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기도

0

기영렬 목사의 신앙칼럼 

 

미국의 어느 주일학교 예배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헌금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든 아이가 헌금을 하는데 한 아이만 헌금은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앉아 있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를 따로 불러 사정을 물어보았더니 아이는 집이 너무 가난하여 헌금할 돈이 없어 대신 그 시간에 기도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기도를 드렸니?”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내 몸과 생명과 내 일생을 바치겠다고 기도드려요.”

 

그 말에 감동한 선생님은 아이를 격려하고 나서 약간의 돈을 주고는 잔돈으로 바꿔 매주일 1 달러씩 헌금하라고 말했습니다. 몇 주일이 지나자 매주 꼬박꼬박 헌금을 하던 소년이 더 이상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잔돈으로 바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헌금을 했는데 사 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어요. 사 먹으면 죄를 지을 것 같고… 그래서 지난 주일에 몽땅 바치고 이제는 다시 기도만 하기로 했어요.”

 

어려서부터 이렇게 성실하게 기도하던 소년이 바로 1884 년 부활절에 한국에 온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 선교사님입니다. 그분이 설립한 학교가 조선 기독 대학이고 연세대학교의 전신 이 었습니다. 새문안 교회를 설립하고 수많은 영혼을 주께 돌아오게 한 분입니다. 

 

신앙생활할 때 기도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한 가지가 있다면 기도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기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구해서 받는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기도는 단지 그 정도의 의미 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엄청난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에는 이 사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9-10)”

오늘날 기도문으로 바꾸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원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고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한데, 그 이름이 사람들에 의해 거룩하게 여겨지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굉장히 큰 충격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보통 약하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병이든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위기에 처한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제일 먼저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건 정말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라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동역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시고 나라가 임하시고,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 일에 우리가 기도를 통해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하

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보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셔서 택하신 자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의 백성 삼으십니다. 그 일에 우리가 함께 동역하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기도를 통해서 말입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집안일을 할 때 아이의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기쁨을 주려고 아버지의 일에 초대하여 함께 집을 고치고 페인트칠을 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허물투성이입니다.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영광스러운 일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이었던 만물을 다스리는 일을 인간에게 위임하시고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명령하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예수님은 기도가 필요 없는 분이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시고, 전지하십니다. 그런데 왜 기도했을까요?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함께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임을 자신의 기도 생활을 통해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에스겔서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시면서 그 예언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해야 할지니라고(겔36:37)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이 있어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 응답받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기도의 더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서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우리와 함께,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이루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기영렬 목사

달라스 드림교회

담임목사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