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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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현 목사의 신앙칼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왕이 없으므로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시대입니다(삿 21:25). 즉, 자신의 소견대로, 경험대로 살다가 성공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시대 말입니다.
말세에 고통 하는 때에(딤후 3:1-2) 살기가 더 힘들어지는 이유가 있다면, 자기를 지극히 사랑하며, 자기 중심에서 벗어날 줄 모르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이웃을 사랑하기 보다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돈’이 행복을 결정하는 황금만능주의에 너무 길들여져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하고 신음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교회로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 중에 자아추구와 세상과 적당한 타협이 맞물려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경우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믿음에 서 있는지 돌아보지도 않으며 오히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말라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만한 사람이 복이 있고, 악한 사람이 성공한다. 하나님께 도전하는 사람이 화를 면한다’라고 하였다.”(말 3:15)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충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신 세상을 바라보며 세속적인 복과 성공에 눈이 가리워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실망한 채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을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인생의 복과 성공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속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아 보나마나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말 3:14)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잘못되고 죄악 된 행동을 뉘우쳐 회개하고자 하는 마음조차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상황까지 다다르게 되었을까요? 물론 복합적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해 본다면,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한 목적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인하여 감사와 찬송이 넘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 목적을 상실하고 다른 곳에 눈이 고정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악하고 교만한 사람이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여전히 ‘나’인 사람,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지 않은 백성, ‘나 곧 죄, 죄 곧 나’를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고 고백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의 성공을 추구하기 위해 적당하게 가면을 쓰며,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위장하고, 체면을 위해 살고, 자기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추구하며 사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악하고 교만한 사람들이 있을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말로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자신에게 베풀어 주셨는지(요일 3:1),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의 권세를 주셨는지(요 1:12)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나타나실 때를 기대하며, 비록 내일이 보이지 않는 척박한 땅에 살고, 핍박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비록 손해보더라도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온 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복음으로 살아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하나님은 그 마음의 중심을 살펴보시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되게 행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기념책에 기록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아 주시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씀하시며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경건하게 사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 복음에 빚진 사람으로 사는 것이 이토록 힘겨울까요?
그것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분별하는 날이 아직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께서 분명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승천하신 지 20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으면 안됩니다(벧후 3:8). 다시 말해서 주의 약속이 더딘 것은 우리가 실망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오래 참으시는 중에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담 이후 세상을 살아가는 인류는 스스로 고칠 수 없는 질병, 죽음이라는 질병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롬 6:23). 그러나, 구원하시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치료하는 광선(또는 날개)’이 비춰져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깨끗하게 치료해주셨습니다(말 4: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지 않고, 잠시 세상의 보편적 가치와 잘 먹고 잘 사는 일에만 매진하고 싶은 이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역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괜찮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결론이 되는 삶을 살아 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악하고 교만한 사람입니까?  

 

권두현 목사
현 달라스 동부 장로교회
부목사 (행정 및 교육 담당)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 대학원
목회학 박사과정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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