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받는 믿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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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프렌즈교회 담임목사 오정석








기독교 역사를 보면 믿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교단이 새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분열이 생기기도 했다. 그만큼 믿음이라는 단어에 통일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뭔가 감성적인 느낌이 있어야 믿겠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설교를 들으면서도 마음에 뭔가 느낌이 없으면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찬양을 하거나 기도를 하면서도 마음에 느낌이 없으면 가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간절한 염원이나 소원을 믿음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믿습니다’를 수 없이 외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더 잘들어 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신비적인 체험과 연결을 시킨다. 꿈 속에서나 환상 속에서 뭔가를 봐야 진짜 믿음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차이들이 교인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종교개혁자들은 믿음에 대해서 어떤 정의를 내렸을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남겨준 믿음의 유산 중에 하나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다. 여기서 보면 참 독특한 것이 믿음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믿음을 그리스도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믿음을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에게 기대고, 그리스도와 가까워지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깊게 봐야 하는 것은 믿음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작의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믿음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믿음을 설명하면서 동작의 개념으로 정의하고, 참된 믿음이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동작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믿음이란 우리와 믿음의 대상이 되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적인 면으로 설명할 수가 있다.





믿음은 우리의 구원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에 중요하다.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구원이 흔들릴 수도 있고 확신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구원을 받는 믿음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내려보자.

첫째로, 구원을 받는 믿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하는 믿음의 대상에 대한 ‘지식’이다. 다시 말해, 믿음에는 지식이라는 요소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알지도 모르는 신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 조상들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새벽마다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들이 잘 되기를 빌었다. 그 믿음과 우리가 가진 믿음의 차이가 무엇인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어딘가에 계실지 모르는 모호한 신을 믿는 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믿는 그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지식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땅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사실이 우리가 받은 구원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른다면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으로 자랄 수가 없다.

그리고, 두번째로 참된 믿음의 요소는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대한 ‘동의’이다. 로마서 10장 10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쉽게 말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대해서 아멘으로 시인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내용에 대한 동의는 그 정도에 따라 확신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런 확신의 결과로 기쁨과 평안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마지막으로 구원을 받는 참된 믿음의 요소는 ‘신뢰’이다. 지식과 동의가 있어도 신뢰하지 못한다면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다. 신뢰라고 하는 것은 나 자신을 그리스도께 완전히 맡기는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적극적인 우리의 동작을 볼 수가 있다.

그리스도를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해서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신뢰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진정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것을 내려놓을 수 있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다.

진정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다르다. 자신이 믿는 그 믿음의 대상을 바라보면서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끝까지 충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진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계실지 모르는 모호한 신을 믿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가져야 하는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모든 일에 대해서 동의하고 확신하며,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며 그 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게 되고,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를 닮아갈 것이고,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오정석

프렌즈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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