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공용어가 된 ‘내로남불(naeronam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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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7일 한국의 서울 부산 보궐선거가 끝나자 여러 외신들이 이번 선거 결과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참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보수세력이 힘을 얻게 됐다”고 했고,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문 대통령이 국정 동력을 상실하게 됐다”고 썼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미국 뉴욕 타임스와 유명 시사주간지 ‘TIME’,또 로이터 등의 분석 기사였다.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에서 “여당 참패는 문 정권 진보 인사들의 위선 때문”이라며 ‘조국’ ‘금수저’ ‘내로남불’ 등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리고 지난 2019년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여러 의혹이 불거진 것에 대해 “‘특권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무색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국 전 장관 딸의 입시 비리 문제를 둘러싸고 “금수저(gold-spoon) 엘리트들이 손쉽게 명문대에 진학하고 편한 직장을 얻는 데에 대중들은 분노했다”며 “반면 흙수저(dirt-spoon) 계층은 경제 불황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 유권자들이 문 정권 측근에게 느끼는 반감을 ‘내로남불(Naeronambul)’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매체는 이 단어를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If they  do it, it’s a romance; if others do it, they call it an extramarital affair)”이라고 해석했다. 

 

주지하다시피 이 ‘내로남불’은 영문 번역 그대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이다. 

한 마디로 더블 스탠다드(doublestandard)라고 하면 될까.  말하자면 “이중잣대”와 같은 의미다. 

 

돌아보면 문재인 정권은 공정과 평등, 정의를 내세우면서도 ‘우리는 예외’라는 위선적 행태로 일관해 그야말로 실제적인 ‘내로남불’ 정권의 상징이 된 것은 사실이다. 

 

사실 이 말은 작년에 한번 공식적으로 매스컴을 탔다. 작년 연말 전국 대학교수 906명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였지만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정도로 지나갔다. 교수들답게 아주 점잖은 표현으로 ‘아시타비 (我是他非)’였는데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라는 뜻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내로남불’을 이렇게 한문으로 옮긴 신조어를 잘 이해하지 못해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을 뿐이었다.  거기다가 그 어휘는 그 동안 사회에서 비속어 범주의 두음문자(acronym)였기에 공식 용어로는 잘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뉴욕타임즈에서 서슴없이 세계공용어(?)로 만드는 바람에 이제 아주 터놓고 써도 되는 글로벌 공식언어로 탈바꿈 했다. 창피하게도 대한민국 국격(國格)을 추락시킨 또 하나의 예가 된 것이다. 과거에도 ‘빨리빨리’ ‘재벌’ ‘강남스타일’ 등도 이런 식으로 국제어가 된 적이 있지만, 이번의 이러한 외신 보도들은 우리 대한민국을 마치 부패 국가로 그렸다는 점에서 참 기가 막힐 일이다..

 

하지만 어쩌면 ‘내로남불’은 전 사회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금은 옳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멋대로의 상황논리로 변명하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다 옳거나 다 틀렸기가 쉽다. 즉, 서로 분열된 집단 내에서 상대에 대해 동의하거나 이해하는 목소리도, 자기 집단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도 모두 똑같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우리가 지키려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 토론과 합의, 그리고 양보와 협력은 더 이상 가능할 수가 없다. 

 

다만, 우리에게 남은 대안이 있다면, 다소 어렵더라도 19세기 중반 자조론 (自助論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을 쓴 영국 학자 샤무엘 스마일즈의 말처럼,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하여 먼저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뿐이다. 그 뿌리가 사회에서 정치로 뻗어나간 것이라면, 그 치유의 출발은 그 사회 내부에서 스스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결자해지(結者解之) 해야 한다는 말이다. 

 

30여 년 전, LA흑인폭동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당시 주인공이었던 로드니 킹은 사건 이후 진행된 인종 간의 분노와 혐오, 그리고 좌절을 겪은 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린 다 같이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었잖아요?..... 모두가 그의 말을 되새기면 우리 사회의 병폐인 ‘내로남불’ 현상은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다. *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손용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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