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아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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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도 목사 성지탐방 기행문(2)

필자의 아버지는 어려서 부터 귀가 따갑도록 공무원이 되라고 말씀 하셨다. 인생을 살아보니 가장 좋은 그릇이 철밥그릇 이라는 진심어린 조언이었다. 어느 초등학교 설문 조사에서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건물임대업자로 적은 아이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나는 세상은 지났다고 말한다. 빨리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빡빡한 세상살이 가운데 꿈을 가지고 도전 하는 것이 망상이며 사치일까?
성지학습탐방팀은 시차 적응을 할 새도 없이 터키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일찍 부터 이른 식사를 마치고 오전 8시에 버스에 몸을 실는다. 아무리 새벽기도에 익숙한 목사님들이라 하더라도 버스에 오르자 마자 목베개를 하고 골아 떨어진다. 심지어 버스안 여기 저기서 코를 고는 소리까지 들린다. 터키에 도착한지 5일쯤 지났을까? 어느정도 시차에 적응이 되고 지중해 음식에도 맛을 들일 무렵 버스는 첫째날 루스드라에서 시작하여 이고니온, 피시디아 안디옥,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빌라델비아, 사데, 두아디라, 에베소, 밀래도, 버가모, 아소스를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바울의 소아시아 선교의 종착지인 드로아에 도착을 하게 된다. 드로아에 멈춰선 바울은 더이상 앞으로 나갈 곳이 없다. 눈 앞엔 에게 바다가 펼쳐져 있고, 등 뒤엔 바울을 죽이고자 혈안이 된 사람들이 바울을 바짝 뒤쫓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 놓이게 된지도 모른다. 소아시아에서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개척지로 가야할 것인가? 바로 이 드로아에서 바울은 자신의 선교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환상을 보게 된다. 어쩌면 이 환상 때문에 복음이 대한민국 땅까지 전해 졌는지도 모른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어떠한 환상을 보게 되었으며 그 환상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무엇인가?
드로아라는 지역은 터키의 최 북단에 있는 작은 항구 도시이다. 변변한 교회도 없고 성경에서도 거의 기록이 되어 있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성지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발굴도 거의 이루어 지지 않았다. 물론 찍을 사진도 거의 없는 곳이다. 보이는 것이란 부숴진 돌들과 그 돌들을 억지로 끼워 맞춘 작은 문 하나가 잡초들 사이에 외로이 서있는 것이 전부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오기에는 다소 실망스러운 곳이라고 할까? 그나마 알려진 바로는 바울이 드로아에 왔을때 철야 예배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유두고라는 청년이 윗층 다락 누각에 걸쳐 앉아 설교를 듣다가 깊이 잠이들어 떨어져 죽었던 곳이다. 물론 바울이 그 청년을 다시 살리긴 했지만 그 정도 사건 만으로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성지탐방팀을 인도했던 손상원 교수의 강의를 들은 후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바울이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게 되는데 만일 그 환상이 없었다면 복음은 오늘날 유럽과 로마와 땅끝까지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바울은 드로아에서 어떤 환상을 보았고, 그 환상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무엇인가?
바울은 무려 두번에 걸쳐 터키 대륙을 횡단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다. 그리고 드로아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제 더이상 갈 곳이 없다. 보이는 것이란 넓은 에게 바다 뿐이다.
바울은 에게 바다 앞에 막혀 터키에만 머물며 사역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바울을 인도하셨던 성령님이 오히려 바울의 길을 가로 막으시는 것이다. 성경은 그 사건을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거늘”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 16장 6절). 바울이 드로아에서 갈등하던 무렵 어느날 밤 바울은 뚜렷한 환상을 보게 된다. 그 환상에서 바울은 마게도냐 청년 하나가 서서 바울을 부르며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행전 16장 9절)는 음성을 듣게 된다. 그 환상을 본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게 되고 바울은 오늘날 그리스인 마게도냐로 건너가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왜 바울은 에게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로 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바울은 스스로를 자신의 Comfort Zone에 가두어 두었는지도 모른다. 터키는 바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한때는 정계에도 입문할 정도로 잘나가던 곳이다. 스데반을 돌에 쳐 죽였던 곳의 현장 감독관이 아니었던가? 드로아에 머물며 터키를 벗어나지 못하던 바울에게 성령님은 터키라는 Comfort Zone을 떠나라는 환상을 보여 주신다. 그리고 Comfort Zone을 떠나 미지의 땅 마게도냐로 건너가라고 말씀 하신다.
드로아에서 에게 바다를 바라보던 손상원 교수는 15분 정도 잠시 바울이 되어 자신의 간증을 한다. 손상원 교수가 어렵게 유학생활을 하며 공부를 마칠 무렵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불안해 하고 방황하던 그 때에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Teaching이라는 비전을 주시고 지난 20동안 그 비전을 이루어 가신 놀라운 간증 이었다. 손상원 교수는 이미 저명한 신약학자로 알려져 있다. 전하는 자도 울고 듣는자도 우는 감동의 순간 이었다. 어떤 목사님 한분은 드로아에서 보았던 바울의 환상이 자신의 목회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씀 하기도 했다.
드로아의 환상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환상이다. 어쩌면 달라스에 사는 교민들 모두 각자의 Comfort Zone에 갇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망설이며 두려워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인들이 할수 있는 비지니스는 손에 꼽힐 정도다. 도넛, 세탁소, 뷰티 서플라이, 아니면 식당이다. 이런 비지니스들도 경쟁이 예전같지 않다. 중국, 베트남 등 저렴한 원가와 노동비로 한인들의 Comfort Zone을 위협한다. 인터넷 공룡 Amazon.com은 포식자 처럼 한인들의 먹잇감을 찾고 있다. 더군다나 비교적 저렴한 집값과 좋은 교육 환경때문에 많은 한인들이 달라스로 이주하고 있다. 한인 교회도 드로아의 환상이 필요하다. 이민자의 숫자는 급감하고 있고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출산율도 저하되고 있다. 언제까지 교인들의 수평이동에 울고 웃을 것인가?
성령님이 바울에게 드로아의 환상을 보여 주셨을때 바울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개척지인 마게도냐로 건너가는 믿음의 도전을 한다. 바울이 어떻게 마게도냐로 건너 갈 수 있었는가? 환상을 본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자신을 성령님께 맡긴다. 혹시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절망하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비전을 주시고 비전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한번 믿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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