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위에 세운 칼람바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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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도 목사 성지탐방 기행문(마지막)


달라스에서 목회 하시는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이다. 청소년 수련회를 인도하던 중 어느 아이가 치아 보정기를 착용하고 있었다. 식사를 위해 치아 보정기를 잠시 빼 놓은 뒤 냅킨에 잘 싸서 식판위에 놓고 정신없이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난후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보정기를 싼 냅킨과 함께 식판을 그대로 설겆이 통에 넣어버린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아이는 치아 보정기가 식판과 함께 잔반통에 버려진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소식을 접한 담당 목사님이 어떻게 했을까? 목사님은 수백명이 먹다 남은 잔반통을 다 뒤지기 시작한다. 혹시나 아이가 자신의 실수로 비싼 보정기를 잃어버렸다는 생각 때문에 집회에 집중하지 못할까 전전긍긍 하던 목사님은 맨손으로 잔반통을 한참이나 뒤지다가 마침내 잃어버린 치아 보정기를 찾았다고 한다. 이 목사님은 어떻게 잔반통에 몸을 던지게 되었을까?
성지탐방팀은 터키에서의 순례를 마치고 Ferry 를 타고 그리스로 넘어간다. 버스는 영화 300의 실제 전쟁 배경이 되었던 스파르타를 지나 가는데, 칼로 사람을 죽이던 전쟁의 현장과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던 바울의 선교 현장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버스는 수일에 걸쳐 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레아를 지나 세계적인 관광 명소인 그리스 칼람바카(Kalambaka)로 향한다. 칼람바카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성지탐방 기간중 칼람바카에서 가장 강력한 성령의 감동으로, “내가 내 교회를 반석위에 세우리라”고 하신 말씀에 사로 잡히게 되는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예수님은 당신의 교회를 세우리라 했건만 주위를 보면 안타깝게도 더러는 무너지는 교회도 있고 찢어지는 교회도 있다. 교회는 “세워지기” 위해서는 어디에 “세워져야” 하는가?
칼람바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지(UNESCO WORLD HERI-TAGE SITE)로 등재된 세계적인 명소이다. 버스는 일차선 도로의 비탈진 산길을 오르며 곡예운전을 반복 하다가 기어이 뒷자리에 앉은 젊은 목사님들의 멀미를 얻어 내고야 멈춘다. 마침내 눈앞에 펼쳐진 절경 앞에서 그동안의 피로는 할 말을 잃는다. 기원후10세기경 믿음의 선진들은 기독교를 향한 거센 핍박과 탄압을 피해 사람의 발길이 도무지 닿지 못하는 곳 까지 숨고 또 숨어 거대한 절벽 벼랑 끝에 교회를 세운다.
필자가 목회를 하는 동안 교회를 두번이나 이전했다. 교회를 이전할때 마다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교회가 세워질 위치였다. 한인들이 자주 오가며, 찾아오기 쉬운 교통의 요지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예수님이 인간을 찾아 오신 것 처럼 예수님의 몸된 교회도 죄인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간혹 도시의 랜드마크같은 위용을 자랑하며 세워진 교회들 조차도 메스컴이나 신문 지상의 일면을 장식하며 무너지는 순간을 볼때가 있다. 주님은 분명히 자신의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것만 왜 어떤 교회들은 무너지고 찢어 지는가?
필자는 칼람바카 절벽위에 세워진 교회를 바라보며 그 질문에 답을 얻게 되었다. 교회는 반석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칼람바카의 교회들이 무려 천년 동안이나 무너지지 않았고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는 교통이 좋아서나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서도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반석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교회는 반석위에 세워져야 한다.
고대 터키와 그리스 지역에는 지진이 자주 발생 했다고 한다. 지진이 일어 날때 마다 도시들은 속수무책으로 땅 속에 묻혀 오기를 반복했다. 오늘날 최첨단 기술로 세워진 건축물들 조차도 지진이 일어나면 맥을 못춘다. 오랜 세월 수없이 많은 지진과 풍파에도 불구하고 칼람바카의 교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왜냐하면 그 교회들이 반석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면 벽은 온통 성화벽화로 채워져 있다. 벽화에 남겨진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들의 행적을 눈으로 따라 가던 중 어느 한 그림 앞에서 시선이 멈춘다. 한 사람이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고문을 당하는 그림인데 이상하게도 고문을 집행하는 사람의 얼굴이 매우 슬퍼 보인다. 그리고 그 벽화 바로 옆에 충격적인 그림이 있는데 방금까지 고문을 집행한 사람이 또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그 사람의 목이 잘려진다. 알고보니 강압에 의해 교회 안의 형제들이 서로 고문을 하고 당하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잠간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과연 내가 교회 안에서 형제를 서로 고문해야 하는 상황 이라면 나는 과연 믿음을 지킬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천년전 믿음의 사람들은 그러한 핍박 속에도 믿음을 지켜낸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이 반석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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