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칼럼] 지금 대한민국은 성군(聖君)을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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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번 제20대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 되자, 각종 언론과 내로라하는 정치 평론가들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의 각자 나름의 의견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 한 개에 이런 글이 있었다. 

 

내용인즉, 윤석열과 태종은 비슷한 면이 많다. 두 사람은 나라 기강이 무너져 내릴 때 권력을 잡았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간 공정과 상식이라는 규범이 파괴되고 내로남불이 판을 치면서 ‘이건 나라냐’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이조 5백년을 되짚어 보면, 태종도 권문세족의 수탈과 왜구 침탈, 풍기 문란 등 구체제 악습이 청산되지 않은 혼란의 시기에 왕위에 올랐다. 국제정세도 비슷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패권 경쟁을 벌이는 것처럼 태종 즉위 때는 국제질서가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재편되는 변혁의 시기였고 혼란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5백 년 조선 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사람은 3대 왕 태종이다. 

태종은 ‘왕씨’에서 ‘이씨’로 왕조가 바뀌는 역성혁명을 한 게 아니다. 고려라는 낡은 나라를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로 창업한 리더다. 

태종은 새 나라를 만들기 위해 도덕·정치적으로 존경받던 최영, 정몽주 등 고려 충신들을 역사의 죄인이 되면서도 제거했고, 왕권 강화를 위해 개국공신 정도전도 쳐냈다. 이복동생도, 처남인 민무구·민무질 형제에게도 인정사정이 없었다. 그래도 역사는 폭군이 아니라 성공한 개혁 군주로 기록한다. ‘전쟁 걱정 없이 백성은 평화로웠고 물산이 풍부해 전국의 창고가 가득 찼다’는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오직 국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태종이 개경에서 한양으로 재천도하면서 기득권 세력을 혁파했듯이, 이와 유사하게 윤 당선인도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듯이, 태종도 아버지 태조 앞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울 정도로 눈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선거는 다득표자가 이겨서 끝나는 게 아니라 패자가 승복해야 끝이 난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임기 말 인사, 탈원전과 부동산 정책 등 정권 인수인계를 놓고 구집권세력의 강한 저항과 반발에 맞서야 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대선은 현재형이다. 구세력을 대표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미스테리 하게 아직도 40%(?) 중반대라는 이례적으로 높은 국정 운영 지지율과 더불어 든든한(?) 팬덤층도 확보하고 있다. 

 

반면, 윤 당선인은 0.73%포인트(24만7077표)라는 역대 최소 득표율 차이로 이긴 데다 ‘국정을 잘 운영할 것’이라는 기대치도 50%대에 불과하다. 또한 윤 당선인이 172석의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새 정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도 무사 통과 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역·연령·젠더에 대한 고려 없이 실력만 보고 뽑았다는 19명의 초기 내각 인선을 보면 불안감이 더 커진다. 더하여 불과 2달도 남지 않은 6월 1일 전국 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민주당은 내부 분열을 막고, 국정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청문회에 매달릴 것이 뻔하다.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분열과 갈등을 증폭하는 ‘지옥문’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할 일은 태산인데 윤 당선인을 둘러싼 환경은 첩첩산중이다. 그렇다고 국가 적폐를 내버려 둘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등 대전환기에 ‘국민이 불러내서, 키워 주고 대통령까지 만들어 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윤 당선인에게 개혁 대통령은 소명이고 운명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청년들이 마음껏 뛰는 역동적인 나라,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혁신의 나라, 약자가 기죽지 않는 따뜻한 나라, 국제사회와 가치를 공유하고 책임을 다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고, 민생을 안정시키며 전쟁 걱정이 없어야 한다. 그런 나라는 ‘닥치고 국기(國基) 개혁‘이어야 가능하다. 

윤 당선인은 가뜩이나 약한 정치적 기반을 송두리째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박정희 초기처럼 다부지고 결연한 의지가 요구된다.  과거의 누구처럼 ‘광우뻥’에 겁먹어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 따위나 부르는  허황한 짓은 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는 지난해 정치 입문을 고민하면서 “패가망신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결기가 없다면 개혁은 성공하지 못한다. 윤 당선인이 성군인 세종이 아니라 태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손용상 논설위원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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