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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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크리스찬의 관점 

 

복음이 무엇입니까? 구원받을 만한 그 어떠한 자격도 조건도 못 가진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받은 이 구원의 소식이 복음입니다. 

그 구원의 이야기들이 성경에는 가득합니다.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 저주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본 놋뱀! 

저는 이 많은 복음의 이야기들 중 가장 좋아하는 복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므비보셋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정말 명확하고,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왕족의 신분으로 사람들의 축복 속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얼마 후 블레셋이라는 나라와 전쟁이 나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유모에게 안겨 적을 피해 도망다니다 그가 두 다리에 큰 상처를 입고, 걸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채 평생을 도망하며 살게 됩니다.

그렇게 도망하다 다다른 곳이 로드발이라는 땅이었습니다. 로드발이라는 마을의 지명이 현재 므비보셋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드발이라는 이름은 부정형 ‘로’와 ‘목초’라는 뜻을 가진 ‘드발’의 합성어입니다, 한 마디로 풀 한 포기도 없는 황무지가 로드발이었습니다.

그러한 황무지에서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숨죽여 살던 어느 날, 군사들이 그의 집에 찾아옵니다.

그리고 명령합니다. 왕이 그를 보기 원한다고 함께 가자고 합니다. 므비보셋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아버지 요나단과 다윗왕의 언약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엎드려 있는 므비보셋에게 다윗왕이 이야기합니다.

“왕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삼상 9장 7절)

 

아마 다윗왕을 만나기 전 그는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들려오는 음성이 이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에게 놀라운 은총이 예비되어 있단다.”

정말 이 사무엘하 9장은 정말 감동적인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 스토리에 힘이 있는 것은 이야기가 단순히 므비보셋과 다윗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와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7절에 기록된 다윗왕이 므비보셋에게 내린 두 가지 그 은총을 우리가 누려야 합니다 

첫번째 우리가 누려야 할 은총은 “이미 우리 것이라”는 은총입니다. 

다윗이 이야기합니다.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원래 누구의 것이었다구요? 므비보셋의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모든 은총들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다리도 절고 불쌍하니 동냥해주는 은총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원래 다 너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너는 누릴 자격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원래 너의 것이었기 때문에.

 

절대 우리의 신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입은 만물의 상속자들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은총은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의 은총입니다.

므비보셋이 어디에서 은총을 받았습니까? 바로 왕의 식탁이었습니다 수치를 안고사는 므비보셋에게 식사는 그냥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생명연장의 행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과 함께 하는 식사는 존귀해지는 시간입니다. 항상 사람들의 수근거림과 손가락질과 비아냥의 시선속에서 숨어 밥을 먹던 나인데,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과 존중의 식사의 자리에서 그가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건 놀라운 신분의 회복입니다. 영원히 죄의 수치를 가지고 영원히 저주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의 식탁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복음은 나의 진짜 정체성을 찾아가는 힘입니다. 복음은 세상의 인정에 목말라 하는 우리가 그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이 힘이 있는 이유는 나의 진짜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은 나의 열심이지만, 자존감은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이 부서지고, 쪼그라질 데로 쪼그라져 있는 우리들의 삶의 자리를 다시 한 번 회복시키셔야 합니다. 우리는 다리 저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왕의 식탁에 초대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힘입니다.

오늘 다윗이 왜 므비보셋에게 그러한 은총을 베풀었습니까? 오늘 성경에 반복적으로 그 이유를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1절 7절에 성경에서는 반복해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냐면 “요나단으로 말미암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요나단과 다윗왕의 언약으로 말미암아”입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은총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언약입니다. 구원받을 자격도 조건도 되지 않는 우리를 하나님은 왜 구원하셨습니까? 그 피의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언약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스스로의 언약안에 무섭도록 얽매여 있으신 분이십니다.

 

저는 오늘 9장 13절의 말씀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9장의 사건를 마무리를 하는 이 마지막절에서 9장을 요약하는 함축적인 어법으로 한 절로 요약합니다.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발을 절더라.”

문학적으로 참 멋있는 여운이 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구절 끝에 한문장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13절 끝부분에 저는 한 문장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So What? 그래서 어쩌라고?”

이제 두발 저는 것은 므비보셋에게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왕과 함께 왕의 식탁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마지막 13절은 나의 절로 바꿔야 합니다. 마지막 두발을 절더라 이 문장을 바꾼다면 어떤 말로 바꾸고 싶으십니까? 당신의 연약함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왕의 상에 있는 자들입니다. 믿음으로 나의 죄의 수치를 연약함을 상처를 선포하십시오. 그 연약함을 수치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주님께서 바꾸실 것입니다.

 

강성현 목사

수정교회

Assiatant Pastor

예배 및 행정사역

sinlucky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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