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미나리’와 윤여정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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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영화 ‘미나리’와 오스카 조연 여배우 수상자인 윤여정의 언론 인터뷰 기사들은 다시 한 번 찾아 읽어보았다. 아울러 새삼 성경도 다시 뒤적여보았다. 왜냐면 영화 ‘미나리’에 대한 평론가들의 비평이 호.불호가 헛갈려서였다. 그리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우선 신약성경 마태복음 첫 장을 펼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눅 3:23-38)가 나온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로 시작하여 다윗을 낳고 다윗은 솔로몬을 낳고…그리고 14대를 3번 거치며 드디어 예수가 탄생하는 요셉가(家) 의 계보가 나열되어 있다.

 

종교학자들은 이러한 “<낳고>의 이어짐은 낳을 수 없고 이어질 수 없는 전설적 계보를 통해 다음 세대를 낳고,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간절한 기도의 연속되는 행렬’이라고 정의”한다. 말하자면 마태복음 1장의 흐름은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서 메시아가 발현하기까지의 ‘구속의 역사’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밝혀주고 있다는 점이 특성이라는 것ㅡ즉 하나님의 모든 계획의 목표는 자신의 나라를 완성해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요약한다.

 

영화 “미나리”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기에서도 <낳음>의 역사가 보여지고 있다. 감독의 이름이 이삭(Lee Issac)이고 영화의 남주인공은 야곱(Jacob)이며, 손주는 다윗(David)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물 얘기도 그렇다. 영화에서도 일종의 우물을 파는 장면이 나온다. 성경에는 이삭은 우물을 파고 거처를 마련하지만, 그때마다 잘 되는 순간을 빼앗기고 또 빼앗긴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우물파기를 포기하지 않고 파고 또 판다. 그렇게 빼앗기고 무너지면서 우물 파기가 이어지며 마침내 자신의 우물을 가지게 된다. 

 

우물의 상징은 고대 농경사회에서부터 삶의 중심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가 실패하고 나중에는 하늘의 은혜를 간구하면서 파 들어가는....인간의 삶이 어떻게 지켜지는가, 고비마다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는지…정이삭 감독은 이를 통해 자신의 기독교적 정신세계를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병아리 감별공장으로 상징되는 황폐해지고 있는 세상, 불타고 있는 미래,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매달리고 있는 자리. 그러나 거기서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도전하는 야곱이, 성서에서 하나님과 씨름까지 하면서 미래를 여는 야곱의 이야기와 오버랩 되어 흥미를 끈다. 

 

간난과 고통의 연속, 병아리 감별로 골라진 수컷들의 대량학살,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굴뚝의 연기처럼 한 순간 삶과 모든 것이 불타버린 자리에서의 좌절이 뼈를 때린다. 그러나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 땀을 흘리며, 자연 속에서 만나는 ‘미나리’ 풀은 재생의 상징이 된다. 즉 감별 당하는 인생, 그걸 넘어서는 길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영화 ‘미나리’는 바로 ‘낳고 ‘이음’을 받아드리는 정 이삭 감독의 간절한 기도임을 알 수 있다.

 

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한국인 최초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윤여정의 얘기도 예사롭지가 않다. 엄밀히 따지면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에서 조연의 역할을 했지만, 실제로는 이 영화의 주제가 되는 서사(敍事)의 장본인은 할머니였다. 따라서 한인 이민 2세대들은 이 할머니를 통해 ‘미나리’라는 화두를 전해 받게 된다. 더하여 윤여정의 수상 소감도 참으로 놀라웠다. 한 주류 신문의 인터뷰 제목처럼 그녀는 A Very Witty, Intelligent, Humble and Respectfully Gorgeous World Star! 였다. 윤여정은 유모와 재치가 넘쳤고 배려심이 깊었다. 겸손했으며 자신을 어떻게 빛나게 할 수 있는지를 아는 매우 총명한 배우임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것은 어떤 연출과 의도를 넘어 그녀가 70여 년을 살아온 삶의 깊이와 성찰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오래 산(?) 경륜이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오른 그녀의 모습은 본인의 말대로 운이 좋았던 것이기도 하겠지만, 오스카 시상식 무대 위의 윤여정은 기쁨을 표현하는 차원이 어떤 것이어야 할지 보는 사람들에게 일깨움을 주었다..

 

영화 <미나리>는 이민자의 삶을 소재로 했지만. 그 안에는 생태주의적 자연의 힘과 기독교의 메시지까지 담겨 있다. 이를테면 에콜로지(ecology)와 신의 은총에 대한 갈구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끌고 다니는 윌 패턴의 극중 인물의 이름이 바울(Paul)인 것은 간단치 않은 상징적 장치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숨겨진 대목이 국내 일부 영화인들에게 외면 받고 있음을 지적했다..

 

정 이삭 감독은 결국 불에 타서 연기로 사라지고 말 거대한 기계와 자본의 잔혹한 문명, 그리고 그걸 넘는 자리에 들어서야 할 새 생명과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 ㅡ 놀라울 정도로 자연적 생태학이 가미된 문명의 진로를 깊게 통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나리’는 정 이삭 감독의 문명관, 세계관 그리고 인간의 미래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담긴 수작(秀作) 의 영화였다고… 나는 그렇게 느꼈다. * 

 

손용상 논설위원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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