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공의를 하수와 같이 흐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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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Kim 의 신앙칼럼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것이 풍부하고 형통하며 살기를 원한다.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일부러 고난을 찾아 다니지는 않는다.
설사 고난을 감당한다 할지라도 고난을 감내한 후 마침내 형통할 때를 기다리는 과정을 통해 고난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풍부와 형통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 풍부와 형통의 원인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풍부와 형통이 세상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한다면 오히려 그 풍부와 형통으로 인해 언젠가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실패’의 요인 중의 하나가 성공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무조건 지금 형통하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요, 또 당장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나쁘다 여길 필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함정에 빠진다. 자본주의의 물질적 풍부와 쾌락을 추구하는 시대적 가벼움과 자존적 자아가 팽만해진 이 세대는 특히 진리를 향한 진지한 성찰과 인내의 부족함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지금 당장의 즐거움과 편함, 쾌락만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구약성경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했던 북이스라엘 왕국의 여로보암 2세의 시대가 비슷한 시대였다. 그들도 눈 앞의 번성함과 물질적 풍부함이 그들에게 찾아오자 그것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런 줄로 착각하며 살았다.  

 

주전 8세기 시대의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왕국은 여러 국제 정세를 볼 때 상당히 안정된 통치 체제의 복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다윗, 솔로몬 시대의 부와 번영의 시대의 영향이 아직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북 이스라엘 호세아 선지자의 시대였던 주전 750년경에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아래 수리아의 대부분을 점령했고, 이스라엘보다는 적게 토지를 소유했지만 마찬가지로 남 유다도 블레셋의 여러 성읍을 차지했다.  

 

그들은 이러한 정치적 안정, 부와 번영의 축적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표지(標紙)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의 적들을 발 아래 복종시키고, 그들이 세상의 통치자가 되는 ‘여호와의 날’이 곧 밝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안정과 부와 번영은 하나님이 주신 복의 증거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희생시키고, 약한 자들을 압제하여 얻은 안정과 번영이었다. 이는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위반이요, 반역이었다.  

 

결국은 아모스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신탁으로 수십년 안에 드러날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로부터 수리아, 갈릴리를 빼앗고 마침내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되어 백성들이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아모스 4:2)를 겪게 된다. 그들에게 다가올 ‘여호와의 날’은 광명의 날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흑암의 날(아모스 5:18)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신탁을 전할 때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재앙이 덮치는 데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아모스 3: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내리는 저주의 재앙이 나타나는 본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아모스 4:8-9).”

 

하나님은 저주를 선포하시면서도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재촉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저주하시기를 좋아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신다. 회개하지 않고 드리는 제사나 찬양도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1-24).”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하는 것은 단순히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가난한 자를 희생시키고, 약한 자를 압제하여 얻은 모든 것들로부터 돌아서서 원래대로 복구하는 것까지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의 신탁(神託)이다. 우리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와 정의와 공의를 하수(河水)와 같이 흐르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돌이시키겠다고 하신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 날에 내가 디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아모스9:11-15).” 아멘.

 

다니엘 김
한국정부 국책금융기관 여신심사 및 신용평가역
Financial Consultant
LA 소재 한국정부 투자금융관 역임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석사
현 플라워마운드 교회 전도·선교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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