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칼럼] 코로나 ‘데카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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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은 14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의 소설가인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가 쓴 당시 페스트(흑사병)에 대한 기록들이라 한다. 자료에 따르면, ‘데카메론’은 흑사병을 피해 모인 남성 3명과 여성 7명이 들려주는 1백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10만 명 이상이 흑사병에 희생되었고, 따라서 이 기록은 당시의 페스트가 세상을 어떻게 황폐화되는지를 보여주는 목격담이었다. 내용인즉 흑사병이 퍼진 피렌체를 탈출한 10명의 남녀가 2주 동안 한 시골 마을의 별장으로 피신해, 하루 각자 한 가지씩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 하고 그것을 정리한 책이었다. 말하자면 요즘의 ‘사회적 거리 두기’처럼 남녀가 따로따로 피신처에 모여서 역병으로 인한 비극의 처절함을 나눈 것이랄까.

 

중세 말기 이탈리아 피렌체는 세계 경제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1345년과 1346년 피렌체를 비롯한 토스카나 지방은 대홍수의 악몽을 겪어야 했다. 물가는 급등했고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서 사람들은 영양 실조로 면역력은 급감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348년 여름 피렌체에서 흑사병이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감염된 사람은 겨드랑이, 목, 사타구니 림프절이 고통스럽게 부어 오르는 증상이다가 닷새 정도 후에 치명적 상태를 맞았다. 치사율은 60%가 넘었다. 도시는 초토화되고 피렌체 인구는 불과 몇 달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 흑사병은 당시 유럽 전체에 퍼져 인구 약 1억 명 가운데 25%인 2천5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카치오는 이렇게 당시 상황을 기술했다. “페스트 유행 전의 사람들은 지인이 사망하면 경건한 장례를 치렀지만 페스트는 한 순간에 그 모든 삶을 바꿔놓았다”면서, 사람들은 죽은 이에 대한 동정심은 고사하고 시체로부터 비롯되는 전염을 먼저 피했다고 전했다. 처음엔 격리고 방역(防疫) 같은 개념조차도 없었다. 무기력하게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신의 분노에 의한 징벌로 해석하는 게 고작이었다. 이를 경험한 보카치오는 어떤 인간의 지혜도 무서운 전염병을 예방할 수 없다는, 현실과 인간의 무력함을 고백하였다. 

 

그러다 페스트가 북부 베네치아로 빠르게 전파되면서 그제서야 격리와 방역의 개념이 생기게 되고 실천이 뒤따랐다. 1377년 베네치아에서는 처음으로 흑사병 환자가 나오면 30일간 격리했는데, 그 이후로 방역 효과를 높이기 위해 40일(이탈리아어로 quarantenaria)로 연장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오늘날 ‘격리’를 뜻하는 ‘쿼런틴(quarantine)’이란 단어가 유래했다는 것.

 

주지하다시피, 지난 한 해는 중국 우한(牛漢)에서 전파된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각 나라는 모두가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나라마다 이 코로나 역병에 대한 대체는 조금씩 달랐고, 또한 방역의 방법에도 차이가 많았다. 중국이나 북한 같은 공산주의 나라는 아예 인민들의 입을 틀어막은 채 통제했고, 유럽제국이나 중남미와 아메리카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비교적 상황을 오픈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나름의 예방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거의 ‘각자도생’으로 작금(昨今)에 이르렀지만, 다행히 근간에 ‘백신’이 개발되어 공급됨으로써 한숨을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학자들의 견해로는 바이러스는 끝없이 변한다고 한다. 마치 감기처럼 영원히 극복할 수 없다는 뜻이고, 이는 매번 나오는 변종 바이러스의 피해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독감 예방주사나 변종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이 또 새로이 개발되겠지만, 근원적 극복과는 무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누구도 언제 어디서 어떤 숙주에 의해 어떠한 형태의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생길지는 아무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포에만 빠져서 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통상적으로 인류는 흑사병과 콜레라, 천연두, 스페인독감,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로 큰 고통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예방책 강화와 긍정적 변화의 모멘텀을 얻어왔다. 그리고 그 때문에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인류는 인간 중심 세상을 맞게 되었다. 방역 시스템이 강화되고 바이러스 치료제 및 예방제를 찾아내게 한 동력도 기실은 그것이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다. 작년 일년 내내 백신을 구하는 방법보다는 도리어 ‘국민들 옥죄는 기회”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거짓말과 기만을 일삼았다. 코로나 확진자 숫자도 고무줄처럼 임의로 늘였다 줄였다 하는 따위의 소위 ‘정치방역’을 해온 것이다. 그러다가 민심이 흉흉해지자, 이번엔 서울 부산의 시장 보궐선거를 빌미 삼아 그냥 나랏돈 빛내서 코로나 지원금을 주겠다고 한다. 말하자면 표도 얻고 일부 어리석은 국민들을 ‘내편’으로 만들겠다는 일석이조의 교활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코로나를 핑계 삼아 매표 행위를 하고 있다  

 

허나, 오늘의 역병 창궐에 따른 비극은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는 새로운 ‘역사’가 될 것으로 본다. 그렇기에 지금 이후의 세상은 ‘르네상스’ 시대처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코로나 전염병 사태가 크게 진정된다 할지라도 우리에겐 그 때문에 또 다른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그 희망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

 

손용상 논설위원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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