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 투표와 트럼프의 선거 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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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가 불과 40일 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지속적인 확산으로 인해 우편투표가 광범위하게 시행될 예정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로 역대 최고의 우편 투표율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콜로라도와 워싱턴을 비롯한 몇몇 주에서는 오로지 우편으로만 투표를 시행하게 된다. 모든 유권자들에게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보내고 유권자가 기표한 용지도 우편으로 받아 선거 결과를 집계하는 것이다. 우편투표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고 투표소에서의 감염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동시에 선거일 이전에 유권자가 편리하게 투표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활용되는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이러한 우편투표는 사실 이전 대선에서도 광범위하게 시행되어 왔다. 2016년 대선에서는 전체 유권자의 약 24%가 우편으로 투표를 실시했다. 이번 대선에서 코로나의 감염과 확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전부터 시행되어 왔던 우편투표가 보다 광범위하게 확대되어 시행되는 것이다. 

 

우편투표의 유용성과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가 선거 역사상 가장 큰 사기가 될 것이며, 심지어 국가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해주는 물적 증거는 뚜렷이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편투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유권자가 우편투표와 현장투표에 모두 참여하는 이중투표의 실시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도 내놨다. 많은 선거 전문가들은 우편투표가 부정선거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트럼프가 선거에 지더라도 선거 결과가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대선 승자라고 선언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가능성이다. 트럼프 선거캠프는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이미 일련의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사실도 최근의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졌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대단히 비이성적이고 위험한 정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트럼프가 우편투표의 확대 실시를 반대하고 선거과정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이유는 현재의 선거 국면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후보가 평균 10% 포인트 차이로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선의 승패를 가름할 중도 성향의 주에서도 대체로 바이든의 우세가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선거 국면에서 우편투표의 선호와 관련해서도 많은 트럼프 지지자가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부릅쓰더라도 기표소에 가겠다는 입장인 반면에 민주당 성향의 바이든 지지자는 코로나 감염에 더 민감한 편이다. 결국 우편투표를 선호하고 실시하려는 상당수의 유권자는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여러 요인으로 인해 트럼프는 우편투표의 확대 실시를 반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많은 우편투표를 빠르고 정확하게 배송하기 위한 우체국 예산 지원도 거부했다. 예산 지원으로 우편투표 시행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우편투표를 통해 유권자가 선거에 참여하여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현직 대통령이 된 셈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트럼프가 선거 과정의 정당성을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나아가 우편투표의 확대를 반대하면서 심지어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을 시사해 왔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수호해야하는 책무를 갖춘 현직 대통령으로서의 주장과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모습은 유권자의 정치 불신을 조장하고 선거와 대통령직에 대한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결국 미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미국 대통령직을 희화화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나아가 11월의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현직 대통령인 트럼프의 선거결과 불복 가능성으로 인해 이미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과 선거제도의 정당성이 훼손되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선거는 현대 민주주의의 요체다. 대의 민주주의의 정당성은 선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권자가 선거라는 공정하고 평등한 경쟁을 통해 선출된다. 공직을 원하는 정치인이 예비선거와 일반선거라는 경쟁 과정을 거쳐 당원이나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면 그 정치인이 공직을 담당하여 정부에서 다수의 국민을 위해 필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공정한 선거와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은 민주주의의 요체가 되는 셈이다. 대의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유지되고 작동되는데 선거가 갖는 의미와 역할은 어떠한 경우에도 과소 평가되서는 안된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제도와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폄하하고 훼손하려는 노력 대신에 유권자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최장섭 논설위원

Texas A&M University-Commerce

정치학과 교수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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