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자 1 – 하나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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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라이트 하우스 달라스 교회 담임목사 장량 

 

나는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착한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떤 여자를 만날까? 어떤 남자를 만날까? 미래의 배우자의 질문을 한다면 당연히 착한 사람을 만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은 어떨까? 당연히 그리스도인이라면 착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다 착한 것은 아니다. 신앙은 뜨겁고 열심인데 생각보다 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참 많다. 

예수를 믿어서 무엇을 버리고 포기하고 낮아졌다라는 간증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소개가 되지만 제일 중요한 성품의 변화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가 않는다. 

 

뜨겁고 열심으로 헌신하는 모습들은 쉽게 드러난다. 그렇게 드러나는 부분들에 대하여 신앙의 수준을 이야기하기 쉽지만 진짜 우리가 승부를 봐야 하는 부분은 내적 변화이다. 

나의 생각과 나의 성품이 얼만큼 예수를 닮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 변화의 시작이어야 한다. 내적 변화가 바르면 외적 변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의 뜻은 나의 가치관이 바뀌었고 나의 성품 또한 예수를 닮게 되었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대표적인 성품이 무엇인가? 온유다. 예수님은 자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라고 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그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 즉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첫째로는 하나님 앞에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둘째로는 사람 앞에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착한 사람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들에 대하여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참 착한 사람이었다. 그의 40년이란 광야생활, 어렵고 힘든 환경 가운데서도 모세는 충실하게 말 많고 문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큰 사건을 통해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백성들의 원망과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도전들에 대하여 모세는 평정심을 잃어버린다. 

자신의 리더십을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인간적인 마음이 앞서고, 하나님께서 반석에 물을 내시는 과정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가나안 땅 동편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느보산  정상으로 부르신다. 평생을 가나안 땅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견뎠던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보여주신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변치 않는 뜻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신다. 

“너는 못 들어간다.” 모세는 충분히 억울함을 표현할 수 있고 따질 수도 있다. 어떻게 한 번의 실수로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제발 그냥 넘어가 주시면 안됩니까? 

하지만 모세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하나님의 뜻에 감사함으로 순종한다. 그의 말년은 너무나도 초라하다. 그의 무덤도 그 어떤 기념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어디에서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는 그저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마지막을 조용히 맞이한다. 모세는 불평이 없다.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하며 순종할 뿐이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정말로 착한 사람, 즉 온유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하나님께 “이거 주십시오, 저거 주십시오”라고 열심히 우리의 뜻을 전달하지만, 정작 오늘 하루를 주신, 이 시간을 주신, 이 환경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가? 

비록 내 생각과 뜻 대로 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내가 설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인할 수 있기에 여전히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그런 온유함이 있는가? 

 

이 질문은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예수님 역시 이 질문 앞에서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도를 하셨고, 예수님은 감사함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먼저 온유하셨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의 강한 기도요청이 있었으나 그것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음에 대하여 오히려 그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오히려 저에게 족하고 넘칩니다”하며 감사함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았다. 

사도 바울도 우리와 나름대로 한 성질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아 누구보다 더 하나님 앞에 온유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착한 자녀인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내 것을 얻어내려고 열심히 하나님을 이용하는 이기적 열심을 내는 철 없는 자녀인가?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 앞에서… 

 

장량

라이트 하우스 달라스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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