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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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Genesis, 32:9-12, 24-32)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사람이 홀로 있게 되면 많은 것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던 야곱은 가축떼와 가족들을 모두 얍복강을 건너게 한 후 뒤에 홀로 남았습니다. 고향을 떠나기 전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과 축복을 빼앗은 죄책감에 야곱은 두려움에 몹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평소에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을 보낸 후에 야곱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비로서 깨닫게됩니다. 진짜 문제는 형 에서와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그때 야곱은 자신을 찾아온 천사와 씨름을 하게 됩니다.
이 씨름에서 그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갈급함으로 축복을 간청합니다. 이 때 축복을 받고 야곱의 삶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어떤 전환점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복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깊이 성찰해보면 여러분이 지금 번민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당시 야곱에게는 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문제였습니다. 야곱은 브니엘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았습니다.
주위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던 본래의 모습은 무엇인가? 복음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는 한 다른 어느 관계에서도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합니다.
사람이 복음에 부딪힐 때 생기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 모습이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것에 합당한 삶인가? 야곱은 속여서 장자권의 축복을 받았으나 그 축복에 합당하게 온전히 살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가장 큰 위험은 하나님께 멀어져서 내 영혼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 영혼을 지적하여 내가 죄 때문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 결과로 영원한 지옥으로 가서 비참한 고통을 당하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내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이 진정 중요한 문제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인생의 엉뚱한 문제를 가지고 괜히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얍복강을 건너기 전 야곱의 미래의 계획은 무엇이었을까요? 저 강을 건너가서 형 에서의 마음만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고향에 정착하여 그런대로 멋진 삶을 살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에 내게는 많은 가족이 있고 소떼와 양떼도 넉넉하지 않은가?
아마 이런 것이 야곱이 압복강 가에서 생각했던 청사진 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도 신앙생활을 하고 주일에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지만 야곱과 비슷한 가족관, 행복관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시사합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야 합니다. 부모나 친구가 나를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면서 “나는 절대로 당신을 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한 것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없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조상으로 선택받은 야곱이 가나안 땅에 옛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먼저 찾아가서 변화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때 천사는 그 이름을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이다.” 아곱의 이름은 ‘속임’과 관계가 있습니다(창 27:36); 축복은 야곱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정체성의 변화입니다. 그 천사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변경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본문에 ‘사람과 하나님이 겨루어 사람이 이겼다’라는 해설이 있습니다. 본래의 이 뜻은 ‘다투다, 싸우다’라는 뜻을 가진 ‘사라’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이 동사의 현재형이 ‘이스라’이고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같이 ‘이스라엘’은 합성어인데 ‘하나님이 싸우신다(God fights)’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야곱 대신에 싸워주심으로 보호하시고 늘 승리를 보장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제 야곱과 에서의 갈등은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심으로 해결된 셈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개인이름이면서 나중에 한 국가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현재의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이름 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싸우신다(“God fights)’는 말은 이스라엘은 어떤 적도 무너뜨릴 수 없고, 궁극적으로 항상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얍복강에서의 씨름은 자신의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장차 그후 후손들이 세우는 이스라엘 국가가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은 인간이 상상하거나 예상했던 것 보다 더 크고 초자연적 축복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름을 바꾸시므로 야곱에게는 에서와 소떼, 양떼를 새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야곱이 씨름하면서 “다른 것은 다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만은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결심한 간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에서의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과 관계가 바른가를 살펴보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합니다.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요 1:1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신분을 갖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 아직 복음의 핵심인 이것, 즉 “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과 구주이십니다”라고 고백하지 않은 분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얍복강가의 야곱처럼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내 구주이신 예수님) 당신을 가게 하지 않겠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습니다”라고 그분을 여러분의 주님과 구주로 마음에 모셔들이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구원하시고 당신과 영원히 함께 거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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