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이 은혜로 읽히던 어느 날 일상이 노래로 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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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 ‘꿈이 있는 자유’ 한웅재 목사 

 

‘주옥같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다 담아낼 수는 없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또 오롯이 들려오는 가사를 듣는 순간 그 말이 흘러나온다. 

남성 CCM 듀오 ‘꿈이 있는 자유’로 활동하며 ‘소원’, ‘하연이에게’, ‘그대를 향한’을 비롯한 수많은 명곡을 남긴 한웅재 목사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었다. 솔직히 그때는 찬양보다 음악을 좋아했던 것 같다. 대학생 때 ‘내 입술로’, ‘형제여 우리 모두 다 함께’,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음으로’와 같은 예배찬양으로 잘 알려진 임마누엘 선교단에서 활동했다. 

당시 선교단 리더였던 정종원 목사님과 꿈이 있는 자유음반을 만들게 되면서 오늘까지 활동을 이어오게 됐다.

 

◆ ‘꿈이 있는 자유’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 

◇ 처음부터 팀 이름을 ‘꿈이 있는 자유’라고 짓고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고, 정종원 목사님과 프로젝트 음반으로 ‘꿈이 있는 자유 1집’을 냈다. 

후에 어떤 활동을 하겠다 하는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팀 이름도 정하지 않았는데, 노래가 알려지면서 많은 분들이 저희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룹 이름이 됐다.

이 제목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니라 정확할 지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꿈을 만난 사람들은 자유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한웅재 3집의 ‘일상, 은혜’란 곡은 어떻게 쓰여진 것인가? 

◇ 노래를 만들고 부르며 산 지가 조금 있으면 30년이다. 어쩌다 한 번씩 ‘곡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냥 느낀 대로 쓰는 것이긴 하지만 이런 말이 생각났다. 

“단어를 찾아서 너무 멀리 떠나지 말자, 눈길이 닿는 곳, 나의 손길, 나의 시선이 닿는 곳부터 시작해보자”라고 말이다. 

한웅재 3집 ‘일상, 은혜’라는 곡은 그렇게 시작됐다. 행복을 찾아서 먼 길을 떠나기도 하는데 정작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없으면 먼 길을 떠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눈길 닿는 곳에 자리한 것들이 소소하게 은혜로 다가와서 이 곡을 쓰게 됐다. 내 주변이 은혜로 읽히는 날, 이 곡이 내게로 왔다. 

 

◆ 다른 노래들도 몇 가지 소개한다면?  

◇ ‘하연이에게’는 처음으로 만든 자작곡이다. 정 목사님 딸이 하연이였는데 그 아이를 안고 있다가 만들었다. 

‘양화대교 북단’이라는 노래는 솔로음반 1집에 담긴 노래다. 예전에 돕던 교회가 신촌에 있었고, 내가 사는 곳이 일산이서 주일 아침에 교회에 가다 보면 양화대교 북단을 끼고 신촌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양화진 그 앞을 지나가는데, 내가 이 길을 정말 많이 다니는 길인데, ‘여기 양화진에 묻혀 있는 분들이 오늘의 우리를 보신다면, 또 나를 본다면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만들게 된 곡이다. 

 

◆ 크리스찬에게는 ‘불후의 명곡’인 찬송가 음반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 우리처럼 교회를 바라보고 일하는 사람들은 ‘찬송가 음반 한 번 내 봤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생각한 지 꽤 오래됐는데 하루하루 미루니까 세월은 잘 가더라. 10년도 금세 가더라. 내가 이러다 평생 못하겠다 싶어서 시작했다.

찬송가 음반을 두 장 냈다. 찬송가를 불러보고 싶었다. 찬송가 본연의 색깔을 지키면서 해보고 싶었고, 내 느낌의 찬송가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곡을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늘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앨범에 한 곡만 써서 담아보자 했는데, 그간 쓰면서 가장 어려운 곡이었던 것 같다. 

나머지 찬송가들이 워낙 명곡이다 보니, 그사이에 내 노래가 들어간다는 것이 격이 안 맞는다고 느꼈을까? 부담이 있었다. 결국 쓰긴 썼고, 곡 제목을 ‘찬송가’라고 했다. 

한웅재 찬송가 1집 앨범에는 11곡의 찬송가와 1곡의 찬송가가 있는 것이다. 어릴 적 다닌 교회당, 기도하고 싶어 훌쩍 들른 예배당에서 노래 부르시던 우리 권사님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 본인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목자이면서 찬양 사역자인가? 

◇ 기본적으로 노래 부르는 사람, 글 쓰고 곡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역이라는 호칭을 잘 쓰지 않는다. 노래 부르는 사람의 인생을 살며 초대 받아서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하는 거지 어떤 영향력이나 가르침을 주려고 노래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목적 있는 노래가 아니다.

‘일상, 은혜’ 같은 경우만 봐도 그저 내가 쓰는 단어, 내 곁, 내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만나서 시너지 효과가 나온 것이다. 

찬양사역이라는 말로 규정할 수는 없다. 아빠로 살지만 아빠 사역하는 게 아니지 않나? 아빠로 사는 것 아닌가.

나는 노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2005년에 본격적으로 음악만 하며 살기로 마음 먹었다. 그전까지는 담임목회를 했다. 지금은 일반적인 개념의 목회는 하고 있지 않다.

젊어서는 굉장히 바쁘게 살았다. 뭔지 모르고 당장 앞에 있는 일이니까 했었던 것 같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했나, 뭘 알아서 했을까 싶기도 하다. 열심히 했던 것 같다.

 

◆ 한웅재 공식 유튜브 채널에 대해 소개한다면? 

◇ 지금 유튜브는 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플랫폼 중 하나다. 솔직히 내 성향이랑은 잘 안 맞지만, 유튜브는 음악을 접하는 중요한 플랫폼이 됐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테이프로 음악 듣던 시절부터 음악을 해오면서 듣는 방법, 하는 방법, 만드는 방법이 몇 번이 바뀌었다. 시대의 흐름이랄까? 매체들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음악하고 살 생각이 없다면 모를까 계속 음악을 하고 살 생각이 있으면 나 자신을 맞춰야지 ‘옛날이 좋았는데’ 이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과정 전체가 쉽진 않다. 음악 자체가 폭발적인 관심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직 2년이 채 안됐고, 어쨌든 시작했으니까 열심히 해야 겠다고 생각하며 하고 있다.

 

김지혜 기자 ©  K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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