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딜레마’… 최악 피하다 ‘초악(超惡)’을 만날까 두렵다

0

고국의 대통령 선거가 3개월도 안 남았다. 이제 서서히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언론에 의하면 여야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여전하고 표심을 못 정한 사람들이 약 20% 수준이라 한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이 보도에 따른 후보 지지율 등의 %가 여론 조사기관마다의 ‘마사지’ 없는 팩트인지는 솔직히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년 3월9일 그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데, 자칫하면 상상도 못했던 ‘초악(超惡)’의 결과를 얻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국민들은 여간 걱정이 아니다. 

그러나 재앙을 피하려면 소극적 방관이 아니라 ‘선과 악’에 대한 적극적 선택이 필요하다. 단순한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다. 진보좌파와 보수 자유 우파간의 향후 국가 장래를 위한 건곤일척, 죽느냐 사느냐의 대결이다. 해서 찍을 사람이 없다고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된다. 

 

프랑스의 우파 정치학자인 레이몽 아롱(1905~1983)은 “선택은 선과 악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좀 더 나은 것과 혐오스러운 것 사이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20세기 프랑스 지성계(知性界)에서 우파를 대표했던 레이몽 아롱은 당시 좌파의 거두였던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와 쌍벽을 이루던 학자였다. 

두 사람은 프랑스 명문인 고교(ENS) 동기생이자 반(反)나치 레지스탕스 동지였지만, 반면 우파와 좌파를 대표하며 수십 년간 치열한 이념 대결을 벌였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진 것은 1950년 ‘6·25 전쟁’ 때였다고 전한다. 아롱은 전쟁이 발발하자 ‘르 피가로’ 칼럼을 통해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고 북한을 규탄했다. 반면 사르트르는 “남한 괴뢰도당이 북한을 침략했다”는 프랑스 공산당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했다고 한다.

 

레이몽 아롱은 당시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1955년 <지식인의 아편>이란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반인권적인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좌파가 ‘진보’의 이름을 독점하고 민중에게 거짓 선전·선동을 일삼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진보’가 오류 인정하지 않는 것은 도그마(Dogma/교조(敎條)적, 독단, 집념)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정직하고 머리 좋은 사람은 절대로 좌파가 될 수 없다.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좋은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 모순투성이인 사회주의 본질을 모른다면 머리가 나쁜 것이고, 알고도 추종한다면 거짓말쟁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즉 객관성, 보편성을 무시한 소통하지 못하는 사상은 억지요 고집일 뿐이다라는 얘기인데...그렇다면 앞서 말한 SNS를 통해 퍼지는 ‘여야의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여전하고 국민들의 표심을 못 정한 사람들이 약20% 수준이라 한다’는 얘기도 객관성과 보편성이 담보되지 못하면, 이는 현 집권 좌파들의 ‘뭔가의 목적’을 위해 일방적으로 여론 몰이일 가능성이 높고 그럴 개연성이 많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정치인>과 함께 이를 이용하는 <정치꾼> 사이에 대한 선택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의 유권자들은 이런 선택을 강요당하는 걸까? 

한 정치평론가는 “과거 정치인들에 비해 오늘날 정치인들의 자질과 능력이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소위 ‘3김’으로 일컬어지는 정치 거목들이 있었지만, 민주적 가치의 실천이나 투명성 측면에서 보자면 오늘의 정치인들이 그들보다 앞서 있을 게 분명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과거에 비해 훨씬 탈 권위적이고 투명해진 사회에서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오늘의 정치인들은 과거의 정치인들보다 더 손해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정보가 통제되고 일방적으로만 흐르던 시대의 정치인들과는 달리, 요즘 정치인들은 인터넷과 SNS라는 밝은 조명이 켜진 수족관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은 존재가 되어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즉 요즘에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신비감 보다는 시시콜콜한 일거수일투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다 보니,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쌍욕’이나 ‘흑색선전’ 같은 이미지만 쉽게 두드러져 일방적으로 ‘덜 되고 못난 놈’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이러한 전문적 선동 꾼들의 훼방을 막으려면 방관 아닌 적극적 선택이 필요하다. 

이는 얼핏 피상적으로 생각하더라도 그 차이를 알아보는 데 3개월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꼼꼼히 잘 생각해야 한다.

 행여나 삐끗하여 잘못 선택을 할 경우, 차후 그 결과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정말 선택의 순간이 왔다. *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손용상 논설위원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