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드리우는 ‘아수라장’ 세상 새 보안관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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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텍사스, 이곳의 한 평화로운 고을에 우리의 서부 싸나이 쌤이라는 청년과 마리아라는 아리따운 한 여인이 사랑을 맺고 조그만 목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아아, 그러나 장난의 운명인가 운명의 장난인가. 

이 평화로운 고을에 먹구름이 덮칠지 그 누가 알았으랴. 어느 날 느닷없이 이 동네에 나타난 천하의 악당 제시 제임스! 그는 부하들을 데리고 온 동네를 짓밟으며 동네 청년들을 개 패듯이 패는가 하면 우리 사랑스러운 마리아를 희롱하고 즈들끼리 술을 처먹고는 이놈이 저 놈을 치고 저 놈이 이놈을 치면서 온 마을을 쑥대밭을 만드는 아수라장을 만들고 말았더라. 아,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으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할꼬….” 

 

이 글은 1950년대의 무성영화 시절의 서부 활극 필름을 돌리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변사들의 대사 한 줄이다. 언젠가 한 유명 코미디언이 패러디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아마 그 때 그들은 한잔 걸친 거나한 기분으로 <이빨>을 깠던 영화 스토리 중 한 장면을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지만, 당시 서부 영화의 영웅들이었던 게리 쿠퍼나 아란 낫드 같은 배우들의 얼굴이 시골 극장의 간판에 나붙을라치면 우리들은 그 영화 한 번을 보기 위해 아예 밤잠도 설쳤다. 그래서 우여곡절을 거치고 극장 매표소를 통과하면 보통 두 번씩을 보는 것이 기본이었다. 

 

특히 당대의 인기인이었던 변사가 엮어내는 유치하면서도 구수한 언변이며 각 장면마다 감정을 넣어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던 그 시절은, 우리에게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생각하면 슬그머니 입가에 번지는 웃음. 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이 얘기가 떠오른 것은 요즘 내 조국의 현실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라, 불현듯 그때 그 시절이 소환되었다.  

 

근간 국내외의 어디 언론이든 정치꾼들은 여와 야가 없다. 죄 한 통속으로 <이놈이 저놈을 치니 저놈도 이놈을 치며> 가히 50년대 가설극장 영화 스크린을 되돌려 놓고 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선 후보 경선 현장에 울려 퍼지는 ‘욕설’ ‘가족 폄훼’ ‘생짜로 우기기’ ‘오리발 내밀기’ ‘도적놈이 포도대장 하기’ ‘철판 깔고 국민 기만하기’ 등등...막장 드라마도 완전히 역대 급이다. 

쌍욕에 다름없는  고성이 난무하는, 전설의 아수라장이 따로 없어 보인다. 거기에다 지난 달 말 끝난 국정감사장에서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대 국회 답변 태도를 보면서 이건 인간도, 정치인도 아니고 완전히 남미 마피아도 울고 갈 그야말로 ‘아수라’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씨의 말은 끊임없이 사실을 뒤틀고 거짓을 선동하고 진실을 덮었다. 누가 봐도 대장동 개발은 법조와 공공 및 민간업자들이 결탁된 초대형 부패 카르텔의 잘 꾸며진 약탈 사업이었다. 

 

흔히 세속적으로 말하는 <수라장>이란 원래 인도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주 호전적이고 용맹스러운 “아수라” 라는 악귀가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이란 곳에 살며, 석가모니를 수호하고 불법에 귀의한 불자들을 지키는 부처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는 것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틈만 나면 할퀴고 깨부시며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해코지를 한다고 한다.  

비견하건대 마치 요즘의 한국 대선판과 관련하여 정치판에 몸담아 있는 정상배들이 그 모양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암담한 것은 어디에도 불자를 지키는 부처는 없고, 이 편이건 저 편이건 모두 아수라끼리만 남아 치고 받고 하는 형국이라 참으로 보기가 역겹고 울화를 치밀게 한다. 

 

하지만 요즘 우리 해외 동포들의 눈과 귀는 올바르고, 또한 아무리 작은 동네라 할지라도 시민들의 의식은 옛날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또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가슴속에는 모두가 부처의 심성이 뿌리 박혀 있기에, 아무리 아수라끼리 주먹질을 해본들 결코 부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수라장>의 판은 길면 길어질수록 우리 모두에게 함께 상처만 입힐 뿐이라는 얘기다. 

 

4.19나 5.16이 그냥 일어난 게 아니다. 머잖아 새 보안관이 오면 그들은 줄줄이 엮여가서 정말 악질 몇 놈은 ‘고만통’에 앉힐지도 모른다. 

그때 가서 비로소 ‘아, 뜨거라’ 후회하지 말기를… 우리 진짜 국민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충고한다. *

 

손용상 논설위원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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