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대법원, 결국 낙태권 파기 누구를 위한 결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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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의 생명 보호 VS. 여성의 자기 결정권 ‘격돌’

텍사스, 강력한 반낙태법 적극 시행 예고

 

결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1973년)을 49년 만에 파기했다.

지난 24일(금), 연방대법원은 여성의 낙태권(임신중절권)을 확립한 기념비적인 이 판례를 대법관 9명 중 5명의 찬성으로 뒤집었다. 

1788년 미 헌법이 비준된 이후 낙태권 문제는 주(州)별 해석의 영역이었다가 대법원이 1973년 로 앤 웨이드 판결을 끌어내면서 헌법 권리로 인정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또다시 뒤집은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반세기 동안 연방 차원에서 보장됐던 임신중절권 보호막이 없어지게 됐다. 

이제 미국에서는 임신한 여성의 낙태권을 어느정도 보장하느냐는 각 주의 정부와 의회가 결정하게 됐다.

 

 49년만에 판례 뒤집은 연방 대법원, 그 이유는?

이미 연방대법원이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것이라는 전망은 지난 5월 나왔다.

5월 2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연방대법원이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사건’ 판례를 뒤집기로 했다면서 98쪽짜리 다수 의견 판결문 초안을 입수해 공개했다. 

연방대법원은 1992년 ‘케이시 사건’ 등을 통해 로 대(對) 웨이드 사건 판결을 재확인했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주(州)들은 낙태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해 ‘로 대 웨이드’ 판례에 맞서 왔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연방대법원이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면서 기존 판례가 49년 만에 깨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보수 성향인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당시 초안에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애초 터무니없이 잘못됐다”며 “낙태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는커녕 논쟁을 키우고 분열을 심화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헌법에는 낙태에 대한 언급이 없고 어떤 헌법 조항도 낙태권을 명시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며 “이제는 헌법에 귀를 기울이고 낙태 문제를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게 돌려줘야 할 때”라고 적시됐다. 

즉 헌법에는 임신중절권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낙태권은 법이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라는 얘기다.

알리토 대법관은 1973년 로 앤 웨이드 판결 당시 임신중절권이 헌법에 언급되지 않았어도 폭넓은 헌법 권리에 해당한다고 본 해석을 기각했다.

그러면서 “헌법에 언급 안 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있기는 하나, 그런 권리는 이 나라의 역사와 전통에 깊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하며 질서 있는 자유의 개념에 내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는 ‘역사와 전통’에 입각한 권리 해석을 주장하며 헌법 원전에 입각해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텍사스 주정부, “확실한 낙태 금지 시행할 것”

지난 해 9월 일명 심장 박동법을 시행하며, 미국내 가장 보수적인 반낙태 정책을 펴온 텍사스는 이번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쌍수를 들고 환영을 표했다.

그렉 애봇 주지사는 이날 연방 대법원의 결정과 관련해 “여성 건강 프로그램을 개선하기 위한 주의 노력을 밝히며, “로 대 웨이드 판례가 올바르게 뒤짚혔다”고 말했다.

켄 팩스턴 주 법무장관도 대법원의 판결이 이뤄진 이날 하루 휴무를 결정하고, 앞으로도 연례 휴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팩스턴 주 법무장관은 이어 연방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자동으로 낙태를 불법화하는 이른바 ‘트리거 법’(TRIGGER LAW)을 조속히 시행할 것을 천명했다. 텍사스를 포함해 13개 주는 로 대 웨이드가 뒤집힐 경우, 낙태를 금지하는 데 신속하게 적용될 수 있는 이른바 트리거 법(trigger law)을 시행하고 있다. 

앞서 텍사스 주 의회는 보수화된 연방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를 뒤집을 가능성을 내다보고 작년 제 87대 주 의회에서 인명 보호법(Human Life Protection Act of 2021)을 통과시켰다.

텍사스의 낙태 금지법은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거나 상당한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낙태를 허용했지만 구체적인 정의는 모호한 상태이다. 또한 강간이나 근친상간 사건에 대한 조항을 만들지 않았다.

이외에도 불법 낙태를 한 경우 최대 종신형과 최대 1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도록 했고, 낙태를 돕는 사람을 개인 시민이 고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현상금 법도 시행된다. 

이날 켄 펙스턴 주 법무장관은 “대법원이 공식 판결을 내린 지 30일 후에 관련 법들이 시행되며, 낙태를 전면 금지할 것”이라고 밝히며 검사들이 낙태 제공자에 대한 기소를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텍사스 주정부가 반 낙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한 후 지난 29일(수). 크리스틴 윔스 해리스카운티 판사는 낙태 옹호단체가 낸 가처분 소송에서 주가 낙태를 금지하는 법 시행을 일시 중단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법원의 이런 결정은 일시적 중단에 불과하고 주 정부나 의회가 법적 쟁점을 해소하는 절차를 진행할 경우 주법의 시행을 막기는 어려울 수 있다.


 

 태아의 생명 보호 VS. 여성의 자기 결정권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인해 미국 사회에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낙태권 옹호 단체 구트마허연구소에 따르면 이번 판결로 약 26개 주(州)에서 낙태가 사실상 금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낙태권 옹호론자들은 불법 시술이나 원정 낙태 등 부작용과 함께, 낙태 규제가 주의 권한으로 넘어감에 따라 주별로 들쭉날쭉한 주법이 시행될 공산이 크다도 우려했다.

텍사스의 경우 임신부의 생명 위협만 낙태 사유로 인정하고 근친상간이나 강간에 의한 임신 역시 낙태 금지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낙태가 금지된 주에서 임신한 여성이 낙태가 허용된 주로 낙태를 위해 이동하는 원정시술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임부의 불편이 커지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텍사스에서 원정시술을 갈 경우 가장 가까운 시술소(뉴멕시코)까지 약 540마일을 이동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니면 아예 국경을 넘어 멕시코에서 시술을 하는 여성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낙태를 돕는 멕시코 시민단체 ‘네세시토 아보르타르’(‘나는 낙태가 필요하다’라는 뜻의 스페인어)에는 벌써 소셜미디어를 통한 텍사스 여성들의 문의가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원정시술이 여의치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무허가 시술이 횡행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전문 의료인이 아닌 경우 임신부의 건강을 해칠 수 있고,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불법 시술인 탓에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낙태권을 둘러싼 찬성과 반대의 두 진영이 오는 11월 중간 선거에서 격렬하게 부딪힐 것이라고 전했다.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이에서 낙태권 논쟁은 정치적으로도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핵심 사안이기 때문이다.

낙태 금지를 주장한 전국생명권위원회의 캐럴 토비어스 위원장은 “마침내 이 일이 이뤄진 데 대해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서도 “이 판결로 낙태가 모두 불법화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긴 전투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낙태 옹호단체인 가족계획행동기금의 알렉시스 맥그릴 존슨 회장은 “우리의 몸과 존엄성, 자유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자유를 재건하고 되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방대법원은 어떤 기관인가?

 

연방대법원은 미 헌법을 해석해 하위법의 위헌 여부를 판결한다는 표면적 역할을 넘어 당대 미국 사회가 향해야 하는 가치의 틀을 제시하는 최고 권위의 법원이다. 

이번에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곤 했다.

연방대법원은 최고의 사법기관으로, 사법부를 총괄한다. 3심 재판을 관할하는 상고법원이지만, 국가적 중요성을 가진 사건에 대해서만 상고허가를 통해 제한적으로 심리대상으로 삼아 판단을 한다. 대략 연간 100여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법원에서 처리하는 건수가 많지 않더라도 대부분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거나 첨예하게 찬반이 대립한 사안이어서 판결 하나하나가 갖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더욱이 미국은3권분립이 철저하게 보장되고, 법치를 사회를 움직이는 근본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사법부의 최고기관인 대법원의 판결에 행정부나 의회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사회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동력은 백악관도, 의회도 아닌, 연방대법원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자료 제공 =연합뉴스


               

 

박은영 기자 ©  K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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