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못 가, 시계가 어떻게 혼자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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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에 ‘이인동심(二人同心) 기리단금(其利斷金)‘이란 말이 있다. 두 사람이 한 마음이면 단단한 쇠도 자른다‘란 말이다. 이는 함께 사는 이웃들과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단적인 비유를 얘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학자들은 ‘공존지수’ 혹은 ‘NQ(Network Quotient) 지수’라고 이론을 세웠다. 

 

이 개념은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와는 별도로 근간에 새로이 생겨난 일종의 신종지수라고 한다. 즉 공존지수(NQ)란 직장이든 조직이든 필요할 때는 사보타지(sabotage)가 아닌 긍정적으로 ’함께 나누는 마음‘을 가지는 것 ㅡ 물론 각자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 바로 ‘공존’의 실체가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TV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내용 중 한 장면ㅡ가까스로 권고사직 위기에서 벗어난 만년 과장이 자신을 도와 준 여직원에게 이렇게 고마움을 전하는 대사가 있다 “혼자서는 못 가. 시계가 어떻게 혼자서 가? 작은 바늘도 가고 큰 바늘도 가고 그렇게 다 같이 가야 나 같은 고물도 돌아가는 거야....” 그 중얼거림은 당시 많은 시청자들에게 큰 일깨움을 주었다. 

 

그렇다. 예를 들어 물속을 들여다보면 작은 물고기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떼를 지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작은 물고기 하나만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여럿이 한데 모여 움직이면 그 거대한 모습에 큰 고기들이 쉽게 근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흔한 얘기고 새로운 발견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산다.  

 

따라서 공존지수는 그 수치가 높을수록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쉽고, 또 그 소통으로 인해 얻은 것을 자원으로 해서 더 성공하기 쉽다는 개념이다. 물론 이는 내가 속한 집단은 잘 되고 다른 집단은 소외시킨다는 ‘패거리’ 개념이 아니며 서로 잘 살도록 도와야 한다는 ‘이타적(利他的)’ 개념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반면 자신이 하는 업무를 구성원들과 소통하기를 꺼려하며 그저 불평만 일삼고 뻑 하면 ‘남 탓’에다 자화자찬(自畵自讚)으로 오만이 끝간 데 없는 인간들....그러면서 쓸데없이 뒤에서 헐뜯기나 하는 사람들은 성공도 어려울 뿐, 후일 꼭 본인도 ‘헐뜯음‘을 당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불가(佛家) 용어로도 풀이된다. 이는 어쩌면 우선 현재 대한민국 패거리 정치꾼들이 본받아야 할 필연적인 덕목이기도 하다.   

 

내일 모레가 동지(冬至)다. 그리고 한 열흘이 지나면 또 한 해가 바뀐다. 밤이 길어지는 계절이어서인지 코로나 펜데믹 걱정과 개인적 삶의 궤적, 더불어 오지랖 넓게도 내 고국 앞날에 대한 염려, 내가 살고 있는 아메리카에 대한 여러 가지 걱정까지도 겹치며 쓸데없는(?) 생각만 깊어진 것 같다. 

 

늦은 밤, 문득 생각난 노동자 시인으로 알려진 박노해 시인의 시 한 편을 떠올리며, 큰 바늘 작은 바늘이 더불어 함께 돌아가는 둥근 벽시계에 새삼 눈길을 모아본다. 원컨대, 자라나는 우리 자식, 손주들에게만큼은 밝고 근사한 새해가 다가왔으면 한다. 

 

그 겨울의 시 /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 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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