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익한 종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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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길 목사 칼럼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무익한 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제자들에게 종의 자세를 지닐 것을 가르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스로를 종이라고 생각하고 종의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강요하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자기를 종이라고 부르는 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기왕이면 양반의 마음으로 살려고 하지 종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독교는, 기독교가 믿는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 되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2가지 신분을 모두 가져야만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종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3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종은 ‘소유권’이 없다. 종이 가진 건 모두 종의 것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 종이 가진 재산이라고 해야 얼마나 되겠나. 많지 않다.
그런데 그 조차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 모두 주인의 것이다. 주인이 달라고 하면 언제든 줘야 한다.
심지어 생명도 자기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 자기의 재능은 물론, 심지어 자식을 낳아도 주인의 것이 되고 만다. 이처럼 모두가 주인의 것일 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역시 모든 소유권을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신 것’임을 인정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언제든 다시 돌려드릴 수 있는 종의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만약 주인이 잠시 맡긴 것을 관리하면서 마치 그것이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착각하고 오해한다면 우리는 이미 우리가 누구인지 잊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늘 잊지 않도록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어서 종의 2번째 특징은 ‘절대순종’이다. 종은 주인이 시킨 일에 대해 ‘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묻거나 따지지 않는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것이 종이다.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종은 하루 종일 밖에서 고된 일을 하다가 돌아온 상태였다. 온 종일 퇴약볕 아래서 일을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 배도 고프고 몹시 피곤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이 그런 종을 향해 ‘너는 이제 음식을 준비하고, 내가 먹는 동안에 옆에서 수종을 든 다음에 밥을 먹어야 한다’(7~8절)고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화가 나는 상황인가? 요즘 말로 하면 갑질이다. 자신은 집에서 하루 종일 놀고 먹었으면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사람한테 쉬지도 못한 채 식사 준비와 시중을 들라고 하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종은 그 상황에서 따지거나 판단할 권리가 없다. 그저 주인이 양을 치라면 양을 치고, 밭을 갈라면 밭을 갈아야 한다. 불평이나 문제제기는 종의 영역이 아니다.

혹시 여기까지 읽은 후 행여라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런 갑질하는 하나님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절대적인 신뢰와 순종에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고, 억울하고 화나는 상황에 처할 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시키신(허락하신) 일이라면, 따지고 불평하기 보다는 내 생각과 계획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순종하는 것이 종의 자세임을 누가복음 17장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순종에 있어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에만 순종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건 믿음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와 납득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순종할 준비가 됐는지 안 됐는지를 보실 뿐이다.
마지막으로, 종의 3번째 특징은 ‘보상이 없다’는 것이다. 일을 시킨 일꾼에게는 그 보상으로 ‘삯’을 준다. 하지만 종에게는 보상이 없다. 심지어 고맙다는 인사도 듣지 못한다.
누가복음 17장 9절에서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라며 선을 그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찬바람이 느껴질 정도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이리도 인색하단 말인가. 고생한 만큼 인정받는 것이, 그걸 알아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종이라고 왜 칭찬받고 싶어하지 않겠냐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서운해하고 상처받는 것 중에 하나가 이것과 관련이 있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서운함과 상처가 그것이다.
교회 안에서 내가 이만큼 일하고 있는데, 내가 이만큼 헌신했는데 목회자나 다른 성도들이 그만큼 안 알아주고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서운해하고 상처받는다.
꼭 그걸 바라고 하는 헌신이나 봉사는 아닐지라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그런 심리적 보상이 없을 때 우리는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되기 쉽다. 목사나 성도나 이 점에서 예외는 없다.
그런 우리의 약함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우리가 종의 마음을 갖길 원하셨다. 보상이나 인정이 없을지라도 서운해하지 말고 상처받지 말고 묵묵히 너의 할 일을 해 나가라고, 그것이 종의 자세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이다.

종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앞에 ‘하나님의’ 라는 수식어가 달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나님의 종은 이 세상 그 어떤 자리보다 존귀한 자리기 때문이다.
이 땅의 삶을 마감하고 그 분 앞에 서는 순간, 우리 모두가 이 고백을 하게 되길 바란다.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김명길 목사
현 웨슬리 교회 부목사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과정
감리교 신학대학교 목회학 석사
건국대학교 히브리학과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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