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이 살려던 삶을 이어서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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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연합 감리교회, 故 정바울 선교사 천국 환송예배 드려 

 

미얀마에서 사역 중이던 정바울 선교사가 현지시각으로 지난 7월25일(주일) 코로나 19로 소천했다.
고인은 생전에 중앙 연합 감리교회에서 10년간 사역했으며, 같은 교회의 파송을 받아 선교지로 나갔다.
 지난 7월 31일(토) 오후 6시 중앙 연합 감리교회에서 정바울 선교사의 천국 환송예배가 교회장으로 거행됐다.
유족을 비롯해 중앙 연합 감리교회 성도들, 많은 지인들이 예배에 참석해 정 선교사의 사역과 생애를 추모했다. 아내 정수자 선교사는 실시간 온라인 예배를 통해 미얀마 현지에서 함께 했다.
이날 예식은 이성철 목사가 집례를 맡았고, 박유 목사가 대표기도를 했으며, 박장우 전도사가 약력 소개를, 채미지 집사와 임미라 사모가 조가를 연주했다.
이성철 목사는 시편 116장 15절을 통해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했고, 이보배 성도가 통역을 맡았다.
이성철 목사는 “선교사님의 죽음 앞에서 놀랍고, 떨리고 슬픈 마음을 숨길 수 없다”며 “이 순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 믿음의 사람의 거룩한 의무인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적 결단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고 정바울 선교사 파송 일주일 전 가졌던 만남을 들려주었다.
정 선교사가 자기 이름 앞에 순교자 ‘Martyr’라는 단어를 써서 파송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정 선교사는 이 목사에게 “목사님, 저는 순교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순교하려고 갑니다”는 말을 남겼다.
이 목사는 “정 선교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귀한 선교사”라며 ”몸이 연약해서 면역력이 약했지만 몸을 던져 선교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우리가 그를 천국에 보내면서 눈물만 흘릴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목사는 “부부는 닮는다”며 아내 정수자 선교사에게 “하던 일을 멈추고 달라스 돌아와 자녀와 함께 살면서 다른 사역을 찾아보라”고 권유했지만 정 선교사는 “남편이 하다 남은 일이 있어서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 분이 가신 것이 정말 섭섭하다면 그 분이 살려던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한다”고 권면했다.
이 목사는 남겨진 아내와 두 자녀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전하며 말씀을 마쳤다.
고 정바울 선교사의 장남 정진리 형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 분은 선하시다”며 “아버지는 참 좋으신 분이었고, 예수님을 만나 삶이 완전히 변화된 분, 미얀마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비록 평생 아버지를 다시 찾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지금 어디 계신지 정확히 안다”며 “아버지가 사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살아가자”고 했다.
아울러 미얀마 목회자인 Labya La Seng 목사도 고인과의 인연과 추억을 떠올리며 조사를 남겼다.  
가족인사를 전한 송광현 형제는 “환송예배에 와주신 여러분과 교회장으로 허락해주신 교회와 이성철 목사님께 감사드린다”며 “여전히 미얀마에 계신 정수자 선교사님과 자녀들 진리, 반석을 위해 기도해달라고”부탁했다.
고 정바울 선교사는 1969년 전북 장수군에서 3남6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으며, 1979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5세 선교사다.
크리스웰 대학과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 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2000년부터 중앙 연합 감리교회에서 중고등부 5년, 선교부 5년 해서 10년 동안 섬겼다.
2008년 12월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2009년 6월에는 중앙 연합 감리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 곤명으로 떠났다. 2014년 1월 미얀마로 사역지를 옮겨 만달레이 주 삔우린 지역에서 고아원과 농장 등을 통해 복음을 전했다.              
김지혜 기자 ©  K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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