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디에서 썸바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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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만목사의 선교이야기(1)


Haiti Mission USA(대표 장기수목사, NJ)의 초청으로 지난 해 10월에 이어 올해 4월 7일부터 12일까지 아이티 포토프랭에 두 번째 다녀왔습니다. 첫 방문 때 아이티 백성들에게 빈곤과 깊은 애환의 아픔을 느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방문에서는 가난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사랑에의 갈망과 순박함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작은 관심에도 금새 마음을 열고 얼굴에 웃음을 띠었습니다. 마을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어린 아이들이 교회 마당에 들어선 손님을 뺑 둘러 싸 양팔에 매달렸습니다. 눈을 크게 뜬 환한 얼굴로 서로 자기를 보라는 식으로 재잘 댔습니다. 아, 저 순진무구한 눈동자들...그들과 시선을 마주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사랑받으며 자란다면 언젠가 아이티 땅도 웃음 띤 얼굴들로 가득한 날이 오리라…”
거리의 극한 혼잡 속에서의 질서
작년에 아이티에 갔을 때 W선교사님의 4x4 승용차로 이동했습니다. 밖은 무덥고 먼지가 많았어도 차안은 시원하고 먼지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가 고장 나서 땁땁이를 타고 다녔습니다. 땁땁이는 픽업트럭을 개조한 것입니다. 짐칸에 긴 나무의자를 두 줄로 고정하고 지붕은 양철이나 플라스틱으로 덮었습니다. 크기에 따라 10명에서 20명 정도 타는 대중교통수단입니다. 타고 내릴 때 손으로 친다(Tap tap)고 하여 그렇게 불립니다. 뒷문이 없고 완전히 열려있는데다 이음부의 틈새로 뜨거운 바람과 먼지, 매연이 그대로 들어옵니다. 마스크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대신 냅킨으로 코와 입을 덮고 다녔습니다. 그런데도 목이 금방 케케해지고 눈이 뻑뻑해졌습니다.
도로는 시내 일부만 포장도로이고 그 외에는 거의 다 비포장 흙길입니다. 울퉁불퉁 패이고 두드러지고, 달리다가 서고, 섰다가 달릴 때마다 딱딱한 나무 의자의 충격이 온 몸에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니 온 몸이 쑤셔서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습니다. 간혹 길 한 복판에 하수구 덮개가 없는 채 방치된 곳도 여러 곳에 보였습니다. 안내판 같은 것이 전혀 없고 게다가 교통신호등이 없어서 아찔아찔 했습니다. 사람들과 차량들, 오토바이들이 뒤섞이고, 그 가운데 교통순경이 호루라기를 불어보지만 호루라기나 수신호를 보고 운전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로 눈치껏 진행하면서 피해가고, 막히면 서고 틈만 열리면 달리고, 그러다가 갑자기 앞에서 정면으로 오토바이나 차량이 달려옵니다. 영락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의 마지막 순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갑니다. 그야말로 곡예운전의 달인들이었습니다. 땁땁이로 이동하다보니 교통의 혼잡함, 먼지, 매연, 그리고 온갖 소음을 그대로 온 몸으로 다 접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교통질서가 잡힐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L목사님이 땁땁이 안에서 묘안이 떠오른 것같은 얼굴로 말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이 가운데서도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만큼은 서로 자제하거나 삼가서 교통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도 개미들이 얽히고 설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질서가 있고 목적이 있어 그 일들이 이뤄지고 그 시간이 마치면 어느샌가 감쪽같이 다 사라지고, 시간이 되면 다시 나와 그 움직임 속에 합류하는 그런 무질서 속의 질서를 떠올리면서 스스로 위안을 찾았습니다. 나 자신의 내면 세계는 질서정연한가 자문해보았습니다. 살면서 지게되는 플러스 알파의 짐들로 인해 때로는 토네이도가 불고 때로는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짓눌리기도 합니다. 오직 은혜로 질서가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임을 겸허히 깨닫습니다.
쌀과 식용기름 등 식용품을 사려고 땁땁이를 타고 시장에 갔습니다. 먼저 쌀과 식용기름을 좀 싸게 파는 곳에 들렸습니다. 갑자기 행인들이 바쁜 걸음으로 어디론가 몰려갔습니다. 무슨 일인지 상황파악을 위해 까치발을 하고 보니 큰 트럭이 소형차 뒷범퍼 왼쪽부분을 쳐서 그 차가 보행로 쪽으로 튀어나갔고 그 차에 여러 행인들이 받혀서 쓰러진 상황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행인들 때문에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었지만 불과 2,3분 만에 그 가게에 까지 자세한 소식이 다 전해졌습니다. 미국에서 그런 교통사고였다면 불자동차나 앰뷸런스가 긴급출동하고 교통경찰이 교통을 통제하면 상황처리를 하는 케이스였지만 그런 일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가해자나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고 문제해결이 될지 답답해보였으나 각자 자기 일을 할 뿐 상관할 여유나 방법이 없어 보였습니다.
땁땁이 기사 존은 두 딸의 아버지입니다. 밤 아홉 시나 되면 우리를 숙소에 내려 놓고 불이나케 귀가하였습니다. 그 시간까지 노모가 가장이 와야 저녁을 먹는다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존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언제 또는 몇 년이 걸려야 교통혼잡이 해결되거나 도로포장이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는 헛웃음을 웃으면서 “글쎄요. 바른 지도자만 있으면 3년 안에 도로포장이 끝날 수 있을 겁니다”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그런 지도자들이 없었습니다. 다 자기 주머니에 돈을 채웠기 때문에 아이티는 혼란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씁쓸하게 말했습니다. 그 역시 자그만 밴을 사는 것이 꿈이지만 돈을 모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날이 올 것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으로나마 축복했습니다.
(다음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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