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영 목사 칼럼> 조지 휫필드와 영국과 미국에서의 부흥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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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영 목사의 ‘부흥을 사모하며’ 

 

영국과 미국을 누비며 성령의 능력으로 불같은 멧세지를 전했던 조지 휫필드!
성령께 온전히 사로잡힌 전도자였기에 그의 설교가 선포되었던 곳마다 회개와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으며 그를 아는 사람은 사도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전도자였다고 그를 칭송한다.
오늘날 수많은 주의 종들이 있지만 조지 휫필드 같은 성령께 온전히 사로잡힌 전도자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어 조지 휫필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 는 1714년에 영국의 글로스터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부친을 잃고 젊은이들이 빠지기 쉬운 모든 죄를 지으며 자랐다고 고백하고 있다.
18세에 술집에서 일하다가 옥스포드로 가서 팸브록칼리지에 입학해 공부에 열정을 쏟았다. 옥스포드에서 요한 웨슬리가 이끄는 Holy Club 모임에 가입해 성경읽기, 고전읽기, 구제, 선행, 금식 등 엄격한 훈련을 받으며 웨슬리 형제들과 우정을 맺게된다.

조지 휫필드의 회심
그는 찰스 웨슬리로 부터 헨리 스쿠걸이 쓴 ‘인간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란 책을 소개받아 읽었다.
이 책은 그의 신앙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는데 참된 신앙이란 선행, 윤리적인 실천, 도덕적인 삶, 교회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며, 이 생명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시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잘못된 신앙관과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것을 알고 하나님의 생명 얻기를, 다른 말로 거듭남의 체험을 갈망하게 된다.
20세 때 7주 동안 질병으로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성령의 비추심을 받으며 철저히 과거의 죄들을 고백하고 회개한다.
그 결과 죄용서의 기쁨과,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영원한 생명은 예수를 믿는 자에게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확신을 주심으로 거듭남의 확신과 이로인해 넘쳐나는 기쁨과 찬양을 체험한다.
이런 확신 속에서 9개월 동안 기도와 성경연구에 집중했는데 그는 새생명 안에서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면서 그의 삶은 겸손하고 성자같은 삶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처럼 성령께서 복음에 대해 명확한 깨달음을 갖게 하심으로 그의 심장은 복음으로 불이 붙게된다.

조지 휫필드의 부흥사역
당시 영국의 상황은 합리주의, 개몽주의, 이신론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침체되어 있었고, 18세기 산업혁명으로 경제는 발전했지만 임금착취와 빈부의 격차가 심해졌다. 사회는 알콜 중독자가 급증했고 각종범죄들이 난무했으며 감옥은 죄수로 넘쳐났다.
주일에는 각종 스포츠와 음악파티, 카드파티가 성행함으로 사람들의 마음들을 예배로 부터 빼았아갔다. 이처럼 당시 영국의상황은 참혹했다.
휫필드는 1736년 21세에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고 성공회에서 목사안수를 받는다. 첫 설교를 어린시절 세례받은 교회에서 했는데, 첫 설교부터 성령의 불이 임하여 청중들을 사로잡았고 15명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기도 했다.
휫필드가 성령에 사로잡혀 권능과 큰 확신으로 말씀을 전한다는 소문은 영국,스코틀랜드, 웨일즈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곳곳에서 그를 초청함으로 5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까지 34년 동안 18,000번의 설교를 하면서 영국과 미국에 부흥의 불길을 일으켰다.
그의 설교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인해 청중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 같았고 천둥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농부들도, 광부들도, 사업하는 사람들도 모두 일손을 놓고 그가 설교하는 곳으로 몰려들어 집회장소가 수용할 수 없었다.
또 시기로 인해 모임장소를 내주지 않아서 옥외설교를 시작했는데, 1만명, 2만명, 3만명, 8만명까지 마이크 없이 그의 설교를 듣기도 했다.
윌리엄 쿠퍼가 “우리에게 사도행전이 임한 것같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집회는 성령의 역사가 강력했고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조지 휫필드의 부흥사역 정리
1, 거듭남의 중요성을 깨닫고 거듭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설교를 많이했다. 때로는 거듭나지 않고 설교하는자들을 무섭게 질책하기도 했다.
2, 몰려드는 인파와 설교단을 빌려주지 않음으로 요한 웨슬리보다 먼저 옥외집회를 시작했다. 그가 설교하는 곳마다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왔고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사람들의 회개와 변화가 놀라와 영국 부흥운동의 중심 인물로 등장했다.
3, 브리스톨, 런던,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 영국 전역에 그의 설교 결과로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 결과 영국사회가 도덕적으로 새로워 졌고, 교회는 구원받은 무리들이 몰려들었으며, 교회마다 생명력이 더해졌다.
윌리엄 월보포스를 중심으로 노예제도 폐지운동도 일어났고, 부흥운동의 결과로 런던 선교회, 글라스고우 선교회 등 선교회들이 조직되어 선교사 파송이 시작됐다.
3, 복음을 향한 그의 열정은 미국을 7회나  방문하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조지아, 필라델피아, 보스톤, 노샘프톤 등 미국의 주요 도시들에 부흥운동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셨는데, 마지막 보스톤 집회에서는 보스톤 인구보다 더 많은 3만명이 모일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다
노샘프톤 집회에서는 조나단 에드웨즈를 만나 그와 더불어 뉴 잉글랜드 지역에 제2기 1차 대각성운동이 다시 불붙게 되었다.
4, 휫필드 사역의 결과로 그를 수장으로 칼빈주의 감리교협회가 생겼고, 18개월 후에 웨슬리를 수장으로 (알미니안) 감리교운동이 결성되어 두 감리교회가 대립되자 그는 분열을 막기 위해, 또 그리스도보다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장직을 포기하고 웨슬리를 감리교운동의 수장으로 세움으로 오늘날 요한 웨슬리가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휫필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높히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델이었다.
5, 휫필드는 어느 누구보다도 성령님을 의지했고 성령님께 사로잡힌 전도자였다. 성령님은 그를 통해 사도바울 이래 가장 강력한 복음 전도가 이루어지게 하셨다.

주님, 오늘날도 조지 휫필드에게 하신 것처럼 많은 복음 전도자들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허락하소서! 미국과 세계 곳곳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소서!

 

JAMA 원로대표 강순영 목사
청교도 이주 400주년 준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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