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용서할 수 있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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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대한 다양한 연구

오늘날 용서에 관한 학문적 연구는 종교적 범위를 벗어나 사회과학, 심리학, 그리고 의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예로,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은 부속기관으로 ‘국제용서연구소 (International Forgiveness Institute)’를 1985년에 설치하였다. 설립자이며 학술 책임자인 로버트 엔라이트(Robert D. Enright) 박사는 미국뿐만아니라 전세계를 순회하면서 ‘용서’의 정규교육화를 주창하고 있다. 1

엔라이트박사는 용서란 ‘상대에게 보이는 친절, 존경, 관대함’이라고 정의했다. 필자와의 통화에서 그는 용서란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인류가 마땅히 해야 할 ‘보편적, 도덕적 덕목 (universal and moral virtue)’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용서를 삶 가운데 성취하기 위해선 상대방이 비록 나와 생각이 맞지 않고, 나에게 적대적이라 할 지라도 그를 나와 동일한 인격체로 보는것’이 용서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엔라이트 박사와 그의 연구팀은 <용서의 모험>2 포함한 다양한 교재를 만들어, 자신이 개발한 이론과 기법을 세계 34여개 국가의 초등학교에 보급하여 가르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 교재는 용서의 개념과 행동지침을 알기쉽게 기술하여, 이론보다는 어린아이들의 생활속에서 용서가 자연스럽게 실천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용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많은 학교 가운데 하나인, 위스콘신 메이슨 시에 위치한 ‘프린스 오브 피스(Prince of Peace)초등학교는 2003년부터 1학년을 대상으로 ‘용서수업’을 개설했다. 학교를 갓 시작하는 단계부터, 다른사람을 존경하는 마음 그리고 나와 동등하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쳐 그들의 마음에 ‘용서의 씨앗을 뿌리는 교육’을 시행하여 좋은 호응과 많은 결실을 맺고 있다고 한다.

버지니아 커몬웰스 대학의 임상심리학 교수인 에버릿 워딩톤(Everett L. Worthington) 박사는 ‘치유’에 있어서 ‘용서’ 또는 ‘화해’의 기능과 효과성을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 왔다. 그에 따르면, 용서는 상대에 대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적극적으로 긍정적 방향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치유에 있어서 ‘용서하는자’의 주도적인 역할에 주목했다. 워딩톤박사의 치유적 방법론은 용서 대상(가해자)에 대한 이해와 감정이입을 매개하여, 피해자에 박혀있는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을 제거함으로써 피해자 자신을 치유하는 것이다.3 그가 개발한 이 방법론은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즉, 분노를 덜 하며, 상처를 잘 감당하고 더 낙관적인 사람들이 여러 상황 속에서 용서를 더 잘하며, 훨씬 동정적이며 자긍심이 높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4

스탠포드 의대의 프레드릭 러스킨(Frederic Luskin)박사는 질병의 근원적 치료 방법으로서 용서하는 법에 주목했다. 그의 저서 <용서배우기, Learning to forgive, 2003>에 따르면, 마음과 정신치료에 있어 상대의 억압적인 언행에 대하여 자유로울 수 있는 ‘자신의 마음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러스킨 박사의 용서는 간단하다. 용서는 상대방의 ‘안돼’라는 말을 용서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에 비해 성인은 상대의 ‘안돼’라는 말에 오래동안 악감정을 가지게 되는데, 이 감정에 대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 용서의 승패의 관건이다. 그의 방법론은 ‘명상 (meditation)’과 몸의 ‘이완 (relaxation)’인데, 핵심은 분노를 가라앉히거나 제거하는 데에 있다. 이 방법을 습관적으로 이행하면, 신체적으로 훨씬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보다 더 행복감을 느끼며, 그 결과로 예전보다 인생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가치관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오랜 연구와 임상을 바탕으로, 용서를 하는 사람들이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보다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음을 러스킨 박사는 확신했다.

‘용서’는 인류가 마땅히 해야하는 의무이다

카톨릭 교회의 264대 교황 요한 바오르 2세 (John Paul II, 1920-2005)는 1997년 1월 1일 ‘평화의 날’에 즈음하여, ‘용서’와 관련된 메세지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나는 용서가 악에 대하여 복수를 원하는 인간의 논리에 역행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사랑의 논리는 용서를 이해하게 합니다. 사랑은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5

아무리 심각한 폐해가 있더라도, 타인이 우리에게 잘못할 지라도,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책무라고 교황은 역설했다. 인류가 진정한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최선책은 힘의 논리도 아니요, 자본의 논리도 아닌 바로 ‘용서’라는 것이다. 용서는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자비’와 ‘사랑’’에 일치하는 방법이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타인을 내 형제처럼 대하여야 한다고 용서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로 부터 4년후인 1981년 5월 13일 저녁, 교황은 베드로 광장에서 일반인을 알현하던 중, 터키인 메흐멧 알리 아자 (Mehmet Ali Ağca)로 부터 총격을 받아 복부에 치명적 중상을 입었다. 대수술 후, 의식을 회복한 교황은 암살범을 향해 긍휼한 마음을 나타내고 그를 용서하기를 사법당국에 주문했다. 사건 후 2년이 지난 뒤, 건강을 되찾은 교황은 감옥에 투옥된 암살범을 직접 면회하였으며, 그와 단독으로 면담하는 과정에서 일체의 범행 동기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 가족들을 사랑으로 위로하여 용서의 방법과 태도를 몸소 실천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죄짓지 않고 살 수 없다.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고의적이던, 비고의적이던 죄가운데 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선 타인의 죄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용서는 숭고한 행동이다. 문제는 용서의 행위가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결코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양자 모두에게 위대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용서를 베푸는 사람에게는 고귀함, 관대함, 타인의 약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진정한 회개와 반성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용서는 인류가 마땅히 행해야 되는 의무이자 책무이다. *

 

1. 독일, 일본을 포함한 34개국에서 ‘용서’ 프로그램을 초등학교교육에서 실시하고 있다.
2. The full name of the title of book is <용서의 모험: 초등학교 어린이을 위한 교과과정, The Adventure of Forgiveness: A Guided Curriculum for Early Elementary Children Ages 6-8 within a Christian Context>.
3. Everett Worthington, Steps to REACH forgiveness and to reconcile (Boston: Pearson Custom Publishing, 2008), 8-9.
4. Everett, Worthington, Nathaniel Wade, William Hoyt, Julia Kidwell, "Efficacy of psychotherapeutic interventions to promote forgiveness: A meta-analysis," Journal of Consulting and Clinical Psychology 82 (2014): 154–170.
5.“Offer Forgivenss and Receive Peace,” Libreria Editrice Vaticana, message of the Holiness Pope John Paul II for the Celebration of the XXX World Day of Peace, Jan 1 1997.

 

이재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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