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히 이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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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Kim 의 신앙칼럼  

 

사노라면 겪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다. 기쁨과 즐거움만 있다면 좋을 터인데, 인생은 절대로 그렇지 않고 삶은 슬픔과 분노가 생기는 일이 꽤나 생긴다. 젊을 때부터 존경하던 목사님의 글에서 한 번은 당신이 가르침을 주었던 제자로부터 배신을 당한 상처가 얼마나 컸던지 자다 가도 그 생각이 나면 벌떡 깨어난다고 한다는 것을 읽었다.
한편은 오죽 상처가 심했으면 그러셨을까 하는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토록 좋은 설교와 모범을 많이 보이셨던 분도 인간사 희노애락에서 우리와 별다를 바 없구나 하는 아쉬움도 동시에 느꼈다.
결단코 인간은 섬김의 대상이지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씁쓸하지만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런데 비단 제자에게만 그런 일을 느끼겠는가 아니면 반대로 선생에게도 느끼고, 실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또 배우자에게서도 느끼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우리는 삶 속에서 당하게 되는 여러 좋지 않은 일들, 건강의 위협이나 재정의 압박, 또는 인간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과 배신, 여러 고난이나 핍박, 환란은 때로는 믿음을 위협하기도 한다. 실은 사탄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끊임없이 갈라놓기 위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오죽하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로마서 8:36).” 물론 그는 단순히 인생사의 고난과 핍박이 아니라 주를 위해 사명을 감당하다가 생기는 고난이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믿음대로 살려고 하면 불가불 겪지 않을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있다.
실제로 성도들과 상담을 할 때 자신의 아픔과 슬픔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도우심을 느끼지 못한다고 호소할 때가 가장 힘들고 답답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로는 고난을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마치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시편 기자의 그 많은 하나님을 향한 탄원과 호소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살펴본 내용을 통해 고난의 의미와 하나님이 고난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이유, 우리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야 한다는 것의 의미 등을 살폈기에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은 주로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측면에서 고난에 대한 이러한 내용을 살펴봤다면, 오늘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경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비록 아직 그 정도에는 한참이나 못 미치지만 도대체 그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는지 너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로마서 8:31-35).”
그는 고난과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핍박과 위협 속에서도 담대하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그리스도 예수의 승리로 담보되어진 우리에게 약속된 승리를 외친다. 네 번에 걸쳐 수사 의문문으로 표현된 그의 담대한 선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울컥해지고 목이 메인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고난과 핍박과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신뢰의 믿음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었단 말인가?
그는 그리스도의 예수의 복음으로 인해 세상 모든 자랑이 배설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핍박과 위협 속에서도 자신의 것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타낼 수 있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영광을 이 땅에서도 바라보며 상 주실 이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을 이기신 부활로 약속되어진 영광을 그는 볼 수 있었다. 그는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신 이요, 이미 우리를 의롭다 단언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존재 자체가 깨닫고 누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를 대적하고, 고발하며, 정죄하는 자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외쳤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결론적으로 말한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마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로마서 8:37-39).” 아멘.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마음에 새기며 로마서 8장 본문 말씀으로 된 ‘넉넉히 이기리라’는 찬양을 불러 본다.    

 

다니엘 김
한국정부 국책금융기관 여신심사 및 신용평가역
Financial Consultant
LA 소재 한국정부 투자금융관 역임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석사
현 플라워마운드 교회 전도·선교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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