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열심에서 벗어나 주 안에서 사랑과 배려로 하나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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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Kim 의 신앙칼럼  

 

신학교 시절 실천신학 과목에서 자신의 성향과 앞으로 목회방향에 대해서 공부하는 클래스가 있었다. 그 때 성향 테스트로 유명한 MBTI를 처음으로 해봤다.
당시 교수님은 클래스 80여명이 넘는 학생들을 한 학기 동안 각각 1시간씩 시간을 내어 전부 상담을 해주는 열의를 보여주셨다.
교수님은 노트북을 들고 와서 학생들이 자신 스스로 MBTI 결과와 목회 방향에 대해서 분석했던 과제물에 학생들의 사진을 붙이고는 일일이 자신과 나누었던 주요 내용을 그 과제물 안에 빨간 색으로 따로 표시해 기록해서 상담이 마치자 이메일로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보내주었다.
지금도 한 번씩 그 과제물을 꺼내어 보면서 신학교 시절의 소명을 다시 확인하고, 앞으로 목회방향에 대해서도 되새겨보기도 한다. 참 소중한 기억이었다.
그 때 깨닫게 된 것은 먼저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향과 맞고, 맞지 않는 성향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던 것은 아내의 성향이 나와 가장 잘 맞는 유형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이 좁은 길을 감당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미 나눴던 것처럼 평신도 생활을 성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하다가 뒤늦게 소명을 깨닫고 사역자의 길을 가면서 다시 깨닫는 것 중의 하나는 한국 교회는 여전히 열정이 넘친다는 것이다. 이는 참 소중한 은사 중 하나다. 열심이 없다면 그 어느 것 하나 이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방향과 방식이다. 설사 열심이 있다고 해도 방향과 방식이 하나님과 다르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열심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되고, 많은 이들이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 당시 대표적으로 잘못된 열심이 앞섰던 이들은 다름 아닌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행위로 의를 세우려는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로마서 10:2-3)”
그들의 열심은 그리스도를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는 일로 드러났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실은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현장에서도 이런 일은 허다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로 리더들에게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우리 한국인들은 위계질서에 의한 권위가 남다른 사회이다 보니 이런 현상이 교회 밖의 조직에서는 더욱 심하다. 이민사회는 더욱 다양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평신도 시절 겪었던 교회 리더들 가운데에서도 이런 성향의 분들이 참 많았다.
킹덤 비전을 자신의 욕망에 투사해대형교회를 이루고자 했던 이도 있었고, 자신의 기득권을 놓지 못해서 현실과 타협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지 못하던 이도 있었다.
그런데, 서두에 언급한 MBTI 성향 조사를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도 어느 정도 이런 성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나마 아내가 나의 이런 점들을 균형을 이루도록 해주는 성향이어서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었다. 
교회 사역을 하면서 가장 많이 깨닫는 것은 바로 잘못된 열심을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의 방식을 분별하고 이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과 함께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일이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로마서 14:1-3)”
사도 바울은 그것이 죄가 아니라면 신앙 안에서 서로 다른 방식의 다양성을 인정하라고 한다. 특히, 조직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무시하지 말고, 약한 자도 강한 자를 불필요하게 비판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서로 방식이 다르다고 분쟁하기보다 신앙의 본질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우리의 죄된 본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세상 에서는 힘 있는 사람이 이기는 강자생존의 정글 법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성도는 주 안에서 사랑과 배려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판단하시는 이는 오직 주님 뿐이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로마서 14:8-9)” 아멘.  

 

다니엘 김
한국정부 국책금융기관 여신심사 및 신용평가역
Financial Consultant
LA 소재 한국정부 투자금융관 역임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석사
현 플라워마운드 교회 전도·선교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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