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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듣고 읽고 헤아리면 ‘통(通)’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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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대개 자기 기준으로 상대를 가늠하고 판단한다. 그래서 소통이 안 된다. 따라서 가능하면 많이 듣(聞)고 많이 읽(讀)고 잘 살피(見)고 그 헤아림(商量)까지 터득해야 비로소 ‘통함’을 얻게 된다. 문자 그대로 다문(多聞))과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하라는 이야기다. 그래야 남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이란 본래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선물도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이 좋다. 칭찬도 물론 받는 것이 좋고 인사도 기왕이면 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이 유일하게 받기보다 주기를 더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말’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나 방식이 다를 수는 있어도,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싶어하고 남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원한다. 

 

말을 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다들 제 말만 하려 하고 남의 말은 듣지 않으려 한다. 거기에서 상호간에 많은 오해와 단절과 소통 부재가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남의 경우를 살펴 보고 또 남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더하여 남이 쓴 좋은 글들을 많이 읽으면, 자연히 자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고 그쪽의 내면을 헤아리려고 애쓸 때, 우리는 상대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쯤은 더 잘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소설가는 언젠가 “명색이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는 부끄럽지만 ‘나는 이 물음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된 답을 들려준 적이 없다’고 했다. 왜냐면 남들이 다 아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였고, 그렇다고 자기만 아는 방법을 이야기 하자니 그런 것은 당초에 있지도 않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나에게도 역시 극히 공감되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는 ”온라인이든 오프 라인이든 시중에 나와 있는 작문에 관한 이론서들을 살펴보면, 글을 잘 쓰기 위한 비결로 대개 비슷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아마 중국 당송시대 대 문장가 중의 한 사람인 시인 구양수가 ‘위문삼다(爲文三多)’ 에서 글 잘 짓는 비결로 ‘다문다작다상량 (多聞多作 多商量)’을 비유해 말한 것을 참고했지 않았나 싶다”고 썼다. 

 

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경험해라, 그리고 많이 사유(思惟)하라 등이 그것들인데, 모두가 일리 있고 한 줄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다독(多讀)과 다작(多作)과 다상량(多商量)은 거의 모든 책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더하여 많이 보라(多見)는 조언도 빼지지 않았다.

 

하늘 아래 독자가 없는 글이란 없다. 하다못해 일기도 그것을 쓰는 자기 자신이라는 독자가 있듯이, 그래서 세상의 모든 글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남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나아가 그것은 모든 세상의 이야기로 뻗어나가기도 한다. 우리가 자신의 말만 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신 아닌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보면 ‘많이 듣고 보는 사람이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중국 옛 시인의 주장은 사려 깊고도 통찰력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월은 언필칭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꼭 시월이 되어서가 아니라도 최소한 한 달에 한 두 권이라도 책을 읽기를 권장한다. 역사나 고전을 읽으면 더욱 좋고 아니라면 멜로 소설이건 탐정소설이라도 좋다. 또는 여행기나 만화나 먹거리 관련한 책들도 나쁘지 않다. 그냥 일상에서 뭐든 읽는 자세를 생활화하고 그로 인해 삶의 지혜와 지식을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헤아리면 통(通)’을 얻는 방법이다

 

요즘 세상,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스스로의 공부는 등한히 하면서 남의 경우에는 턱도 없이 끼어들어 죄 ‘나만 잘났다’고 떠들어 대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특히 정치판이나 소위 사회 지도층 ‘먹물’들의 내로남불 행태는 더 심하다. 글로벌 시대라 그런지 만리 이국에서도 거의 매일 보게 되어 이제 일상화가 되었다. 그렇게 천고마비의 시월도 중순에 이르니 세간의 이런 꼴들의 보고 듣기가 여간 역겹지가 않아 감히 한마디…공자 말씀을 해봤다. *

 

 

손용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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