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릴레이 ] 김수자 에세이 (4) - 17년이나 일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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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후덥지근하죠?”

 

“하와이 날씨죠. 그래도 바람이 불어서 다행이예요.”

 

K여사는 하와이에 와서 처음 만난 이웃이다.    ‘이 분은 한국사람이구나’하고 금방 알아보았는데 뽀글뽀글한 파마머리, 시원한 모시느낌의 잠방이, 후덕스런 얼굴 등 외면상의 느낌도 있었지만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을 알아보는 직감이었다.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붙였을 때 그 분도 “에구, 한국 분이셨구나” 했으니까. 그 분도 내가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았던 거다. 세탁실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우편함 앞에서 몇 번 만나는 사이 누가 물어서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그냥 줄줄이 쌓인 이야기가 나왔다.

 

“40년 전 올망졸망한 새끼들 데리고 하와이 공항에 떡 도착했는데 기가 막히더라고요.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지, 먹고는 살아야지, 미국 가는 게 무슨 벼슬하는 줄 알았는데, 속았다는 느낌이었죠. 처음 시누이 소개로 와이키키에 있는 호텔에 취직을 해서 한 몇 년 하니까 요령도 생기고 말도 알아듣고 적응을 해 나가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가 사는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일식집에 누가 소개를 해서 일을 하게 됐지요. 남들은 식당일이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호텔 일 보다 수월하더라고요. 일본 사람들하고 일하는 게 까다로워서 마음고생은 했지만 수입도 좋고 해서 17년이나 했어요.”

 

“스시 잘 만드시겠구나.”

 

“스시는 주인 아저씨가 만들고 나는 볶음국수 전문이죠. 말은 그렇지만 청소도하고 설거지도하고 별 일 다 했어요. 가족끼리 하는 식당이라…”

 

“힘드셨겠구나.”

 

“일하는 건 괜찮은데 사람 무시하는 꼴은 정말 참기 어려웠어요. 그 것들은 잔소리도 소근소근 해요. 앞치마를 갈이 입어라, 머릿수건을 잘 써라, 손을 씻어라 한답니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에구, 한국 여자들이 얼마나 깨끗한데, 쓸고 닦고 청결이라면 앞 장 선다, 이 것들아’ 하고는 그냥 참고 일을 했지요. 일본인들은 예의 바르고 남에게 피해 안 끼치고, 검소하고 상냥하고 뭐 그런 사람들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아주 무서운 사람들이예요.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깔봐요. 겪어봐야 알아요. 그 것들은” K 여사는 일본인들을 향해 ‘저 것들’, ‘이 것들’이란 말을 썼다.

 

“글쎄, 어느 날 바쁜 점심시간도 지나고 나도 식사를 하려고 된장국을 끓이고 있었어요. 마침 쓰다 남은 파 한 뿌리가 있어서 그걸 송송 썰어 넣었는데, 아, 그걸 사장이 본거예요. 그리고는 나에게 정색을 하고 묻는 거예요. ‘그 파 네거냐. 네가 사 온 파냐’고요. 내가 어이가 없어서 쳐다만 보고 있었지요. 내가 그 집에서 17년을 일 했어요. 그깐 파 한뿌리 된장국에 넣었다고, 뭐, 그게 네 거냐고? 나도 내 것 아니면 절대 손 안대는 사람인데. 나를 도둑 취급해? 지금 생각해도 분해요.”

 

“그러셨군요. 그래서 항의를 했나요?”

 

“속으로 불이 났지요. 나는 참는 일 밖에 못하는 줄 알았는데 그때는 ‘에잇, 나쁜 사람들. 의리도 없고 도리도 모르는 이기주의자들’ 하고는 그냥 ‘탁’ 하고 침을 뱉고 나왔지요.”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태양의 제국’이란 영화가 있다. 오래 전에 본 영화인데, 1941년 일본과 중국이 전쟁을 치르는 즈음 상해에 살던 한 부유한 영국인 가정의 모습이 나온다.

 

이 가정의 요리사는 겉으로는 공손하면서도 속으로는 주인에 대한 적의에 차 있어서 음식을 내갈 때는 침을 탁 뱉아서 식탁에 올려놓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은 사람을 죽이는 장면보다 더 끔찍했던 기억으로 떠올랐다.

 

“침을 뱉았어요? 어디에, 음식에?”

 

한 식당에서 17년이나 함께 일해왔으면 한국 사람들은 한솥밥 먹는 사람, 내것 네것 없는 관계, 언니 동생 형님 하며 친척보다 더 가까워지는 관계가 된다. 왜 오랜 시간을 함께 해도 일본인들 하고는 이런 관계가 되지 않을까. 그 무던해 보이는 K 여사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탁 침을 뱉고 그만 두었을까.

 

우리 옆집도 일본인, 그 옆집도 일본인, 이 아파트에는 일본이들이 과반수 이상이 살고 있다. 그들은 늘 상냥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언제나 한 발 뒤로 물러나 양보한다. 하얗게 분을 바르고 빨갛게 입술연지를 찍는다. 단정하다. 대충 입고 대충 찍어바르는 한국 부인들보다 긴장미를 보인다. 

 

K 여사 말은 “저것들은 속을 모른다”는 것인데 피차 멀리 모국을 떠나와 하와이에 살고 있으면 서로 변할 만도 한데 한국인과 일본인이 갖고 있는 DNA는 변할 수 없는 모양이다.

 

K 여사의 ‘파 한 뿌리’로 상처받은 마음도 그리 깊은데,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 동안 일본에게 받은 총체적인 감정은 헤아릴 길이 없다. 속을 알 수 없는 그들, 정 없는 그들 이지만 그러나 함께 살아야 하는 그들이기에 대~한민국 사람들이 보다 넓은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야 할 듯 하다. *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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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
영화 칼럼니스트 박재관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세계 클리오 광고제/칸느 광고영화제 수상
-오리콤 광고대행사 부서장 및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임
-알라바마 주립대학/캔사스 주립대학 교환교수
-경주대학교 방송언론광고학과 교수 및 부총장 역임

푸드 칼럼니스트 달맘 (송민경)

한•중•양식 조리기능사 / 식품영양학 학사
영양사 면허 / 영양교육 석사 /
초•중•고 영양교사 자격

수필 칼럼니스트

소설가 김수자

미주 작가 박혜자

시인,수필가 김미희

사모 시인/ 달라스 문학회원 김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