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 (2): 믹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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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들린 곳은 믹마스(Michmash / מִכְמָשׂ)였다. 주택가로 들어서서 좁다란 골목 몇개를 지나자 아래로 제법 그럴듯한 산이 보이는 언덕이 나타났다. 여기가 어디냐고 묻자, 바로 믹마스란다. 그냥 평범한 주택가에서 믹마스를 보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사울과 요나단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서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

사무엘상 13-14장을 보면 믹마스 전투가 나온다. 당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사울이 막 사무엘에게서 버림을 받은 후에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불레셋과 벌인 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사무엘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사울이 몸소 제사를 집전했다. 이를 보고 열받은 사무엘이 그만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로 가버렸다. 사울은 왜 그리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까? 인간적인 논리로 보자면, 너무 급박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13장 6절을 보면, 어떤 병사는 너무 급한 나머지 수풀과 바위 뒤에 숨었고, 또 어떤 사람은 달아났다고 했다. 왕으로서 최종 책임을 진 사울이 이걸 보고 아픈 가슴으로 어떻게 해야 했던가? 사울은 패배를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묵묵히 기다려야 했나, 아니면 성경에 나타난대로 제사라도 드려야 했던가?

성경을 보면, 늦게 전장에 도착한 사무엘의 책임은 나타나지 않는다. 늦게 온 사람은 문제가 없고, 제사를 집전한 사람의 책임은 분명하단 성경의 보도를 어찌 읽어야 하는가? 이럴 때도, 왕은 제사에 관여할 수 없으니 기다려야 했다고 사무엘서는 기록했다. 이걸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면 본문을 달리 봐야 한다. 사울에게 하지 말아야 할 걸 한 책임이 있다손 치더라도, 늦게 온 사무엘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해서 제 멋대로 해선 안되는 거 아니던가? 사무엘서 기자가 이 문제를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건 거기 다른 이유가 있었단 거다. 사무엘이 그저 이런 일 하나만 가지고 왕에게 경고하고 기브아로 가버렸다고 보긴 좀 그렇다. 사무엘은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보단 이미 사울의 잘못이 엄청 쌓여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당나귀에 짐을 잔뜩 쌓다가, 마지막에 지푸라기를 하나 얹었더니 풀썩 쓰러졌다. 당나귀가 무너진 이유가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 때문인 건가? 답은 우리 모두가 안다.

사울은 버림을 받았고, 이스라엘 군대는 수세에 몰렸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이 요나단을 슬프게 했나보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무기를 든 소년 하나와 함께 불레셋이 짐작도 못할 절벽을 올라 산등성이를 탔다. 갑자기 불레셋 진영에 나타난 요나단이 그들을 휘저었다. 이십여 명에 달하는 불레셋 병사가 순삭(순식간에 삭제)당하자, 난리가 났다. 두 사람의 살신성인이 일을 냈다. 불레셋 진영에 자중지란이 일어났고, 이틈을 타서 진격한 이스라엘 군대가 쳐들어가서 그들을 무찔렀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믹마스 언덕에서 심사가 복잡해졌다. 여러가지 생각이 엉켰다. 사울은 지도자였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못해서 자격을 상실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지 않은 건 절대 아니었다. 사울의 잘못은 잘못대로, 그리고 이스라엘의 승리는 또 다른 잣대에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있었나 보다.

전쟁을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전략에는 요나단의 투혼이 심겨있다. 어떤 일이든지 쉽게 이뤄지는 건 없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일을 하려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때로 목숨도 걸어야 한다. 요나단이 목숨을 걸지 않았다면, 험한 절벽을 기어올라 가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 아닌가. 요나단은 아버지와 나라를 향한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요나단을 격동하셨다. 던지면 사는 길이 열린다. 요나단은 던졌기 때문에 상상하기 힘든 어려움을 넘어섰다. 불레셋은 역사에서 늘 이스라엘을 누른 세력이었다. 원래 애굽과 한판 붙어서 그곳을 점령하려 한 사람들이었으니 무력도 강했다. 거기에 달랑 둘이 쳐들어갔다니, 한마디로 죽으러 갔다. 그는 사무엘상 14장 6절에서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분이 일하심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다”고도 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절박함이 있는가? 우리 목숨을 어다에 던질 것인가? 내 안에 요나단이 보여주었던 사랑과 격정이 있다면, 그것을 어디에 태울 것인가?

 

김세권
조이풀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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