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인생 60년' 김혜자의 고백…"할 줄 아는 게 연기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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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사진 출처: 연합뉴스)
김혜자 (사진 출처: 연합뉴스)

"나는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으니까 할 뿐입니다. 이것이 가장 좋고, 언제나 가슴이 뛰니까."

배우 김혜자(82)가 지난달 연기 인생 60년을 담은 책 '생에 감사해'를 펴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이후 14년 만이다. 전작이 아프리카 아이들에 대한 인류애를 전했다면, 이번 책은 김혜자가 배우로서 느낀 행복과 고민 그리고 감사함이 담겼다.

최근 저자 사인회를 위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은 김혜자를 만났다. 크고 맑은 눈망울에 인자한 미소, 사근사근한 말투에서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소녀 같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김혜자는 책을 통해 연기 인생 60년을 되돌아본 감회를 묻자 "감회? 감회를 말하라고? 나는 그저 쓸데없는 짓 안 했다고만 하면 좋겠어"라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정작 본인은 연기자로 평생을 살아온 일을 대수롭지 않아 했지만, 그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여러 연출가와 작가가 "위대한 배우"라는 찬사를 보내는 대배우다.

대표작 '전원일기'(1980∼2002)에서는 쪼그리고 앉아 대파를 다듬는 '국민 엄마'로, 영화 '마더'(2009)에서는 아들을 위해 살인, 방화 등을 서슴지 않는 광기에 휩싸인 노모로, 드라마 '눈이 부시게'(2019)에서는 생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치매 환자로 시청자와 관객을 만났다.

'전원일기' 세대는 조미료 광고의 "그래, 이 맛이야"라는 광고 문구로, MZ세대는 편의점 도시락 광고로 생겨난 '혜자스럽다'(양이 많고, 질이 좋아 만족스럽다)는 신조어로 김혜자를 기억하기도 한다.

김혜자는 "나에게 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이며,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KBS 탤런트 공채 1기생으로 덜컥 뽑혔지만, 연기에 대한 기초가 없어 손끝 하나 움직이는 것도 무서웠다고 회고했다. 도망치듯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한동안 평범하게 살았지만, 선배의 권유로 연극 무대에 다시 올랐다.

그는 연기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던 당시를 떠올리며 "한곳에 미치는 것이 여간 신나고 멋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MBC가 개국하면서 출연하게 된 '개구리 남편'(1969∼1970)에서는 출산하고 사흘 만에 야외촬영에 나서기까지 했다.

이후 운명 같은 작품인 '전원일기'를 만났다. 드라마 방영이 10년이 넘어가면서는 이야기의 변곡점이 필요해 보여 극 중에서 자신의 배역을 죽여달라고 한 적도 있지만, 종영까지 22년간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전원일기'를 빼놓고 나의 연기 생활을, 나의 삶을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전원일기'는 나에게 '인생 교과서'였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이해와 배려와 순수가 그곳에 있었고, 사소해 보이지만 사람들의 삶을 채워 나가는 꾸밈없는 일상들이 있었습니다. '전원일기' 덕분에 나는 많이 성숙한 인간이 됐습니다."

김혜자는 베테랑 연기자지만 새로운 배역을 맡을 때마다 신인 같아진다고 했다. 그만큼 배역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기에 완벽을 기울인다.

"나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대사를 백 번도 더 읽습니다. 아까 했던 것과 지금 한 것이 다르니까. 아흔아홉 번째 했을 때는 몰랐던 것을 백 번째 했을 때 느껴지는 것이 있으니까. 읽을수록 느껴지니까 대본을 계속 읽고 싶어집니다."

배우는 대본의 '갔니'라는 대사를 두고 '갔다', '갔구나'가 아닌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과거부터 "톨스토이가 써도 쪽대본(작가가 시간에 쫓겨 촬영 직전에 전달한 대본)은 안 한다"는 고집을 부려온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것을 쏟아내서일까. 김혜자는 한 작품이 끝나면 맥이 풀려 쓰러지고, 그다음 작품을 시작하면 다시 살아난다고 했다.

연기에 이렇게까지 혼신의 힘을 쏟아내니 스타 작가들도 그를 계속 찾았다. '전원일기'로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김정수 작가는 물론 시청률 64.9%를 기록한 '사랑이 뭐길래'(1991∼1992)의 김수현 작가와는 무려 17편을 함께했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한국의 어머니상' 이미지를 깨고 남편의 외도에 좌절하는 아내부터 푼수 같은 엄마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사실 김혜자에게 '국민 엄마'라는 수식어는 영광인 동시에 족쇄였다.

일상적인 엄마 역에 싫증이 날 때쯤 찾아온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마더'였다. 김혜자는 '마더'가 죽어 있던 세포를 깨워줬다고 말한다.

"거기서 거기인 엄마 역만 수도 없이 했습니다. 배우로서 그건 지치는 일입니다. 그 사람(봉 감독은) 내 안에 있던, 아직 분출되지 않았던, 배우로서의 다른 모습을 표현시켰습니다."

그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봉 감독에게 "나를 많이 괴롭히고 극단까지 밀어붙여 달라"는 주문을 했다고 했다. 실제 봉 감독은 촬영 때 "선생님, 눈만 동그랗게 뜨지 마시고요!"라며 '연기 지적'을 했다고 했다.

김혜자는 속상함에 눈물까지 터트렸는데, 훗날 봉 감독이 그 모습을 기억하며 "연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우시더라. 메시가 자신의 축구 실력이 마음에 안 든다고 울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김혜자는 평생을 연예계에 몸담았지만,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말실수할까 봐 사람들도 만나지 않는 '은둔형'이다. 마더' 촬영 때까지도 핸드폰이 없어 제작진이 소통을 위해 핸드폰을 사서 쥐여줬다고 했다. 지금도 매니저나 코디네이터 없이 활동한다.

최근에는 작품을 할 때마다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여기고 혼신을 바친다는 김혜자는 "죽을 때까지 멋있었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배우는 죽지 않으면 연기해야 합니다. 누구도 내 역할을 대체할 수 없으니까. 링거 맞고 촬영장에 나간 적도 수없이 많고, 빙판에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병원에서 녹화했습니다. 대중에게 늘 그리운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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