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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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생명샘 교회  담임목사 안광문 

 

지난 11월 넷째주일은 추수감사 주일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추수감사절에 교회 선생님께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집에서 과일을 하나씩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쯤 되면 날씨가 추워집니다. 요즘은 과일이 흔하고 원하기만 하면 아무 때나 과일을 먹을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추석 때는 사과, 배, 감 이런 과일이 있었지만, 11월이 넘어가면 과일을 먹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과일을 하나씩 가져오라 하시니까 어머니를 졸라 시장에서 사과, 배, 감 이런 과일을 사가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예배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이 가지고 온 과일을 전부 모아서 큰 바구니에 넣고 이 과일 바구니를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강대상 앞에다 두셨습니다. 

그러면 예배시간 내내, 목사님 설교하시는 내내, 강대상 앞에 있는 그 과일 바구니만 보고 있었습니다.

‘예배가 언제 끝나는 건가? 무슨 과일을 먹을까?’ 저는 배를 좋아했는데, ‘선생님께서 배를 주셔야 하는데, 사과를 주시면 어떻게 하나?’ 과일 생각만 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그 과일을 하나씩 전부 나눠주셨습니다. 그 과일을 먹으면서 집에 돌아가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추수감사절 하면, 명절이나 절기보다 그때 그 과일 생각이 먼저 납니다. 추수감사절 하면, 예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먹었던 그 과일 생각이 납니다.

미국은 추수감사주일이 11월 넷째주일인데 반해 한국은 11월 셋째주일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도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왜 그런지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한국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 선교사님들을 감사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딱히 11월 셋째주일에 한국으로 오신 선교사님이 계신다든지 아니면, 11월 셋째 주일에 순교하신 선교사님이 계신 것은 아닙니다. 

서울 양화진이라는 곳에는 구한말 시절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다가 돌아가신 선교사님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님 무덤은 비어 있다고 합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목포로 가는 배에 탔다가 배가 침몰했는데 조선의 여학생을 구하려고 하시다가 거기서 순교하셔서 시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가 아무것도 못 하고 불과 몇 일만에 병에 걸려서 순교하신 분의 무덤도 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토마스 선교사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대동강을 건넜는데, 조선의 관군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리는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선교사님은 자기에게 칼을 겨누는 병사를 위해서 기도하셨고, 그 병사에게 성경을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뭐 이렇게 허무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한국 선교사로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하고 기도하고 계획했을까요? 한국에 와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그런 계획이 다 있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한국 땅에 발을 들여놓자 말자 아무것도 못 하고 그렇게 허무하게 순교할 수 있을까? 그럴 바에 차라리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했으면 더 많이, 효과적으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을까? 과연 이런 상황이라고 해도 감사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

그런데 토마스 선교사님에게 기도를 받고, 성경을 받고, 그분 을 죽였던 그 병사가 ‘박춘권’이라는 사람인데 나중에 예수님을 믿고, 평양 안주교회의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토마스 선교사님의 순교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무모하고, 한심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는 토마스 선교사님의 순교, 그런데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보면, 토마스 선교사님의 순교는 땅에 떨어져 썩어진 한 알의 밀알입니다. 이 밀알 때문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뭘 감사해야 하지?” 감사 제목을 짜내고, 억지로 짜내고, 그렇지만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 시각, 큰 그림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본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안광문 

생명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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