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크리스천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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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기독인으로 어떻게  시대를 살아가고, 어떻게 시대 상황을 신학적으로 바라볼 것인지를 연재하는 센트럴신학대학원 교수들의 칼럼


1. 21세기 그리스도인

COVID-19은 21세기 초 인간문명의 푸른 하늘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침공으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타격이 심상치 않다.
전 세계는 지구촌으로 연결된 자유무역과 상생을 통한 진보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허겁지겁 통제와 봉쇄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바이러스는 아직 기세를 떨치고 있다.
아마도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고 바이러스가 어느 정도 통제되는 수준이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21세기가 펼쳐질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삶의 방식과 사회-정치-경제적인 규범들이 21세기의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21세기 최대의 도전은 아마도 기후문제일 것이다. 이 도전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야기되었고, 기술발전의 속도를 넘어설 기세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당면한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은 현재의 우리 삶을 통제함으로 직접적인 위험의 감소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후문제는 과거 몇 십년 전에 조절하지 않은 결과가 지금 미치고 있어 즉각적인 조절이 불가능하다.
지금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 수준에서 1.5도 이상 넘지 않도록 미래의 혼란을 지금부터 예방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 년에서 십여 년에 불과하다고 보는 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21세기의 기독교

이런 21세기의 도전 앞에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과거에 종교는 정신적, 사상적 지주역할을 하며 사회적 규범과 안정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1세기의 종교는 과거의 강력한 리더십을 상실해가고 있고, 사회적 자원을 제공하기보다 갈등의 원인이 되어가고 있다.
서양세계의 강력한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군주로 자리를 잡았던 기독교도 점점 그 권위를 상실해 가고 있다. 로마의 공인종교가 된 이후 기독교는 사회적 규범과 결속력을 강화했고, 인간의 덕목과 가치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성직자는 르네상스가 일어나기 전까지 종교 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 법, 의료 등 주요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문예부흥 이후 기독교는 갈수록 사회 각 분야에서 권위를 잃어 왔고, 급기야 영적, 정신적 위안의 역할도 심리상담의 영역에 급속히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기독교가 제공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기독교의 스토리는 현대 문명이 제공하는 쾌락과 희망에 아무런 대안이 되지 않는다.
과학의 합리성과 예측가능성은 기독교가 제시하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신의 초월성이나 미래에 일어날 심판이라는 막연성을 뛰어넘어 버렸다.
더욱이 기독교의 편협하고 편파적인 정치 이념화와 극보수화는 기존에 기독교가 누리던 권위와 특권을 유지하려는 발버둥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보일 뿐이다. 기독교는 이렇게 인간 삶에서 적절성과 연관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21세기 기독인의 역할

지금의 코로나 19 팬더믹은 이 모든 도전을 가속화시키며 기독교적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21세기의 지형 속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그 본질을 회복할 것이며, 본연의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본다.

1. 본질을 지키면서도 사회와 소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독교의 역사는 세속에 물들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복음을 사회와 소통하며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는 복음의 핵심을 유지하면서도 이방인들이 교회로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여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대해 ‘선교신학의 도전’에서 저자들은 비록 기독교가 유대문화에서 출발했고 유대인 기독교인들로 시작되었으나,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유대문화를 넘어서 이방인들을 품는 결정을 내렸다고 해석한다.
또한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바울서신 등 신약성경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 당시 언어와 사상을 이용해 기록되고 전파됐다.
이처럼 기독교는 복음의 핵심을 지키면서도 당시 사회와 소통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멸망 후에도 생존할 수 있었고, 로마제국에서도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복음을 실천적으로 살아내었던 그리스도인들(행 11:26)의 헌신이 있었고, 그리스-로마 사회와 소통될 수 있는 신학과 기독교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2. 교회의 내적 건강을 유지하면서 외적 야성을 길러야 한다. 현대 교회는 방어적 자세에서 잃어가는 권위와 특권을 사수하려 애쓰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문명화, 교양화 되어 영적 야성을 잃고 맞서 싸울 힘을 상실한 채 고립된 성 안에 머물러 있다. 세속주의와 과학주의의 최신 무기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휘관 역할을 해야 할 교회 지도자들은 낡은 전법과 구식 무기를 교인들에게 쥐어 주며 승리할 것이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은 크리스찬들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복음을 실천적으로 살아내며, 그 복음을 사회와 소통해야 할 때다.
교회 내부를 향해 설교를 할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을 향해 복음의 메시지를 소통하려는 공적, 선지자적 외침이 필요하다.

3. 교회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낮은 자리에 서야 한다. 이제 기독교의 권위와 리더십이 통하지 않고 있는 시대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다수라거나 우월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 중심에 있는 다수의 강자라는 특권의식을 버리고, 소수 약자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로마시대 때 핍박을 받던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봉사하고 섬겼던 것처럼, 사회의 소외된 자들과 함께 울며 웃는 영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코로나 시대, 아직도 현장예배만을 고집하는 교회에서 벗어나 교회의 자원을 이웃과 사회의 필요를 채우며, 암울한 세상에 맛을 내며 빛을 발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그립다.  

 

 


 

박사무엘 교수

센트럴 신학대학원
한국부 학장
실천신학과
현장사역교육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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