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서방교회 대표적 목회자요 신학자인 ‘힙포의 어거스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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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Kim의 재미있는 교회사 이야기

 

초대 교회 로마제국 서방에서의 대표적인 목회자요, 신학자인 힙포의 어거스틴(Augustinus,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생역정에 대해서 지난 교회사 이야기를 통해 살펴봤다.
오늘은 두 번째로 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독교 사상과 저술에 대한 내용을 되도록 쉽게 살펴보고자 한다.
그가 젊어서 겪게 된 인생의 여러 굴곡처럼 마치 진리에의 탐구도 여러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마침내 밀라노의 암브로스를 만난 이후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었다.
그에게 세례를 받은 후 수도사가 되었다가 결국 하나님의 섭리는 그를 힙포의 주교로 삶을 마무리하게 했다.
그는 애초 관상(觀想)과 철학적 생활에 관심이 많았기에 수도사로서의 삶을 원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방문했던 힙포에서 교회에 방문했다가, 이미 그의 명성을 알게 된 힙포의 주교의 발레리우스에 의해 발탁되어 공동주교로 있게 되었다.
이후 발레리우스가 사망하고 뒤를 이어 주교가 되어 평생을 그 곳에서 사역을 마무리했다.
그는 목회자가 된 이후에는 수도 생활 대신 목회적 책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약시대 이후 서방 전체 라틴어권 교회에서 약 100여권이 넘는 방대한 책을 출간해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가 됐다.
목록에는 유명한 ‘고백록’, ‘신국론’, ‘삼위일체론’을 포함해 삼위일체, 은총론 등 많은 교리 관련 저술과 보편 교회를 공격하는 자신이 잠시 몸 담았던 마니교를 비롯해 영지주의, 도나투스파, 펠라기우스, 아리우스 파 등의 이단에 대한 저술을 포함돼 있다.
그의 이러한 방대한 교회 교리와 이단에 대한 논박이 포함된 저술은 그의 사역의 내용을 비춰봤을 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양이었다.
그는 목회자로서 매주 감당해야 할 설교 뿐만 아니라 당시 주교는 교구의 민사사건의 해결까지 전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이후 중세 시대, 종교개혁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기독교 신학은 물론 서양 철학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어거스틴주의(Augustinism)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초기 저서들 중 많은 책은 자신이 몸 담았던 마니교에 대한 논박이 담긴 것이었다. 마니교는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인간에게 자유가 없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어거스틴은 자유 의지를 주장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까지 주셨을 정도로 인간이 하는 결정은 본성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의지의 산물이라고 했다.
특히, 자유 의지에 대한 주장은 악에 대한 설명을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선하신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악의 기원은 인간과 타락한 천사들에 의해 옳지 못한 결정으로 선에서 파생한 것임을 나타냈다.
어거스틴의 가장 중요한 구원론에 대한 견해는 무엇보다도 행위구원론을 주장하는 펠라기우스 주의자들과의 논쟁에 대한 것으로 후대 기독교 신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펠라기우스는 어거스틴의 자유 의지에 대한 견해는 동의했으나,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 인간이 항상 죄악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은 만약 그러한 인간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면 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인간의 의지가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의지가 죄악에 사로잡혔을 때는 스스로 무력해 자신의 의지대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은 여기에서 많은 문제를 파생시키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인간은 타락 이전에는 죄를 지을 수도,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타락과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사이의 시기에 우리에게 남겨진 자유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이 구속을 받게 되면 그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우리로 해금 죄를 지을 수도,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다시 회복된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천국에서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자유만 누리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자유가 소멸됐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우리는 절대로 죄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선하심과 섭리가 우리를 압도하기에 천국에서는 죄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회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회심 이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자유가 없기에 은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할 자유가 없었다.
회심의 능동적 요소는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시다. 불가항력적인 그 분의 은총과 섭리에 따라 예정된 자들에게 그것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구원론 논쟁이 1세기 이상 지속되었으나, 마침내 교회는 펠라기우스주의를 거부했고, 529년 오렌지 종교회의에서 다른 극단적 결과는 취급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의 우선성에 관한 어거스틴의 교리를 인정했다.
그는 특히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존경받는 신학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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