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하나로 청소년 범죄가 줄고, 길거리 예배가 생겨나고, 지역이 달라졌다”

0

특별 인터뷰 | ‘십대라면’ 시작한 사천 꽃밭교회 문경구 목사  

 

라면. 참 신기하다. 간편하고, 맛있고, 얼추 한 끼 식사 몫을 한다. 돌이켜보면 예나 지금이나 라면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존재다. 라면을 들고 배고픈 십대들을 찾아가 먹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사천 꽃밭교회 문경구 목사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 라면을 나눠주게 된 계기는?
2013년 일이다. 그 때 진해 동부교회(담임목사 박종윤)에서 부목사로 청소년부를 섬길 때, 당시 담임이셨던 김기해 목사님께서 “교회에서 도보 10분 되는 곳에 ‘석동공원’이 있는데, 그 곳이 경찰도 못 들어가는 청소년 우범지역”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럼 제가 한 번 가볼까요?” 하고 밤에 그 공원으로 갔다.
두 달을 지켜봤는데 패싸움을 하는 것도 목격했다. 아이들을 보면서 두 가지 소원이 생겼다. 하나는 ‘이 공원에서 저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예배 드렸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8월 말인가 9월 초인가 어떤 아이를 만났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 때가 저녁 10시였는데 저녁을 안 먹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에 아무 생각없이 용기라면 몇 개와 함께 뜨거운 물을 갖고 갔다. 그 아이는 없었지만, 그렇게 처음 라면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 이름이 왜 ‘십대라면’인가?  
9월부터 라면을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11월까지 아이들이 먹지를 않았다. 그러다 날이 추워지니 하나 둘 다가오고 먹기 시작했고, 만나 교제하기 시작했다.
라면 하나 먹이려면 큰 보온통 들고 탁자도 가져간다. 이 일이 시작되니 요령도 생기고 후원자도 생기면서 장비도 하나씩 갖춰져 갔다.
처음에는 교회 봉사자들에게 부탁해서 함께 갔지만 어려움도 있었다. 아이들이 침을 뱉고, 욕하고, 째려봐서 봉사를 지속하기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예멤버’가 꾸려졌고 현수막 만들 돈이 들어와서 이름을 짓기로 하고 많은 이름 가운데 ‘십대라면’이라고 짓게 됐다.

◈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
라면 들고 동네 공원에 있는 아이들 만나려고 찾아간 것이었는데 점차 사역이 확장됐다. 실제로 청소년들을 많이 만났다. 자살을 시도한 아이들, 성매매 하는 여자 아이들을 찾으러 갔다가 데려오고, 소년원에 들어갈 아이들을 격려하고, 이미 들어간 아이들을 보살피고, 또 나온 아이들도 챙겼다.
아이들과 밥 먹고 이야기 나누며 후원자도 많이 생기고 같은 비전을 품은 분들을 통해 십대라면도 1호점, 2호점으로 계속 늘어갔다.
한 번은 진해 국회의원이 돕고 싶다면서 도로에 컨테이너를 하나 세워줬다. 그리고 이름을 ‘십대숨터’라고 지었다.
숨 한 번 쉬고 가라고. 패싸움 하는 아이들한테 라면 먹고 싸우라고 했다. ‘숨 한 번 쉬면 문제 없다’는 뜻으로 숨터를 만들었다. 그러자 석동공원 청소년 범죄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십대라면이 거론됐고, 아이들도 그렇게 말했다. 아이들을 먹이니까 덜 싸우고, 숨터가 생기니 숨 쉴 공간이 생겼고, 사고가 덜 났다.

◈ 또 다른 변화가 있었는지?  
아이들이 더 나와달라고 했다. 매일 나갔더니 힘들어서 일주일에 한 번만 나가기로 하고 일요일 저녁에 모이자고 했다. 하루는 내가 “피자를 쏘겠다” 하고 그냥 갔는데 서른 명이 와 있었다.
그 중에 소년원에 갔다 온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도 아는 찬양이 있다. 바로 ‘야곱의 축복’,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소년원 애창곡이다.
그 찬양을 부르고 소교리 문답을 쉽게 만들어서 5분 안에 짧게 말씀도 전했다. 그렇게 피자 먹으러 오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처음 공원에 갔을 때 가졌던 두 번째 소원이 이뤄졌다. 라면 하나 때문에 청소년 범죄율이 줄고, 길거리 예배가 생겨나고, 지역이 달라졌다.

◈ 그 아이들이 교회에 나왔는가?
아이들에게 교회에 나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금요기도회 마치고 찾아가고, 일요일 저녁에 아이들 만나러 갔는데, 한 번은 낮에도 배고프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목사라서 일요일 낮에는 바빠 여기 못 온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교회로 하나 둘 찾아왔다.
십대라면 사역을 하면서 교제한 아이들은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과는 많이 다르다. 쓰는 언어도 다르고, 몸에 그림도 화려하게 그리고, 얼굴에도 많이 바르고, 담배도 피우고…
그런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1시부터 예배라서 12시 반쯤 교회에 도착했다. 예배시간에는 담배 못 피는 걸 아니까 교회 화장실에 우르르 몰려가서 12시 반에 미리 담배를 피운다.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이 얼마나 놀랐겠나.

◈ 라면 하나가 많은 변화를 일으켰는데?
십대라면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지만 전도지향적이지 않다. 관계지향적인 목사님들과 함께 한다.
어느 날 보니 40호점까지 세워졌다. 십대라면이 알려지고 더불어 나 자신도 좀 유명해지는 듯했다. 수련회 강사로 집회도 인도하고, 많은 청소년과 상담하고, 강의도 많이 나갔다.
솔직히 내 안에는 십대라면 100호점까지 내고, 좀 더 성공하고 싶고,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가정에 소홀해지고 마음에는 알 수 없는 우울감과 무기력이 밀려왔다.
진해 동부교회를 사임하고 작은 교회를 섬기던 중 ‘내가 삯꾼이구나, 내가 아이들을 만나고 사랑한다고 했는데, 내가 아이들을 이용해서 성공하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깨닫고 나서부터 마음이 치유됐다. 목사로 살고 싶었다. 2018년 십자가도 없고 간판도 없는 시골집 거실에서 사천 꽃밭교회를 시작했다.
한 가정, 한 가정 보내주셔서2020년에 현재 예배장소가 있는 건물로 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사천 용남중학교 앞에서 5-6월, 10-11월 매주 수요일 용기면 50개를 들고 아이들을 찾아간다. 아이들이 많이 기다리고 반가워한다.
 
김지혜 기자 ©  KTN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