큰 세력이었던 인디언 부족인 나바호는 아리조나 주, 유타 주, 그리고 뉴멕시코 주에 걸쳐 71,000 km2 넓이의 큰 땅을 가지고 있다. 

이들 나바호는 미국과 오랜 투쟁 끝에 1868년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 (Navajo Indian Reservation)으로 되었다가 1991년에는 원주민이 통치(Native Americans in the United States)하는 자치 (semi-autonomous) 국가가 되었다. 

나바호는 입법, 사법, 그리고 행정부로 이루어져 있고 등록된 원주민은 20만 여명이다.

“하와이도 나바호처럼 자치국가가 되려고 합니까?

“하와이의 독립운동은 뿌리가 깊어.” 

하와이 원주민들은 자치정부 구성을 위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나이 아우푸니-Na’i Aupuni 나라 되찾기 운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하와이의 1백만 인구 중 하와이 원주민의 수가 20퍼센트라는 이유를 들어 연방대법원은 “하와이 주민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자치정부 구성을 소수민족이 결정하는 건 민주주의에 위배된다”며 법 상정을 기각시켜버렸다. 

그런데도 이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하와이 원주민들의 자치정부 구성을 지지한다”고 밝힌 일이 있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 1993년 재임 당시 “미국 정부가 1893년 하와이 왕국을 불법으로 전복시킨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다. 또 에드워드 슐츠 하와이 대학 교수는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것이 분명 불법적이었던 것과 같이 미국의 하와이 병합 역시 불법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주민 출신의 하우나니-카이 트라스크 하와이대학 명예교수는 그의 책 <하와이 원주민의 딸>에서 하와이의  아픈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1778년 제임쿡의 하와이 발견 이후 외부 세계의 법칙을 몰랐던 하와이 원주민들이 자본과 기술의 갈등에 빠져들었을 때 질서회복 명분으로 미 군대가 하와이에 상륙하였다. 100여 년 지속되었던 하와이 왕국은 1893년 미국에 주권을 빼앗겼다. 이후 하올레(백인을 뜻하는 원주민 말)들은 하와이안들의 종교를 무시하고 기독교를 전파하여 정신적 침략을 해왔다. 하와이 문화는 사라지고 원주민이 주변인으로 밀려났다.  원주민들은 관광객들의 호기심과 동정심의 대상이 되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훌라 춤은 심원한 종교적 의미를 표현하는 것인데, 관광객들의 구미에 맡게 바뀌어  자극적이고  관능적인 춤이 되어버렸다. 하와이는 군대와 핵 항공모함을 파견하는 군사전초기지이기도 하다. 거주자의 5/1이 군인과 그 가족으로 이곳은 군사도시가 되어 버렸다. >

트라스크의 외침은 처절하다… <미국 연방정부는 하와이 원주민 자치정부 수립을 승인하라. 우리는 미국인이 아니라 하와이 원주민이다. 원주민이 하올레에게 적의를 품는 권리만큼은 정당하다. 하와이는 식민지화 된 섬이고 원래 주인은 미국인이 아닌 원주민이다. 관광객들로 인해 섬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었다. 세계인들이여! 하와이의 환경과 원주민들을 생각한다면, 도와줄 방법은 단 하나다. ”하와이에 오지 마라!”>

 

트리스크의 하와이 역사의식은 좀 특이 하다…    <하와이에 우리의 역사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글을 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항해를 즐기고 물고기를 잡고 집을 짓고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우리 조상은 기억이라는 위대한 혈통과 계보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 왔다.  조상의 역사를 위해 나는 책을 던지고 대지로 돌아가야만 했다. 토지와 물은 사유재산으로 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소유하고 사용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앞지르고 노력해서 결국 혼자만 빛나는 자본주의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비난할 것이다.>

 

상필은 레이 아버지 로버트 교수와 한나절을 함께 했다. 새벽 마카푸우 포인트에 올랐다가 하이웨이 72번에 있는 식당 ’Ray’에 어떻게 왔는지 생각이나지 않는다. 차가운 맥주를 한잔 했을 때 상필은 겨우 상필 자신으로 돌아온 듯했다.

“지상천국이란 말은 유언비어였군요. 일년에 수백만이 찾는 하와이가 이렇게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네요. 관관객들이 이런 사연을 알고 오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하와이 원주민들이 관광 상품이 되어 눈요기나 볼거리가 되어있는 사실이 불쾌하군요.”

로버트 교수는 전화 벨소리가 몇번 울렸으나 못들은 듯 받지 않더니 맥주 한 잔을 들고서야 전화를 받았다.

“어, 레이구나. 웬일이냐? 어쿠, 깜짝이야, 웬 소리를 그렇게 지르느냐? 그래, 전화 바꿔줄께.”

“자네 전화기 어디 있나?”

“어, 모르겠는데요.”

상필이 허겁지겁 주머니를 뒤지며 전화기를 찾았다.

“레이가 그러는데 전화기를 집에 놓고 나왔다네. 자, 전화 받아 봐.”

“하이, 레이.”  

“뭐하고 있는 거예요. 나, 정말 화 났어요. 아빠는 그렇다 치고 상필 씨도 아빠와 같으면 어떡해요?”

“미안, 미안, 미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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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
영화 칼럼니스트 박재관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세계 클리오 광고제/칸느 광고영화제 수상
-오리콤 광고대행사 부서장 및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임
-알라바마 주립대학/캔사스 주립대학 교환교수
-경주대학교 방송언론광고학과 교수 및 부총장 역임

푸드 칼럼니스트 달맘 (송민경)

한•중•양식 조리기능사 / 식품영양학 학사
영양사 면허 / 영양교육 석사 /
초•중•고 영양교사 자격

수필 칼럼니스트

소설가 김수자

미주 작가 박혜자

시인,수필가 김미희

사모 시인/ 달라스 문학회원 김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