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작가의 ‘먼지’와 스스로 ‘티끌’이 된 塵人 조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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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일어난다 / 살아난다

당신은 나의 먼지 / 먼지가 일어난다

살아야 하겠다 / 나는 생명, 출렁인다 

 

이 글은 최인호 작가가 2013년 9월10일 오전 귀천하기 얼마 전 병상에서 마지막 남긴 독백 한 줄이다. 그가 서울 성모병원 21층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쓴 마지막 유고(遺稿)였다.  한 신문은 이 글을 보도하며, 투병기간 내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는 “삶과 글에 대한 의지, 혹은 신(神)에로의 투항을 모두 노래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요즘 塵人 조은산 씨란 분이 쓴 ‘시무 7조’ 라는 글이 국내외 세간을 뒤덮고 있다. 조선시대 왕에 대한 상소문 형식으로, 고어(古語)체로 이 나라 대통령에게 올린 글이 SNS에 퍼지며 가히 사회 전반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구구절절 한 내용은 한 번 보신 분들은 대충 다들 아실 것이다. 다만, 그의 雅號(아호)가 塵人(진인)이라는 점이 또 다른 흥미를 끌고 있다. 그 뜻이 ‘티끌’이라는 것이 동감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티끌’ 은 먼지다. 조명 빛 한 줄기 속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극명하게 살아있는 듯 움직인다. 

 

그렇다. 우리는 이 우주의 한 티끌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존재를 망각하고 산다. 음지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지는 어디에서건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출렁이는 생명’일 수도 있고, 또는 나를 한없이 낮추면서도 때로는 자칫하면 부정한 사회를 뒤엎을 폭풍으로 이끌고 갈 한 알의 작은 이슬 알갱이들일 수도 있다. 그런 뜻에서 <티끌> 조은산 씨의 글은 현금(現今)의 이 엄혹한 현실 속에서 숨죽이고 살았던 작은 티끌들이 내지르는 들끓는 민심의 소리를 대신 토로했다고 생각한다. 

 

통절한 조은산 씨의 상소문을 잠깐 살펴보면 이러하다. 첫 번 째 상소문은 그 글의 분량이 길어 여기서 전문 소개는 생략하고, 다만 지난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추가로 올린 시무 4조 - <塵人 조은산이 뉴노멀의 정신을 받들어 거천삼석(擧薦三席/세 자리를 천거)의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라는 제목의 글만 요약하여 혹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소개하려 한다.

 

내용인즉,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청와대가 차관급 인사를 발표하면서 “1주택이 청와대와 정부 부처 인사의 뉴노멀이 되고 있다”고 한 것을 머릿글로 하여 비꼰 글이다. 그 중에서도 백미(白眉)는 김현미·추미애·노영민 ‘3인의 역적’을 파직하라는 내용이다. 첫 문장부터 펼쳐지는 촌철살인의 해학(諧謔)적 풍자가 가슴을 사원하게 한다. 

- 조은산은 “작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우책(愚策)과 폭정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자아낸 삼인의 역적, 臣(신) 김O미, 추O애, 노O민이 아직도 그 두꺼운 면상을 들고 황궁을 드나드니 어찌 이를 성군의 법도라 할 수 있겠사옵니까”라고 질타했다.

 

첫째, 국토부장관 김0미는 국토부 수장의 자리에 오른 이후 여태까지 스물두 번의 정책을 남발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고 오십보백보 따위의 우책으로 또다시 백성들을 우롱하며 또한 그것이 스물두 번인지 네 번인지조차 기억도 못 하고 있사온데 파직하라”며 국토부 장관에 붕어를 쓰라고 했다. 붕어는 뇌가 없어 내가 금방 뭘 먹고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

다음, 추0애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제 뜻에 맞는 하수인을 ‘알박기’하여 사법부를 장악하고 정치의 논리에 맞춰 수사지휘권을 남용하고 있다”며 법무부 장관에 개를 앉히라고 했다. 그는 “기왕에 개판이 된 나라 꼴에 이만한 적임자가 어디 있을 것이오며, 입만 열면 전(前) 정권 탓, 폐위된 선황 탓이니 그만한 개소리가 또 없을 지경”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끝으로, 노 실장에 대해서는 “실책을 직언하고 실언을 수습하여 실정을 방비해야 할 책무가 있거늘 도리어 제 스스로 나서 입방아를 찧다 백성들에게 반포 노0민이라는 조롱까지 당하고 결국 수석급 대신들을 포함한 인사 대란을 촉발했다”며 차라리 조은산 자신을 비서실장에 앉히라고 했다.

그 이유인즉 “(노 실장이) 피감기관을 상대로 단말기까지 설치해가며 팔아 치운 졸렬한 시집 따위에 비하면 소인의 붓은 때로 날카롭게 다듬은 칼끝과 같아 정적의 심장을 꿰뚫어 절명시키니 폐하께오선 실로 방약무인하여 장기집권의 큰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비꼬았다.

 

최근 우리는 이 글을 대하며, 어쩌다 저잣거리에서 희대의 ‘廢蝦(폐하/버려진 새우)’로까지 폄하된 塵人의 ‘폐하’가 너무 안타깝다. 하기에 우리는 그 ‘폐하’가 이번 사회 전반에 파도처럼 스며드는 <티끌> 조은산 의 ‘시무 7조’ 1편과 그 후속 편을 읽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만약에 그랬다면 반드시 몸에 소름이 돋으며 모골이 송연 해져야 하고, 개과천선하여 우리 국민들에게 머리 조아려 진심으로 그 동안의 실책에 용서를 빌어야 마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손용상 논설위원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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